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19년 봄, 100년 전 봉기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다!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근대를 보는 지평을 넓혀 온 고려대 국어국문과 권보드래 교수가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와 기록을 담은 『3월 1일의 밤』. 2000년 초 한 신문조서를 접한 것을 계기로 10년 넘게 변치 않던 3·1 운동에 대한 애정이...
위 인용문은 윤해가 김규식에게 대표 자리를 양보했다는 서술이 ‘김철수’라는 인물의 증언에 기초한 것임을 첨언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사실 관계만 놓고 생각해본다면 ‘김철수’의 증언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수의 기억을 채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의 장, 단점은 분명하다. 장점은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게 되는 과정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극적인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파리평화회의에 참여한 조선 대표가 김규식이라는 기존에 잘 알려진 사실보다는, ‘파리평화회의에 참여하려던 단체의 대표는 여러 명이었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김규식의 파리평화회의 참여는 김규식 혼자의 노력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아 김규식을 도운 결과물이 된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주목하고 싶은 3·1 운동의 측면이 ‘동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서술은 결국 저자가 ‘믿고 싶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물론 자료 조사 과정에서 김규식을 대표로 세우기로 결정한 여러 인물들의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에 ‘김철수의 기억’이 꼭 김철수의 것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유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감정적 기억에 불과할 가능성이 큰 증언을 저자가 원하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채택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사실’보다는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써낸 모든 글에는 주관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오롯이 ‘사실’로만 기술된 역사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사실’에 기초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대목이다. 전체적인 역사 서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3·1 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에 대한 기술에 치우쳐 있다 보니, 이들과 대척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