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해 여러 설명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정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집중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점이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개인에게 적용되는 정의, 사회, 국가가 봤을 때 부합하는 정의는 다르다고 본다. 아무튼 국가를 지배하는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을 보고 일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물론 국가마다 고대 국가는 더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자격이 있다고 할 정도로 우수한 통치자를 뽑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게 정의로운 국가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가론에 대해서, 정의에 입각해 지도자는 보수가 적어야 한다고 한 점도 공감이 된다.
대화가 많고 내용이 솔직히 깔끔한 책은 아니었다. 내용을 보면 사회 정의에 대해서 되게 물질적이게 보는 면이 잘 보인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그 당시 사회만 해도 공직자에 대한 것, 정치에 대해서 이렇게 민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국가의 실체에 대해서 존재감을 다들 느끼는 것 같아 신기했다.
나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그게 금전적이든 어떤 직접적인 다른 보상이든 간에 그것을 민폐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 본다. 명예와 상관 없다고 본다. 거기다가 나라가 치료를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받고 살아나는 것이 더 맞다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론
우리는 플라톤을 말하기 전에 소크라테스를 먼저 말해야 한다. 플라톤의 철학을 논하기 전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소크라테스가 몸 담았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는 매우 어수선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막 그 싹을 틔우고 있었지만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주의 본령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민주주의는 오늘날과 달라서 사회적 여건과 토대도 오늘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서 혼란과 무질서만 양산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일단의 소피스트들은 스스로를 과두정치파로 자처하며 민주정치를 공격하기도 했다.지금도 그렇지만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 체제가 갖고 있는 숙명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당시 40만의 아테네 주민들 중 25만이 노예였고 자유민은 15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연히 노예들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플라톤의 국가는 무엇이 ‘올바름’인가에 대한 대화로 시작하여, 이상국가로서의 정의로운 국가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는데 너무 어려웠고 힘들었지만 평범한 일상에 대해 ‘왜 그럴까?’ 생각하는 것에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음을 느꼈고 이런 생각을 한 점이 신기하고 대단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트라시마코스가 생각한 올바름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반박한 구절이었다. “진정한 지배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지 않고 피지배자의 이익도 생각한다”라는 말이었다. 지배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어도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까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적용해보았다.
“ 아테네의 민주주의 방식 ” 에 대해서 논해 보겠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도편제가 실시되어 시민투표로 지도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추방할 수 도 있었으며 이러한 아테네는 무절제함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지도자는 국민들이 말하는 요구사항에 무엇이든지 들어주려는 결정력이 없고 무능력 하였으며 아테네는 너무 급격하게 복지국가에 투자를 하고 관리들은 국고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였다고 하였다.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속에 담긴 비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플라톤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우선 제 7권의 가장 첫 부분에 동굴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굴 속에 갇혀서 발과 목이 묶인 채로 동굴의 한 벽만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굴 속에 갇혀서 한 방향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무지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고 그들 중에서 지상에서 햇빛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내주는 사람들은 교육자 혹은 교육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동굴과 자신이 보고 듣던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실은 동굴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고 세상은 더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억지로라도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제1권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폴레마르코스,트라시마코스와 올바름이 무엇인지 그것은 이로운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케팔로스는 올바름 속에서 살면 노년에도 희망이 있다면서 그것이 재산 덕분이라 말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빚지지 않고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로써 그는 올바름에 대한 기나긴 논쟁의 서두를 꺼내게 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것만으로 올바름이 설명이 될 수 있겠느냐면서 미쳐버린 친구에게 빌렸던 무기를 돌려주는 것은 올바른 일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폴레마르코스는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 올바름이라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그는 친구에게 이로움을 주고 적에게 해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자기 주장을 약간 수정한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에게 나쁜 것을 돌려주는 것도 올바른 일인가? 친구라고 모두 좋은 사람인가? 적에게 해로움 주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따위의 질문으로 논박한다.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은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지배자들이 법을 제정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목동이 양을 돌보는 것도 주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