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무원』 후기
시인은 후기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이발사를 떠올린다. “어둑어둑해진 시간, 몰래 산에 올라가는 사람. 누가 볼까 불안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다가 허겁지겁 땅을 파고 그 속에다 냅다 소리지르는 사람. 오랫동안 병이 되어온 말들을 쇠약한 몸에서 황홀하게 꺼내는 사람. 그 말들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 긴 시간과 그것을 입밖으로 꺼낼 때의 불안한 상쾌함. 그 말이 얼마나 독했으면 대숲에 스미고 바람에 스며서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뒤이어 시인은 처음 시를 쓸 때가 그런 기분이었다고 토로한다.그리고 시집 세 권째에 이르렀다. 시인은 지금 좀 지쳤다고 말한다. 소리치기 싫은 걸 억지로 외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은, 머릿속에서 모래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건조한 나날들이 자주 머물다 갔다고 한다.
시를 못 쓰는 불구. 다시는 상상력이 발기되지 않는 불임. 썩어 병이 될지언정 고집스럽게 나오지 않는 말들. 그러다가 시인은 전혀 뜻밖에 비처럼 쏟아져주기도 한 말의 비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