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장화홍련전, 양반전, 허생전’ 이 4가지의 작품들 모두 고등학교 문학 시간 혹은 한국사(역사) 시간에 한 번 이상 언급된 적이 있는 익숙한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양반전을 선택한 이유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동네 도서관을 갔는데 청소년이 읽어야 할 필독도서 목록에 양반전이 포함되어 있어 읽었던 적이 있어 선택하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내용을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 성인이 된 지금의 내가 다시 읽었을 때의 생각도 궁금했으며 생각의 변화가 있을지도 궁금했다. 작품 속에 많은 뜻이 들어있어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박지원의 양반전, 허생전, 민옹전 등을 읽고 제일 유명한 호질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제일 용감한 동물인 호랑이에 빗대어서 양반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잘 한 작품인 것 같다. 명분만 내세우고 겉으로 보이는 면만 중시하는 양반보다는 오히려 사람보다 동물인 호랑이 세계가 더 좋아 보였다. 조선시대의 작품이지만 요즘 시대에 적용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점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지혜롭고 용맹스럽고 날래고 어질고 사납기로 유명한 동물인데 비비원숭이 등은 때로 호랑이를 잡아먹기도 한다. 사자가 큰 나무 옆에 숨어 있다가 호랑이를 잡아먹기도 하고 톱날 이빨을 가진 자백이라는 짐승이나 표범같이 생긴 표견도 호랑이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백 같은 동물보다도 호랑이를 더 무서워한다.
범이 부하인 창귀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한 결과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한다. 이때 고을에 도학으로 명망이 높은 북곽 선생이 열녀로 칭송받는 젊은 과부인 동리자의 방에 들어가 정을 통하려 했다. 성이 다른 동리자의 다섯 아들은 북곽 선생을 여우로 오해하여 들이닥쳤고 이를 피해 달아나던 북곽 선생은 똥구덩이에 빠진다. 북곽 선생은 간신히 똥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왔으나 뜻밖에 범을 만나고 범은 더러운 선비라 탄식하며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하는 태도를 신랄하게 꾸짖는다.
오랜만에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누리는 고전 작품들을 찾아보던 중, 어릴 적 읽어본 기억이 있는 ‘호질’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감상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살던 당대의 사상이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알아보았다.
작가는 조선 후기의 사상가이자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작품을 통해 양반들의 가식적인 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엄격한 신분제와 당론으로 분열되어 있던 당시의 정치 현실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양반전의 줄거리를 먼저 설명하자면, 한 마을에 양반이 있었는데 이 양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매번 쌀을 관아에서 얻어서 생활했는데 얻어먹다 보니 천 석이 넘는 양을 얻어먹었다. 사찰을 나온 관찰사가 많은 빚을 진 양반을 잡아오라고 한다. 갚을 능력이 없는 양반은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자신의 신분 때문에 멸시당하고 있던 부자가 양반의 빚은 갚아주는 대신 양반의 지위를 사기로 했다. 군수는 이 사실을 알고 고을의 백성, 양반, 장사치 등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증서를 만들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군수는 부자가 이제 양반이 되면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을 나열했다.
호질은 호랑이의 꾸짖음이라는 뜻이다. 호랑이가 의인화가 되어 북곽 선생의 잘못을 질책하고, 당시 양반들의 부도덕성과 허위의식을 비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나타나 있다.
북곽선생은 벼슬에는 관심이 없으나 학식이 매우 높은 학자이다. 이는 겉과 속이 달라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이며, 부도덕한 행동을 많이 한다.
호질에서 가장 주된 것은 썩은 위선 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인륜은 고려하지 않고 아부에 눈이 멀어서 창귀들의 행실을 하고, 선비라는 계급을 가졌음에도 동리자와 간통을 하고 달아나다가 범을 만나서 아첨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마지막까지 위선적인 인물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말이 있다.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 라는 말의 뜻은 ‘의무가 없으면, 귀족이 아니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지도층에 속하는 북곽선생이 갖는 의무 중에는 비굴하지 않을 것, 도덕적으로 올바를 것, 절개를 지킬 것이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자신의 권리를 모두 누리면서 의무를 감당해야 할 상황이 오자 이를 회피하는 귀족이 귀족일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사람은 귀족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귀족이 누릴 권리를 누릴 자격은 없다고 본다.
연암 박지원은 이 책에서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한다고 소설 해석에 적혀있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며, 항상 이익을 필요 이상으로 취하기 때문에 서로를 해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 성인다운 삶.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지금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이 아닐까?? 아니면 그 위선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못할 정도로 나의 삶이 바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조선 사회에서 성인에 보다 가까운 인물들, 그리고 성인이 되고자 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양반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본받고 실천하며 타인에게도 이 가르침들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있어 양반이란 그들의 신분은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도 더 한층 자신을 가꾸어 주었다. 그들 스스로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성인의 모습과 행동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그들을 박지원은 ‘호질’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왜 박지원은 성인의 그림자역을 자처한 양반들을 그리고 자신도 양반이면서 왜 이렇게까지 양반들의 모습과 생활을 비판하고 나선 것일까?
Ⅱ. 본론
연암 박지원의 「호질」이라는 작품은 의인화한 호랑이를 등장시켜 북곽 선생으로 대표되는 선비들과 가짜 열부 동리자의 이중적 행태를 신랄히 풍자하고 비판하였으며, “하늘로부터 명한 바로서 이를 본다면, 호랑이와 사람은 이에 곧 가운데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으로 이를 논한다면, 호랑이, 메뚜기, 누에, 벌, 개미 사람은 아울러서 길러지니 서로 어긋날 수 없다”고 일컫는 등 만물평등사상이 깃들어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 이다. 첫 번째는 소설에 일격을 당할 대상들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유교 사상의 영향 하에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긴 하였지만 아직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가 변할수록 사람들의 사고는 깨어지고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신귀족’이라는 틀을 만들고 자신을 그 속에 편입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산중에 밤이 되자 대호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있었다. 의사를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맛 좋은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범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에 사는 도학자 북곽선생은 열녀 표창까지 받은 이웃의 동리자라는 청상과부 집에서 그녀와 밀회하고 있었다. 과부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이들이 엿들으니 북곽선생의 정담이라, 필시 이는 여우의 둔갑이라 믿고 몽둥이를 휘둘러 뛰어드니, 북곽선생은 황급히 도망치다 분뇨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기어 나온즉 그 자리에 대호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비라 탄식하며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