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엄격한 지적 절제와 미학적 균형으로 함축적인 소설 미학을 완성시킴으로써 한국 산문 문체의 모범으로 평가되는 황순원의 대표 단편 20편이 수록되어 있다. 황순원의 작품 세계는 매우 광범위하고 변화무쌍하다. 타계하기까지 오로지 문학에만 전력 투구했던 그는 작품의 완결성을 지향하는 노력 못지 않게...
독 짓는 일을 하는 송 영감은 눈밭에 쓰러져 있던 젊은 여인인 옥수를 구해 준다. 이후 그들은 부부가 되는데, 그들의 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 그동안 옥수를 찾아 헤매던 옛 애인인 석현이 찾아온다. 석현은 다시는 옥수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송 영감 밑에서 독 짓는 일을 거든다. 결국 석현과 옥수는 야반도주를 하고 그때부터 송 영감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애ㅆ 지은 독은 깨져 버리고 병든 송영감은 어린 아들을 양자로 보내게 된다. 송 영감은 비탄 속에 죽음을 맞이하고 세월이 흐른 뒤 장성한 아들이 송 영감의 가마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참회하기 위해 그곳에 와 있던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송영감은 독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젊은 아내는 조수와 바람이 나서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떠나고, 송영감은 아들 당손이를 남의 집에 보내게 된다. 홀로 남겨진 송영감은 가마 속으로 들어가 양 무릎을 꿇고 죽음을 맞이하며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 이다.
이 책에서는 참 순간순간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것 같다. 먼저 송영감이 아들을 보낼 때 죽을 척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아들이 더 좋은 곳에 가서 살길 바라는 송영감은, 자신이 죽어서 더 이상 아들 당손이를 키울 수 없으니 다른 집으로 보낸다는 것을 당손이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죽은 척을 했던 것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일까?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속 송영감에게 그가 정의한 삶의 의미는 그가 한평생 지어온 ’독‘ 그 자체이다. 송영감은 자신의 가치가 무너짐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자신이 지켜온 가치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독 짓는 늙은이‘가 발표된 시점인 1950년은 구시대와 현시대의 가치가 어느 시대보다 극렬하게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전통적인 삶은 설 자리를 잃어 갔고 송영감이 한평생 만들던 독 역시 과거의 잔해, 유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송영감을 사회패배자나 시대부적응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온당치 않을 수 있다. 송영감은 독을 짓는 장인으로서 자신이 만든 독에 강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게 독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그의 혼을 불어 넣은 예술 작품이다.
책 선정동기
: 장인 정신을 다룬 뮤지컬 ‘서편제’를 최근에 다시 봤다. 그 뮤지컬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뮤지컬과 비슷하게, 장인 정신과 직업 의식을 일깨워주는 책을 찾다가 독 짓는 늙은이를 읽게 되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편하고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여 많은 돈을 버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인생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진정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장인정신이라는 단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이 책을 선정하여 독서록을 적게 되었다.
인상적 문장 혹은 대사, 그 이유
: “송 영감은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물일랑 흘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저렇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감은 송영감의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대강의 결말을 예상했다. 송 영감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의 괴리, 현실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이런 결말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송 영감은 내용이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분노를 참고 있다. 송 영감의 아내는 송 영감의 젊은 조수와 눈이 맞아 도망갔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송 영감은 벼랑 끝 같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어린 아들인 당손이를 다른 집에 맡기자는 앵두나뭇집 할머니의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제안까지 듣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한 가장이, 한 장인이,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상황 중에서 가장 참담한 상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그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송 영감이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그가 지은 독이 뜨거운 불길 안에서 견뎌 내는 것이었다.
나는 이 작품에서 독을 짓는 노인의 예술혼, 장인정신보다 더 눈에 띄고 가슴에 닿았던 점이 죽음이라는 주제였다. 이 작품 말미에 송 영감은 독을 굽는 화로에 자신의 몸을 밀어넣으면서 육체적인 죽음을 택한다. 사실 아내가 조수와 도망간 이후 송 영감은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떻게든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 다시 독을 짓는 일을 하고, 또 어린 아들에게 밥을 어떻게든 먹이면서 삶을 유지하지만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서 송 영감이 빚었던 독이 툭툭 부서지면서 연명하고 있었던 늙은이의 생은 그렇게 종언을 맞는다. 어찌 보면 아내가 도망가고 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면서 송 영감에게 죽음은 확실하게, 아주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기절을 하면서 독을 빚는 일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독이 뜨거운 불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들을 놓아주기로 한다.
서술 방식에 너무 감탄해서 작품의 의의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어 가는 세태의 변화 속에서 '독 짓기'에 대한 집념을 지닌
늙고 병든 한 노인이 현실적 번민의 상황과 대결하다 패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더불어 세계에 대한 패배감이 비장한 장인 정신에 의해 예술적인 숭고함으로
승화되는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도 되어있었다.
<중 략>
작품을 읽는 내내 송 영감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아내와 제자에 대해 그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 분노를 풀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서 제자가 만들어놓은 독을 깨지도 못하고
구워야 하는 그 안타까운 심정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남은 힘을 모두 다해 독을 구웠지만 자신이 구운 독만 터져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이 늙어버렸다는 사실에 송 영감은 얼마나 서러웠을까?
결국 독을 대신하려고 가마 속으로 들어 가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사람들의 감성을 좌우하고, 예술적이며 실용적인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고도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디자인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며 전공 분야에 열중하는 내게 이 소설은 더욱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독짓는 늙은이’라는 제목이 문득, 독을 짓는 행위 자체에서 나와 비슷한 예술성, 창조성을 지녔으리라 하는 예감을 주었고, 늙은이라는 표현에서는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졌다. 학창시절 재미없는 글, 우울한 글로 이해했던 이 작품.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된 후로 다시 읽게 된 이 작품은 마치 처음 읽는 글인 마냥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이전에는 황순원이라는 작가는 ‘소나기’라는 작품으로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그 시절은 한참 이성에 호기심이 많고 환상적인 연애를 꿈꾸었던 소녀였으며, 이제는 꿈을 위하여 나의 확고한 분야를 발전시키는 성인이 되었기에 ‘독짓는 늙은이’ 작품에 더 애정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 소개를 하면 황순원은, 해방 이후 이 땅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문학 세계의 특성은 시적 서정성, 언어의 조탁, 고품격의 간결한 문체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로 집약할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품격을 훼손한 적이 없는 작가라고 한다. 이처럼 올곧은 삶을 유지하면서 고집스럽게 ‘인간성 옹호’ 또는 ‘인간 중심주의’ 의 문학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후학들로부터 “작가 정신의 사표” 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작가이다. 그는 초반에 시인으로 출발했으며, 1940년 첫 단편집 ‘늪’을 내놓는다. 이어 그는 단편 ‘소나기’ 등을 통해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이후 ‘그늘’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그는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1942년 낙향하여 묵묵히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그 이후는 독짓는 늙은이 이후이므로 생략)
1. 줄거리
이야기는 앓는 남편과 어린자식을 놔두고 아들 같은 조수 놈과 도망간 아내에 대한 원망의 잠꼬대로 시작된다. 온갖 욕설이 섞인 송영감의 잠꼬대에 그 옆에 누워 자던 어린 아들이 울먹이는 소리로 그를 깨워 놓는다. 언짢은 기분에 잠이 깬 송영감이지만 종내 훌쩍이는 안쓰러운 아들의 모습에 꿈속에서처럼 애를 끌어 앉는다. 악몽을 꾸었던 자기의 더운 몸에 비해 아들의 몸이 별나게 더욱더 차가웠다. 차가운 아이의 몸을 꽈악 안으며 송영감은 다시 한 번 도망간 아내를 괘씸하게 생각한다. 또한 아내와 함께 도망간 조수에게도 왠지 모를 적대감을 느끼며 조수가 이 가을에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혼자 지어놓다시피한 중옹, 통옹, 반옹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자기네 부자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될 것임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무기력감에 지그시 무거운 두 눈을 감는다.
날이 밝자 송영감은 독을 만들기 위해 바삐 준비를 한다.
독짓는 늙은이의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무엇이든 기계가 척척 해주는 시대이다. 하지만 독짓는 늙은이는 이에 버텨나간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나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철저히 배제한 채, 송 영감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다.
<중 략>
늙고 병든 자신과 어린 아들을 버려 두고 젊은 조수와 눈이 맞아 도망간 아내에 대해 송 영감이 품는 분노는 매우 거세다. 여기에 가난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아들의 양육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이렇게 불안한 현실 앞에서 송 영감은 고집스럽게 독을 만든다.
<중 략>
아내가 병든 자신과 어린 자식을 버리고 젊은 조수와 함께 달아나자 심한 분노를 느낀 송 영감은 어린 자식과의 생존을 위해 병든 몸임에도 독 굽는 집념을 버리지 않는다. 이웃인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차라리 아들 당손이를 남에게 주라고 제의하나 송 영감은 할머니를 몹시 나무라면서 오히려 독 짓는 집념을 더욱더 불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