일본 독자들이 『3평 집도 괜찮아!』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 집에 대한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이다. 흔히 ‘집’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아니면 ‘단독주택’. ‘사거나 빌리거나’. 그러나 집은 살 수도 있지만 직접 지을 수도 있다. 3평, 혹은 6평, 아주 작은 집, 이동할 수 있는 집 등...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 4월 19일 동국대 시위대는 해일처럼 움직였다. 그 선두에 스물두 살 법학도 노희두 열사가 있었다.”
동국대학교 법학과 3학년 노희두. 고향 부모님 등 집안 어른들이 거는 기대를 모르지 않았지만1960년 전후 한국사회가 청년학도에게 요구하는 책무 또한 외면하지 않았다. 4월 19일 오후, 시위대를 향해 경찰의 조준사격이 시작됐다. 총소리가 울리자 선두에 있던 학생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민주혁명 제단에 첫 피를 뿌린 노희두 열사였다.
“그날 당신들 손으로 이룩한 민주는 오늘에 당신들 품 속, 눈망울에 젖어… 당신네 가슴에 맺힌 자유는 벅찬 외침이 되어 오늘, 당신의 영광을 말하는 종이 울리고…”
- 4.19혁명 동지 김재형의 弔詩 ‘가슴에 못질한 반역의 총탄’ 중 -
노희두 (1939. 06. ~ 1960. 04.)
충남 서천에서 출생, 장항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1960년 4월 19일, 3·15부정선거와 이승만 독재정권을 규탄하며 3만 명의 대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당시 법학과 3학년이었던 노희두 역시 동국대 시위대 2천여 명과 함께 효자동을 거쳐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경무대로 향했다. 오후 1시 30분 경,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경찰의 총알이 동국대 시위대 선두에 서 있던 노희두의 가슴을 관통하여 노희두는 4·19혁명 경무대 앞 첫 희생자가 되었다.
노희두 열사의 유해는 1963년 9월,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4·19기념 묘지가 조성되면서 4·19혁명 유공자를 모신 제1묘역 98번에 안장되었다. 4·19기념 묘지는 199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고, 2006년 제정된 시행령으로 ‘국립4·19민주묘지’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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