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그만 체험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엄마의 말뚝 2> 등 작가의 대표작 5여 편을 담았다.
이 책은 중고등학교 국어, 문학 선생님들과 전문연구자 50여 명이 이메일대화를 통해 청소년들의 눈높이와 문제의식에 맞춰 읽기 쉽게 구성한 해설을 덧붙였으며,작가의 인생관과 소설의 배경이...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는 단지 여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다. 세상에 나온 이상 이제 어엿한 인격체로 환영과 축복을 받아야할 생일날 영문도 모른 채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피차 랜덤으로 인연이 정해졌는데 초면, 아니 얼굴을 보기도 전에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이미 만들어서 정해놓은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던 아기의 성별을 갖고 왈가왈부 하는 꼴이 가관이다. 태아 입장에서는 자신이 생기고 싶어 생긴 것도 아닌데 태어나지 못 하거나 태어났어도 환영받지 못하는 게 억울할 것이다. 산모 역시 힘든 산고를 겪은 후 편히 쉬어야할 공간에서 몸을 회복하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만 입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동시에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산모를 보고 있자니 ‘나’는 나의 아이들을 낳고 몸 풀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딸만 낳은 며느리를 구박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나’의 남편은 외아들인데, 첫딸을 낳고 ‘나’는 시어머니가 아들을 바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불편해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손주들을 맞이한다.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힘들게 시어머니를 모시던 ‘나’는 신경 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괴로워한다. 결국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요양원을 보러 가던 중에 초가지붕의 박을 보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해산 바가지를 떠올리며 시어머니의 생명 존중의 태도를 깨닫는다.
1. 들어가며- 한국전쟁과 기지촌에 대하여
박완서의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다. 이 소설은 전후 남한의 한 기지촌에서 산부인과를 연 한 여의사의 이야기이다. 기지촌에서 산부인과를 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러한 설정은 참으로 섬뜩하면서도 끔찍한 내막을 가지고 있다. 기지촌에서 주로 군 매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산파술보다는 오히려 원치 않는 생명을 없애는 소파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시절을 살다간 여성들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본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3개의 작은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화자가 산부인과를 그만두기 까지 마지막 사흘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제목처럼 ‘그 가을의 마지막 사흘’동안, 화자는 자신이 그동안 해 왔던 일을 회상한다. 전쟁당시 기지촌에 산부인과를 열던 것, 그때의 자신의 마음가짐, 자신이 진료한 여성들 그리고 여성들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 등의 대표작을 가진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로서 현실의 일상과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하던 작가의 매력이 담뿍 담긴 작품이다.
시대는 막 6.25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던 80년대로 주인공은 산부인과 의사다. 그녀는 미군부대 가까운 곳에 병원을 냈다. 산부인과를 떠올리면 으레 출산을 반복하는 직업이려니 하지만 시대를 앞서 나갔던 생각은 출산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아닌 태아를 죽리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첫 환자는 건물 주인집 남자의 강간당한 딸이었다. 피난 후 돌아온 딸은 강간당해 임신한 상태였고 돌아오자마자 산고를 겪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은 화제는 “위로”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방식의 위로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서 “위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위로는 총 네 가지의 위로방식 이었다.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괜찮아지는 위로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즈음에 주인공은 형님이 언제나 통곡의 벽이라고 표현했다. 주인공이 자신의 형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건 털어놓으면서 조금은 자신의 감정이 정리되고 위로를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나는 속상했던 일을 친한 친구에게 조곤조곤 이야기 하다 보면 조금은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경험이 종종 있다. 상대방이 특별히 위로를 하려고 애써준게 아닐 때조차도 말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소설에 대한 내용보다는 소설의 제목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소설 제목을 보면 알다시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대략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 책에 주인공인 중년 여성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태인데 나는 이러한 전개 부분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릴 때 “차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또는 가족끼리 어디를 갈 때 우연한 사고를 당해서 나를 포함한 가족 4명중에서 나와..
<중 략>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읽는 내내 속이 불편했던 작품이었다. 우단의자와 동부의원 간의 이질감처럼, 이름 모를 화자의 속내는 나로 하여금 속을 꽤나 불쾌하게 만드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글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화자의 속마음을 알아차렸고, 이내 화자에게서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난 이 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 짧은 소설에서 주제와 직결되는 소재를 꼽으라면 단연 우단의자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는 것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쟂빛과 녹두빛의 우단의자. 왜 화자에게 이 우단의자는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천덕꾸러기 취급도 못하고 여지껏 남으로 난 창가에 모셔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개업 당시 화자의 아버지는 화자를 찾아와 우단의자에 앉아 있다가 의술은 인술임을 말하고서 떠났다. 화자는 이 우단의자가 자신의 또 다른 넋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또 다른 넋은 무엇일까. 바로 여기 이 작품의 넋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