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가적 자기수양의 근거와 방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성리학 입문서 <대학>과 <중용>을 번역한 책. <대학>은 도덕적 행위의 원리를 파악하고 사고하여 스스로 도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전해준다. <중용>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으로 이어지는 성군의 도를 밝히면서 누구나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과 <중용>은 새로운 유학사상인 성리학의 이론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논의의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번역본에서는 주희가 해석한 것에 근거하여 <대학>과 <중용>을 번역하고, 전체적인 체제 역시 주희가 장절을 나눈 것에 근거하여 나누고 있다. 장절에 대한 설명은 주자학자들이 붙인 것에 따라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중용」은 본래 「예기」의 제 31편에 속한 것이다. 이것은 사서중의 하나로 유가의 기본적인 경전이다. 이것은 송대 성리학의 발전과 때를 같이 했으며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자사’와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용이 추상적인 개념이다 보니 이것을 설명하는데도 한마디로 딱 떨어지게 말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반복되는 내용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용」, 최준하 역해, 청아, 1993, p186,187,208,269,270,318,319,320
우선 중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중’이란 누구에게나 알맞고 적절한 도리를 나타내며 ‘용’은 언제 어디에나 있고 영원불변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중용’이란 시대와 상황에 가장 잘 부합하며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과 중용을 읽을 때마다 늘 복합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글의 분량이 다소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도덕적 규범과 자기수양의 원리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게다가 주희가 직접 장과 절을 나누어 주석을 달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해석의 방향이 명료해지기도 한다. 성리학의 입문서라고 불릴 만큼 이 두 텍스트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학문의 근본을 배우는 열쇠가 되어 왔다. 주희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이 해석을 붙였지만, 주희의 손을 거치면서 한층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었다고 느낀다.
대학의 첫 부분을 읽을 때, 마음 한켠이 묘하게 울린다. 그 글은 개인의 수양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그 방향성을 드러낸다. 학문의 길이란 결국 자신을 수양하고 올바른 행동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희가 강조한 것은 단지 학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완성도 높은 인격을 갖추고 이웃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요청인 듯하다. 대체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性)’과 ‘리(理)’는 인간 본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토대가 된다. 대학을 읽으며 그런 점을 되새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삶을 더 깊이 돌아보게 된다.
명료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대학은 총체적인 수양의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마음을 맑게 하여 자기 내면을 주의 깊게 반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민심을 헤아리고 극기하여 본질적인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개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정과 사회, 국가에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한 개인이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주변에 참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면, 결국 더 넓은 세상에 빛을 나눌 수 있다고 보았던 셈이다. 그것이 옛 성현들이 꿈꾸던 진정한 학문의 길이라 여겨진다.
권력자는 반드시 성인이 될 필요가 있다고 한 점, 초점이 백성에게 맞추어져 있는 점은 매우 좋았다. 사람의 욕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 점도 좋다. 사람은 항상 여러 가지 욕망을 품고 살고 있다. 주희는 혼자인 자신, 그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아야 한다고 한 점도 인상적이다.
어떤 욕심을 주로 채우고 살고 있는지 그걸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욕심이라고 하는 것이 쉽게 제어가 될 리가 없는데 그걸 파악한다고 절제가 될까 하는 순수한 의문은 든다. 중용의 정신은 ‘적당히’를 강조한 부분도 있다. 겁도 내지 말고, 그냥 걱정도 하지 말고 살아라.
저는 고대 중국의 철학과 그 깊이 있는 사상에 매력을 느껴왔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저를 주희의 「중용」으로 이끌었습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유학과 성리학의 복잡한 이론을 어떻게 쉽게 풀어낼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주희는 중국 성리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의 철학적 사상은 당시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저술은 유학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의 도덕적 발전을 위한 실천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어떻게 하면 그의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도덕시간에 중용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중용에서 재미있는 점은 세상의 도리를 따르되 나의 주관이 개입이 된다는 점이다. 그냥 주어진 세상 이치대로 살자는 건 아니다. 세상 본성에 맞게 살되 나의 주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중은 가운데 중인데 희로애락과 결부된다.
사람 감정이 중이라는 것이다. 중용은 그냥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중용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계속 하는 자들이 많이 없다고 한다. 고전에서도 지속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다. 중용은 좀 안다고 깝치는 게 아니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라고 한다.
중용은 내가 좋아하는 용어이다. 중은 가운데 중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용은 떳떳하고 바른 것을 의미한다. 중용은 한 마디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만의 것을 갖고 떳떳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좋은 면을 수양하는 것이다. 중용인 삶을 살면 성자, 군자가 될 수 있다.
고전이라고 듣기만 했지 처음 읽어보았다. 철학적이고 조금 어려운 내용도 많았다. 모든 내용이 전부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읽고 나니 왜 계속 사람들에게 읽히는 좋은 고전인지 이해가 되었다. 공자와 관련된 책으로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노자, 장자가 논한 ‘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냥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그냥 나 타고난대로 물흐르듯이 살아야한다고 하는것인데 도가 사상과 접점이 있는 것 같았다. 인생사는 방법이랄지 판단력을 키우는 것 자체가 중용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나의 뜻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정에서 윤리를 가르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부모·자녀·부부 등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등한시되고 좋은 대학에 진학을 위한, 자격증, 스펙을 위한 공부만 중요시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요즘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사건들 역시 나는 우리의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 중용을 읽으면서 인간관계가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족문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타인과의 이해충돌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내 삶을 성장시키는 미덕을 넘어 이를 실천할 수 있었다.
들어가며
현존하는 유가 경전 중에서 가장 분량이 적지만, 그 내용과 사유의 웅혼한 스케일로 말하자면 가장 거대한 경전이라 말할 수 있는 ‘중용’을 읽었다. 다른 경전들보다 읽기가 어려웠고, 특히 ‘대학’이나 ‘논어’등을 읽고 나서 읽어야 이해하기 수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자도 사서의 독서법을 논함에 있어. ‘대학’을 먼저 읽어 유학의 대강을 정립하고,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근본을 확립하고,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논어’의 주제가 발전되어 나가는 그 논리를 파악하고, 최후로 ‘중용’을 읽어 고인들의 미묘한 사유의 세계를 추구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중용이 가장 미묘하고 가장 압축된 최후의 경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의 이해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공자가 아닌 자사가 저술한 것으로 일단락이 되고 있다. 이 중용은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속하며,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으로,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었으나, 남송시대 정자와 주자 등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독립하여 출간되어 우리가 아는 ‘중용’이 되었다.
중용의 뜻을 풀어보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으로 사서의 하나인 ‘중용’에서 말하는 도덕론을 의미하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중(中)’이며,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용(庸)’이라고 풀이한다. 이처럼 중용은 그 심오한 뜻은 몰라도 그 단어 자체의 뜻으로 우리는 대강의 의미는 알고 있다.
중용은 총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주로 중용 또는 중화사상(中和思想)을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성(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용」은 동양 철학인 사서(四書) 중에 한 권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썼다고 알려진 책이다. 그리고 유교 덕목 중에 하나로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떳떳한 알맞은 상태를 뜻하는 도덕규범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논어에서 제시된 많은 지혜들을 각자의 삶에 적용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지침을 주는 것이다. 조금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중용의 덕이 그저 한족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적 이해를 넘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양쪽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양끝을 모두 고려한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6장에서 정확한 이해를 돕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양쪽의 의견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고 주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거나 배척함으로 내 의견이 옳음을 주장하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가운데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 포용력 있는 선택과 결정들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용이라는 책은 처음에 유학자들에게 관심 없던 책이었는데, 송(宋) 이후에 유교와 불교, 도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중용의 필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