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델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편인 존에게 선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자신에게 있는 거라곤 고작 1달러 87센트, 그리고 아름다운 머리칼 뿐이다. 그녀는 남편의 선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머리칼을 팔기로 결심하는데...
마침내 찾아온 선물 교환식, 델라와 존은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델라가 돈이 없어서 슬퍼하는 건 참 안타까웠다. 가난해도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특별한 날에 남편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인상 깊은 것은 원래 짐은 돈을 잘 버는 사람이었는데 수입이 줄었고 적어도 그 수입이 줄었던 것에 대해서 아내는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수입이 적어진 수준에 맞게 생활을 했던 걸 보면 델라도 생활력이 강한 주부였다.
1 달러 87 센트.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 60 센트는 동전이었다. 식료품점과 채소 장수, 정육점에 그렇게까지 가격을 깎는 인색함을 비난하는 침묵으로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깐깐하게 굴어 한 번에 한두 페니 씩 절약했다. 델라는 세 번이나 세었다. 1 달러 87 센트. 그리고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다. 분명 허름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델라는 그렇게 했다. 삶에는 흐느낄 일도, 훌쩍일 일도, 그리고 웃을 일도 일어나고, 그중 훌쩍거릴 일이 가장 많다는 깨달음이 일어났다.
이 여자가 우는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차츰 수그러드는 동안, 집 안을 한 번 살펴보자. 주당 $ 8에 가구가 비치된 아파트. 정확히 거지는 아니었지만, 정부의 돌봄이 필요한 것은 확실했다.
아래 현관에는 편지가 들어가지 않는 편지함과 사람의 손가락으로 울리는 소리를 달랠 수 없는 전기 버튼이 있었다. 또한 "제임스 딜링엄 영"이라는 이름이 적힌 카드도 여기에 부속되어 있다. 이전에 경기가 좋을 때, 사장으로부터 주당 30달러를 받고 있을 때 "딜링엄"이 생활을 감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제 수입이 20 달러로 줄어들자, "딜링엄"의 편지는 마치 겸손하고 잘난척하지 않는 D와 계약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흐릿해 보였다. 그러나 제임스 딜링엄 영 씨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아파트에 도달할 때마다 "짐"이라고 불렸고 제임스 딜링엄 영부인이 크게 포옹해주었다. 그녀는 이미 델라로 독자들에게 소개 되었다. 모든 것이 아주 좋다.
델라는 울기를 마치고 그녀의 뺨을 파우더 수건으로 닦았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회색 뒷마당에서 회색 울타리를 걷고 있는 회색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일은 크리스마스이고, 그녀는 짐에게 선물을 사줄 1.87달러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 결과를 내기 위해 몇 달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페니를 저축했다.
이 작품은 오 헨리가 쓴 것이다. 어릴 때 이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눈물이 나올만큼 슬프고 감동적이었다. 아내 델라는 악착 같이 돈을 아껴서 1달러 87센트를 모았다. 그것은 잡화상, 야채가게, 정육점 주인에게 떼를 써서 모은 것이었다.
델라는 이상적인 아내인 것 같다. 아마 추측컨대 델라는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경제 관념을 아주 철저하게 교육받은 것 같다. 나는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절약하는 자세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델라는 다음날이 크리스마스인데 수중에 돈이 적어 울고 말았다. 이 문구를 읽으니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다.
1.작가소개
모파상,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 소설 작가라 불리는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다. 오 헨리라는 이름은 교도소 복역 사실을 숨기기 위해 쓴 필명이다.
그는 186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태어났다. 학교를 졸업한 뒤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1882년에는 텍사스로 가서 농장 일을 하기도 했으며, 오스틴에서 은행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Houston Post)라는 곳에서 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고 한다.
작가소개
오 헨리(Henry. O, 1862. 9. 11 ~ 1910. 6. 5)
미국의 소설가, 본명은 윌리암 시드니 포터이며 오 헨리는 필명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에서 출생, 어려서 일찍 양찬을 잃고 정기교육을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견습 약제사, 우편배달부 등 다양한 일을 한다. 텍사스로 이주한 뒤 오 헨리는 25세에 결혼을 하게 되며 1891년 오스틴 은행에 근무한다. 그러나 1896년 공금횡령의 혐의로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며, 이 시기는 그가 작가로 발돋움 하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석방과 동시에 뉴욕으로 이주하며 작가생활을 시작했으며 그의 첫 작품 ‘캐비지의 왕’을 시작으로 불과 10년 남짓한 작가활동 기간 무려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그는 오랜 시간 고독하게 보냈으며, 누구에게도 자기의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고집스럽게 자기 세계를 지켰으며 그 내부로는 누구도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하였다.
One of the most famous American novelists, O. Henry has lived a turbulent life since his Childhood. O. Henry lost his mother who suffered from tuberculosis when he was just three years old, and his father who was alcoholic did not serve as father. Because of this, Henry had a lonely childhood. Futhermore, his wife also suffered from tuberculosis, while he spent three years in prison for misappropriating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