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LAUDATO SI’를 번역한 것이다. '찬미받으소서'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남긴 ‘피조물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 ‘태양의 찬가’라고도 불림)의 후렴구로서,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 교회의 최고 수장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서도 목소리를 내셨다. 266대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에 선출되시고나서 교황
명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고자 ‘프란치스코’ 라고 결정하셨다. 프란치스코 성인
은 가난을 중요시하며 자연과 피조물들과의 조화를 강조한 성인이신데 지금의 교황님께서 프
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통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의 삶
의 터전이 되어주는 대지와 모든 피조물들을 돌보며 가난을 살 것을 강조하신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구를 ‘공동의 집’ 이라고 표현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공
동이란 우리 인간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모든 동식물과 하늘 땅 등의 세상 모든 만물을 포
함하는 개념이다. 각각의 피조물들이 함께 존재하며 살아가는 곳 그곳이 지구이며 자연은 지
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하느님께서 아름다운 대자연
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라고 책임을 부여해 주신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
<중 략>
인간의 교만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현재 기후위기의 증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과 활동방식의 이해가 현
재의 생태위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의 기술력이 생태위기를 초래
했다고 볼 수 있다. 유용한 가전제품, 편의를 위한 대량 생산체계, 의학, 건물, 철도, 자동차
등 이제는 우리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
러한 발전들을 고맙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기술 과학이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면 매
우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이것은 적당한 필요성을 뛰어넘어 인간의 욕심을 부추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멋진 것들을 소유하게끔 하고 적당히 현실에 안주할 줄 모른다. 이러한 기술
과학은 빠르게 성장하며 인류에게 커다란 편의를 가져왔으나 사람들의 가치관과 양심의 성장
과 함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것을 이기적으로 즉각적
인 욕구충족을 위해 주어진 자유가 아니다.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을 갖추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은 전 세계에 걸쳐 만연화 되었고 무의식 속에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찬미 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재의 생태적 위기의 여러 측면을 비롯하여 다양한 환경 문제들을 다루고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환경 오염, 기후 변화 등과 같은 환경 문제에 관한 심각성을 깨달았고 환경 문제를 개선할 방법과 생각들을 찾아서 변화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찬미 받으소서>를 읽고 나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이슈인 ‘코로나 19’가 환경 그리고 생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책 뒷부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세상을 남겨주고 싶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심오한 문제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60항)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의 답에 대해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생태적 회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미 받으소서>를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다. <찬미 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적인 건물을 짓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는 사실. 누군가는 자연파괴의 행위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인간의 생존방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모두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기본적인 양식을 비판하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건물을 지어서 환경을 파괴한다지만 사실 까치가 나무위에 지은 둥지나 수달이 강에 쌓은 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사용하는 건축 자재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에서 얻은 것이다. 가공의 정도나 규모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건물도 생존방식의 한 가지이며 의, 식과 더불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양식이다. 그러므로 까치의 둥지, 수달의 보와 인간의 건축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자연적인가에 대해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가 그다지 의미가 없고,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은 생태계에서 유일하게 필요이상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