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경제 전체를 조직화하려는 사상적 흐름이 궁극적으로는 독일에서 ‘나치’의 등장에 이르게 하였고, 소련에서는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도달하도록 하였음을 직시하였던 하이에크는, 영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게 특히, 이 책을 바친 모든 정당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런 사회주의의 길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자유 시장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부가 경제를 지나치게 통제할 때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 책입니다. 하이에크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국가가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할 경우 결국 전체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합니다.
하이에크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20세기 초반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경제 위기를 겪으며 정부가 경제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를 추진하며 시장을 통제했습니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변화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Ⅰ. 서론
이 책이 쓰인 시기는 1944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1년 전이다. 당시의 영국은 19세기를 지배했던 자유주의가 쇠퇴함과 동시에 사회주의가 도래하여 계획경제를 추구하는 분위기였다고 하이에크는 서술한다. 반면 독일의 경우는 전체주의로 이끌어온 전쟁 끝에 파멸 직전의 상황에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국가의 상황은 그 방향에 있어서 차이가 매우 컸다. 영국사회는 사회주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기반에는 19세기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과 부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쟁을 자유시장 경제의 작동원리로 보는 대표적인 시장 경제주의자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경쟁시장의 규칙을 강조하며 사회주의의 핵심 요소인 계획경제의 모순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에 내재한 전체주의적 요소를 분석하며, 마지막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그 방법을 제시하였다.
Ⅱ. 줄거리
제1장 버려진 길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럽전반에 사상적 변환이라는 갈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영국은 단지 변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속도가 디뎠기 때문에 사상적 전쟁을 피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의미는 다르게 변질되고 있었다. 처음 개인주의의 의미는 ‘관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산업발달과 인간욕구의 다양화를 초래하고, 이를 충족함으로써 더욱 진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자유주의를 소극적 신조로 간주하고, 자유를 무한한 소유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되면서 기술적 발전에 집중하게 되고, 자유체제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희미해져갔다. 기존의 긍정적이었던 의미가 부정적으로 탈바꿈되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사회의 힘이 선택되어진 목표로 향하도록 자유를 의도적으로 설계할 뿐 더러 집단적인 의식인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사상의 동향에는 나치즘을 내세운 독일이 앞장서 있었고, 영국을 비롯한 나머지 유럽 국가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가끔 문득‘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제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같은 땅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지만 공산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에 따라 이렇게 사는 모습이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나쁘다고만 배웠는데,왜 나쁜 건지,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된 건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의문들이 저를 ‘노예의 길’이라는 책을 읽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3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의문은 위에 말한 사회주의가 왜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우리 모두의 자유를 공동의 목표로 정하는데 왜 결과는 통제와 강압의 모습으로 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습니다.
경제정책의 기조가 자유주의의 반하고 있는 오늘날 정치의 상황에서 『노예의길』과 같은 고전은 마른날의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책에서 내내 비판하고자 하는 시스템은 결국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하이에크가 2019년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각 정부 관료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을 것이다.
경제학과 학생으로서 평소에 경제정책이나 현황을 유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각종 미디어나 언론, 기관을 통해서 한국의 현 경제 상황은 많은 경고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전혀 이런 상황을 만들어온 정책들의 기조를 전혀 변경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거나, 생기는 문제들을 상처가 치유되는 단순한 과정으로 여긴다는 것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는 분명히 대한민국을 하이에크가 언급한 노예의 길로 인도하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1929년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실업자의 수는 폭등했고, 그로 인해 사회는 피폐해져갔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을 내세웠다. 사람들은 뉴딜정책을 환영했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수정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수정자본주의’는 경제학에서 4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인정받고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에 반기를 들면서 국가의 경제 개입을 비판했다.
그러나 1944년에 세계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고, 당시의 유럽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믿겨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책은 한쪽으로 치우쳐진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영국 내의 사상적 변화를 비판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영국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사상에서 벗어나 계획 경제와 시장 통제를 통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자 했으며 미국 또한 케인스의 총수요 이론을 찬양하며 국가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을 옹호했다. 필자는 하이에크가 사회민주주의 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그와는 정반대되는 자유경쟁주의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시간이 흘러 197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결국 하이에크가 주장하는 자유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필자는 책의 인상 깊은 구절에 대한 필자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경쟁이다. 그리고 경쟁은 개인의 자유로부터 나온다’라는 글귀가 필자의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자유의 가치를 보존하자는 역설과 더불어 이를 위해 자유를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필연적인 억압과 불합리성을 논증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어했으나 명성과는 달리 시중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워 읽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기회가 되어 읽게 되어서 기쁘고, 명성에 걸맞게 내용의 깊이, 논리의 탄탄함은 물론이고 내가 모르고 있거나 아주 오해하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아 준 서적이다.
먼저 이 책이 출판되었던 시절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의 사회주의 소련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득세하고 그런 사회모습이 이상적인 국가라고 많은 사람에게 여겨지던 시절이다. 그러한 물결 속에서 이제껏 서구사회를 풍요롭게 만든 개인주의적 도덕이나 자유의 가치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구시대의 지나간 유물로 치부되어 점차 전체주의적 신조가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었다.
이 책은 1944년 3월 영국 루틀리지에 의해 처음 출판된 하이에크의 저술로 고전이 되었다. 처음 이 책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된 것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서이다. 그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정치에 대한 사상적 충격이었다 할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후 프리드먼이나 다른 여러 자유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고 현재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쉽게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번 읽고서는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책이지만 한번을 접하여 우리 생각에 변혁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하이에크가 이 책을 쓸 무렵 시대 배경은 제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영국에서도 의회의 승인을 받은 경제계획이 수행되고 있었다. 현재의 한국의 정치 상황과 유사한 공통점을 지닌다. 경제 전체를 전시와 같이 하나로 조직하고 관리함으로 더 합리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많은 직업과 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이상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쟁 시 승리에 필요한 무기개발을 위해 국가가 과학자들을 동원하였더니 빠른 성장을 이룬 것처럼 평시에도 국가경제를 하나의 조직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시에는 사람들을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에 쉽게 모을 수 있겠지만 평화시에는 서로 다른 가치체계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경제 전체를 조직화하려는 사상적 흐름이 궁극적으로 독일에서 나치의 등장, 소련에서 레닌과 스탈린 주의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우리에게 이 길은 자유가 아닌 독재의 길이라 주장한다.
그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진실을 알고, 사회주의를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시키려는 것은 노예로 가는 길임을 경고하고 있다. 직업과 소득 보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져서 정부차원의 임금과 가격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행될 수록 경제와 빈곤계층의 삶은 더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서론
당시 2차 세계대전 중인 영국이 독일과 유사한 사상의 흐름을 통해 독일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영국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자유주의에 대한 경멸, 가짜 ‘현실주의’아 ‘냉소주의’, 피할 수 없는 ‘숙명론적 운명론’을 수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영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독일의 사회주의 정책을 모방하는 등 영국이 독일처럼 나치즘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독일민족의 특수성이 전체주의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민족사회주의는 사회주의 견해의 만연 때문에 시작되고 확산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일반대중으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장 버려진 길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와 같은 전체주의체제국가에 이전의 상황을 보면 영국과 다를 바가 없다. 유럽전체의 사상의 변환과정에서 전쟁이라는 갈등이 발생한 것이었고, 영국은 단지 변화속도가 늦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추세 속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의미는 다르게 변색되고 있었다. 기존의 긍정적 의미가 점차 부정적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개인주의의 의미는 지금의 단어로는 관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결과는 산업의 발달과 인간의 욕구를 다양하게 하였고, 이를 충족함을 통해 더 진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자유주의를 소극적 신조로 간주하게 되었고, 자유를 자신들의 불멸의 안전한 소유물로 착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의식의 흐름가운데 문명의 진보가 이루어지면서 기술적 발전에 집중하게 되고, 자유체제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희미해져갔다. 이는 결국 모든 사회의 힘들을 의도적으로 선택된 목표로 향하도록 집단적이고 의식인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대체하였고, 자유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조류에는 독일이 앞장서 있었고, 영국을 비롯한 나머지 유
럽 국가에게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2장 위대한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자유주의를 대신하여 대다수 진보주의자의 교리가 되었다. 사회주의가 자유의 깃발 아래 일반적 승인을 얻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