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 최고의 교육 경쟁력을 가진 핀란드의 교실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교육개혁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단골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는 확고한 교육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가정, 성, 경제력,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되며, 시험과 서열을 없애고 발달의 관점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학생들끼리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교육 단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협동하면서 동료의식을 갖게 한다. 이것이 핀란드의 교육이다.
‘핀란드 교실 혁명’은 핀란드 교육 개혁 과정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일본 최 고의 교육 전문가로, 30년 동안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은 경험 을 바탕으로 핀란드 교육 제도의 장점을 소개한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의무 교육을 실시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공교육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 나이다. 또한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적고, 수업 시수가 적은 편이며, 시험 성 적보다는 학습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점들은 한국의 교육 환경과 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곧 익숙해질 것 이다.
교사가 수업하는 내용을 신속하게 받아들이면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고 반응이 느린 학생은 순전히 개인차이라며 반응이 한참동안 없거나 느린 학생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물론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핀란드처럼 교실에서 교사가 인내심을 가지고 학생을 기다려주기 위해서는 한 학급의 학생수가 20명이 넘어가면 곤란하다. 20명 이상의 학생이 한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수업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실제 교육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장에서 생각해 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는 교육과정 편성에 의해 주어진 수업 시간 내에 계획 했던 교과 진도를 끝내야 하므로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바쁘고, 수업한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보통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노력을 덜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연 그럴까? 학생의 탓이 아닌 교사를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은 대체로 교사가 전공한 과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만 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러나, 교사라는 사람은 자신이 전공한 과목에 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교육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나라가 핀란드이다.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성공한 교육 사례의 대표격인 셈이다.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기에 그런 찬사를 받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교육을 걱정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인 후쿠다 세이지가 핀란드 교실을 방문하여 꼼꼼히 스케치하고 느낀 학교 관찰 기록 및 수업 참관기이다. 이런 핀란드 교육적 상황에 우리 교육 현실을 비교하여 박재원 교육전문가가 코멘트 하여 놓았다. 확실하게 장담은 못하겠지만, 우선 일본은 우리 교육현실과 대동소이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방과 후 교육 활동이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이상적인 교육열로 아이들이 고통받는 한국은, 아이들이 즐거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하긴, 조금만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도 명문대 못 가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온갖 비난 속에 시도조차 포기해야 하는 많은 교육자들. 사실 핀란드 교실 혁명은 부모들이 읽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교육 강국 핀란드의 교육 성공의 비밀을 담은 책이다. 대한민국과의 교육방법, 현실을 비교하며 과연 핀란드가 어떻게 해서 세계 최고 학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다양한 면에서 서술하며 알려준다. 강요나 억압 속에서가 아닌 스스로 공부하며, 학교가 가고 싶고 공부가 즐겁다는 핀란드 아이들. 시험이 없는 학교, 강요하지 않는 선생님.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핀란드 교육의 모습은 저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쳤던 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여러 교육 기사들을 갖고 NIE라는 작업을 했다.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것을 요약하고 내 생각을 적는 작업이었는데, 그것 덕분에 많은 교육문제를 느끼게 되었고 다른 나라의 교육방식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이 바로 핀란드 교육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접했던 것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이었다. 그때 너무 놀라고 설레었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 핀란드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 볼 기회가 생겨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정말 꿈의 교육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전율이 일었는지 모른다. 한 문구 문구가 가슴속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우리 교육이 봤을 때는, 실현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이상적인 교육이었다. 우리에겐 어려울 것이라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와는 너무 다른 꿈같은 교육이라고 해서 모른 척 외면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에는 경쟁이 없다. 그들은 경쟁을 통해 개인의 격차를 벌리는 방식으로는 학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고 믿는다. 핀란드는 재능 있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또, 학교는 아이들에게 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배움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교육을 한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의사만 있으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교재가 치밀하게 개발되어 있다. 모든 학생들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부한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므로 어떻게 살 지를 경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교사의 꿈을 가졌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다수의 유럽식 교육에 관한 책을 읽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유럽 교육의 책을 꺼내 든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기엔 조금 힘든 교육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럽식 교육이 좋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 어렵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교육 가치관에 있어 가장 공감할 부분이 많다는 점 또한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이다.
불과 1년 전, 현 교육 입시 제도를 몸소 체험하고 고통 받던 입장에서 그 제도를 아이들에게 적용할 자리로 올라오니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나라는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조금 더 우대받는 것이 현실이다. 나 또한 소위 말해, 학교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학생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장난을 치고 시끄럽게 해도 말썽꾸러기가 아닌 활발한 학생으로 바라봐 주었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교육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핀란드는,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았을 때 교육열이 뜨거운 우리나라와 1등을 놓고 끊임없이 엮이는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 한 명이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 전까지 해야만 하는 공부의 양을 생각했을 때, 핀란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공부하고서도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국민들 중 핀란드 교육에 대한 환상, 그리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핀란드는 적은 인구와 척박하고 메마른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인구수는 적지만 핀란드 같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악조건을 끌어안고 있는 만큼,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에 더욱 힘썼다.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다.’, 이것이 핀란드 교육의 신조다.
내가 바라는 교실
초등학교 일학년.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며 한글을 배워나가던 시기였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선 그림 카드를 보여주면 그림에 맞는 설명 쓰기 게임을 제안하셨다. 선생님께선 한 소년이 아기와 함께 놀아주는 그림 카드를 드셨다.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고, 선생님의 지명으로 앞으로 나가 칠판에 설명을 쓰게 되었다. ‘나는 내 동생과 함께 놀고 있습니다’라고 썼더니 선생님께선 내가 틀렸다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는 네 동생과 함께 놀고 있습니다’라고 고쳐 썼다. ‘내’와 ‘네’의 차이를 확실히 알지 못했던 나는 틀릴만한 건 저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또 틀렸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당연히 내 동생이랑 놀지, 그럼 옆집이나 아랫집 동생을 봐주겠어?”라며 ‘내’자를 지워버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