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살아 숨 쉬는 섬세한 생의 감각!편혜영의 네 번째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저자가 개인의 내밀한 고독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저자 특유의 건조하고 치밀한 문장과 밀도 높은 서사로 구성된 8편의 단편을 만나볼 수...
1. 작가 손보미
먼저, 작품 <밤이 지나면>의 작가 ‘손보미’를 통해 작가 고유의 세계관과 문체적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앞선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사용하여 작품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야기를 하나의 전체 그림으로 엮어서 살피기보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이 돋보이도록 하여 인물의 독자적인 삶의 현장에 능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장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작가는 타인을 사회적 관계의 연결망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개별적 주체로서 바라볼 때 편견과 상식을 벗어나 확장된 무대를 제시해 줄 수 있음을 제시한다.
2. 작품 특징
이 작품은 앞서 설명한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된 특징을 가졌다. 바로 그 첫 번째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1인칭 주인공의 관점을 설정하여 인물의 객관적 관찰보다 내면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자 했다.
정리: 한윤수는 서점에서 책을 뽑아 읽고 다른 자리에 꽂았다. 무의식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했다. 여직원에게 책을 찾아 달라고 했다. 여직원은 분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책이 없으니 허탕 치고 한윤수에게 와서 사과했다. 여태껏 살면서 장난도 농담도 하지 않았던 한윤수는 그런 일을 열 번도 더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놓치고 기다리다가 실패만 하는 얄미운 동생의 전화가 왔다. 받기 싫어서 피한다는 게 서점이었다. 서점에서 여직원이 야단을 맞고 있었다. 구경하던 한윤수와 여직원이 잠깐 눈길이 스쳤다. 그럴려고 한 게 아닌데 여직원의 눈에서 모멸감이 스쳤다. 한윤수는 그녀가 자기에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말을 건다는 게 책을 찾아 달라는 거였다.
정리: 송으로부터 교통사고를 들었던 조는 사고를 야기시킨 것부터 생각한다. 성질 급한 횟집 주인의 재촉 전화가 맨 먼저였다. 그 때문에 틈이 났다. 그 틈으로 남자가 삶에서 최선을 다해 획득한 것들, 다정한 가족, 직장에서의 순탄한 경력, 얼마간의 예금과 연금, 가능성 높았던 계약들이 한순간 빠져 나가 버렸다. 조는 언제고 남자처럼 그런 순간이 우연히 일어나고 교통사고에 휘말려 내가 없어도 태연히 계속될 이 세계로부터 사라져 버리거나 사라지고 싶어지는 순간이 닥쳐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리: 노년이 살아가면서 자기 생의 불행을 어루만진다. 자기 삶을 연민하고 생의 불확실성에 부딪히면서 기꺼이 인정한다. 밤이 지나간다. 현재형으로 지속 되는 밤이 노년의 비밀을 들춰낸다.
오종현은 세탁소 일하기 전에는 은행에 다녔다. 은행을 다닐 때는 물론이고 퇴직한 후에도 와이셔츠를 즐겨 입어서 세탁전문점이 필요했고, 날마다 출근해야 할 곳이 필요 해서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로 아홉 정거장 떨어진 도심 아파트 단지에 있는 세탁소로 출근하는데 필사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일상이 오종현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나와 경술은 아홉 살 차이나는 오누이간이다. 내가 젊었을 때 모습, 내 비밀을 아는 경술의 모습과 늙었을 때 경술의 모습을 아는 나의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남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게다가 젊었을 때 경술이 서울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나흘간 집에 들어가지 않은 비밀이 있다. 오빠인 나는 그때 나흘간 어디서 무얼 했는지 추궁하고 싶었지만 일흔이 되도록 물어보지 않았다. 경술이 눈이 멀어지고 요양원에 보내고 나서 나흘간의 궁금증을 잠재울 수 있었다. -노년이 모든 운명이 종결되는 시기라서 우연의 신비를 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혼란과 불확실성을 잠재우는 시간인 것 같다.- 늙음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지만 또 기억나는 것도 싫다. 그래서 동생을 요양원으로 보내 버리고 나 혼자 되었고 홀가분하다. 비밀의 호의는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정리: 밤이 지나간다. 아이를 잃어버렸고 그로부터 칠 년이 지났다. 아이를 잃어버린 자들의 모임에 가서 치유 받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고통을 잊지 말고 기억을 유지 시켜 주는 모임 같아서 엠은 마음이 무겁다. 모임에서 엠이 왜 아이를 잃어버렸는지 이야기할 때 케이가 자기 생각에 빠져 두 번이나 웃었다. 엠은 기분 나빴다. 나중 케이를 우연히 만났을 때 케이가 지닌 아픔을 이해하고 웃지 않는다. 케이가 사려고 했던 해물 1킬로그램을 엠이 산다.
아이와 함께했던 오 년을 생각하는 엠은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던 날을 기억한다. 실종되고 얼마 후 사체로 발견되었다. 아이가 없는 채로 칠 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엠은 케이를 만났다. 엠의 아이가 사고를 당하던 날을 모인 사람들에게 복기할 때 케이가 웃었기 때문이다. 엠은 자기의 우울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듣는 케이를 본다.
정리: 노인은 이제 가난하고 병들어서 혼자 뭔가를 할 수 없다. 과거에는 남들처럼 남편과 아들이 있어 나름대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다. 평범하고 큰 사고 한번 치르지 않았던 남편은 뇌출혈로 사망했다. 하나 있는 아들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준 것 같지만 지금은 재산을 다 말아먹고 부모님 집까지 손대어서 자신을 철거가 임박한 아파트에 살게 했다. 노인은 하루빨리 집을 비워달라는 시행사 직원의 방문과 독촉으로 가뜩이나 아픈 몸의 통증이 불시에 닥칠 때마다 괴롭다. 아들을 미워하고 원망도 해 보지만 불쌍하고 측은해서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