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출간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의 개정판이다. 시각 자료가 대폭 개선, 추가되어 역사적 지식도 얻고 책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살았을까’ 시리즈답게 고려 시대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당시의 역사상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내용이 갖추어져 있다. 당시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과 함께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던 고려의 제도적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북방 민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며 생활했던 고려 민중?..
고려시대라고 하면 역성혁명에 망한 국가이지 저항하고 외세에 굴복하지 않았던 정신, 융성한 문화로는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려 시대가 이렇게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분권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토착 향리들의 세력이 매우 강했다.
애초에 호족들이 세운 국가이긴 하니 지방에서 강력한 세를 자랑하는 세력이 늘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교가 너무 융성해서 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불교 때문에 무슨 풍수지리네 수도를 옮기네 이런 걸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안 좋았다고 생각을 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1,2권의 두 권으로 1권에서는 사회, 문화생활 이야기를 2권에서는 정치, 경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1권의 내용인 사회, 문화생활을 중점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사회·문화생활 이야기에서는 크게 세 분류로 나누어 문화와 일반 민중의 삶, 사회생활이라 하여 지금의 행정적 부분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문화를 꽃 피우다’ 부분에서는 고려의 대표적 문화인 불교문화를 들어 대각국사 의천의 중국 유학이야기가 나온다. 왕의 동생인 의천은 그는 중국 유학을 통하여 고려 불교의 ‘눈을 가린 막’을 벗겨 내기 위해 중국 유학길에 오른다. 의천은 철저한 교종 승려였는데 그가 중국에 갔을 당시 선종 불교가 득세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천태학을 배워 천태종을 개창한다. 불교문화가 열렸다면 개혁하는 지눌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눌은 무인시대 승려들이 당시 정치의 참여하면서 본디 불도를 닦고 중생을 구제해야 할 승려들의 세속적 이해관계의 병폐를 말미암아 불교 본래의 사명감을 회복하고 불교계를 개혁한다. 그는 정혜사에서결사를 정해놓고 후일을 기약한다.
Ⅰ. 머리말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밝히듯이 고려시대의 역사상은 고대사나 조선시대사에 비하여 덜 알려져 있다. 감히 고려사는 조선에 비해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고려는 대중들에게 시간상으로도 거리감이 있으며, 사료가 부족한 탓에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 고려시대를 다룬 많은 드라마들이 제작되어 대중들의 관심이 고려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중의 관심은 고려시대의 지배층 이야기에서 멈췄고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피지배층인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려시대의 일반 서민들의 삶을 이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이 책은 어느 역사서들과는 다르게 일반 민중들의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역사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에게도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다른 역사서들과는 다르게 시대별로 서술하지 않고 주제별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개방식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을 더욱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모쪼록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서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면서 그 속에 녹아들길 바란다.
앞으로 서술하게 될 본론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1권의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 2권의 ‘자주와 사대의 사이’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고려시대 서민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서술한 뒤에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그 다음 고려의 사대적이기도 하고 자주적이기도 한 모습들과, 당시의 슬픈 역사였던 공녀에 대해서 서술해보겠다.
Ⅱ. 서민들의 ‘진짜’ 삶은 어떠했을까
ⅰ) 서민들의 삶의 모습
고려시대는 전형적인 농업 사회였다. 고려시대의 백정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지칭했는데, 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서 얻기도 한 농업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왕의 후손은 많을수록 좋다는 내용이었다. 남편 한명에 부인 한명(일부일처제)이 원칙인 오늘날 입장에서 본다면, 예전의 왕들은 많은 아내를 두었다는 점에서 우선 특이한 존재다. 물론 전근대에는 왕뿐만이 아니라 일반인 특히 귀족들도 다처가 가능했다.그러나 귀족의 다처는 본부인(처)외에 첩 한명을 두는 정도가 일반적이었으나, 왕은 여러 명 심지어는 10
명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왕은 왜 일부다처였을까? 왕은 절대권력자이므로 그만큼 많은 여자를 아내로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복적인 이유는 왕의 경우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1. 머리말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한국역사연구회 중세사 1분과원 38명이 42개 항목을 나누어 집필한 것으로, 집필 배경으로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에게 고려시대의 역사상은 고대사나 조선시대사에 비하여 덜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고대사보다 자료가 많고, 풍부한 사실을 끌어내기에는 조선시대보다 자료가 빈곤한 점을 들어, 연구자들이 관심을 끄는 분야도 인접 시대와 비교하면 제한적인 현실을 말한다.
요즘 방송매체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다양한 기획을 하면서도 고려시대사를 다루지 못하는 이유가 자료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일반인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고대 이래 우리 사회가 경험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히 전달하는 것은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의 의무라고 말하며, 집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책은 당대의 구체적인 생활모습과 삶의 커다란 테두리를 쉽고 재미있게 그려, 일반인에게 고려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이 서평에서는 사회·문화생활 이야기를 평하여 보고자 한다.
2. 사회·문화생활 이야기
사회·문화생활 이야기에서는 크게 세 분류로 나누어 문화와 일반 민중의 삶, 사회생활이라 하여 지금의 행정적 부분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문화를 꽃 피우다’ 부분에서는 고려의 대표적 문화인 불교문화를 들어 대각국사 의천의 중국 유학이야기가 나온다. 왕의 동생인 의천은 그는 중국 유학을 통하여 고려 불교의 ‘눈을 가린 막’을 벗겨 내기 위해 중국 유학길에 오른다. 의천은 철저한 교종 승려였는데 그가 중국에 갔을 당시 선종 불교가 득세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천태학을 배워 천태종을 개창하는데, 천태종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으나 그 유래에 대하여 책에서 서술하여 천태종의 이해를 돕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고려시대의 정치와 경제 살펴보기
1. 서론
일반적으로 역사속 정치와 경제를 떠올릴 때 약간은 잔인한 모습들이 떠오른다. 문신과 무신과의 싸움으로 피가 넘쳐나고, 관료들만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나머지 궁핍한 국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힘을 쏟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과연 고려시대의 정치와 경제 속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제부터 고려시대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475년동안 나라에 어떤 이들이 어떻게 정치를 했는지, 그들 사이에서 돈은 어떻게 굴러갔으며 그들의 평탄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경제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정치의 격동, 국가 속 모습, 관료 및 경제생활로 나눠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2. 본론
-1부: 고려시대 정치의 격동 속에서
일부일처제가 원칙인 오늘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고려시대 남편 한명에 여러명의 부인을 두는 일부다처제가 특이하게 느껴진다. 특히 태조가 29명의 아내를 두었다는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 당시의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왕의 권력의식에 기반을 두고 행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왕의 경우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를 이을 아들을 중요시했던 그 시대에 결국 첩들은 왕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미리 갖추어 놓은 대비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대가 이어지면 나머지 첩들은 바로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왕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이들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어 집필된 오영선 연구원의 ‘무신 정중부의 일기’는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요즈음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요즘은 정말 신나는 날의 연속이다’, ‘이 놈의 새끼’ ‘내 신세가 정말 한심하다’ 등 무신 정중부의 거침없이 솔직한 일기는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 나라 정세에 대한 것, 예로 들면 왕이 젊은 문신들과 가까이 하는 모습에 불평을 느끼는 무신들의 모습들 등을 가까이 보는 듯 느낄 수 있었다. 밖에도 왕건이 통일 대업
이 책은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정치, 경제생활을 비롯하여 사회 문화이야기, 고려시대에 꽃을 피웠던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와 풍수지리, 청자 문화를 소개하고 서민들의 삶이 녹아든 생활문화에까지 폭넓게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시간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이야기와 고려시대의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쉽게 이 책의 목적이 ‘역사서’라 하면 흔히 가지게 되는 고루함이나 딱딱한 느낌을 없애고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자 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구조 또한 이러한 집필목적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역사의 분류적인 전개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비해 이 책에서는 그와 달리 먼저 1권에서 문화와 사회를 다루고 2권에서야 정치와 경제를 다룸으로써 처음 제목을 통해서 가졌던 독자들의 호기심에 실망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을 살펴보면 시각 자료가 대폭 개선되고 추가되어 역사적 지식도 얻고 책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살았을까」 시리즈답게 고려 시대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당시의 역사상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내용이 갖추어져 있다. 역사 중심의 책이 아닌 서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쓴 책이어서 역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며 대학생뿐만 아니라 중고생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 생각되었다. 이 책은 어느 한 사람의 저자가 아닌 한국사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역사연구회 회원들이 공동 집필했다. 1988년 출범한 한국사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과학적 역사학을 수립하고 그렇게 하여 나온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하여 전문연구서와 다수의 교양서를 공동 작업으로 발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교과서적 연도별 흐름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어쩌면 이러한 내용 구성 자체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시기의 이야기들이 그 흐름에 따라 나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소주제 안에서 이리 저리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일목 요연하게 시기순으로 정리를 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고려시대의 생활을 쉽고 재미있게 그려 일반인에게 고려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함임을 의식했을 때 이 책은 남다른 가치를 지니게 된다.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한 것은 토지를 욕심내서인가, 반역을 토벌하여 해서
인가. 오직 반역을 토벌하려 했기에 한 번 싸워 후백제 수천리의 강역을 항복시
킨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려 태조의 위덕일지라도 응당 이와 같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땅을 얻고 나서 원흉을 용서하였으니 인의로 시작하고 이익
으로 끝낸 것이라. 어찌 심히 애석하지 않은가.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토벌하고도 그를 살려준 것에 대해 조선 후기
유학자인 유계가 평한 기록이다. 여기서 유계는 아버지 견훤을 배반한 신검을
혹평하는 한편 그런 신검을 토벌하였기에 왕건이 쉽게 승리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역사의 주인이 된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었
다. 신라말의 난세에 나타나 궁예와 견훤을 제치고 통일 대업을 이룩한 것은 그
만한 노력과 자질이 있엇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객관적 시각에서 왕건이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했는가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민족의 바람직한
지도자상을 생각하고 앞으로 민족의 재통일을 이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일
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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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견훤. 왕건의 출현과 ‘후삼국 시대’의 성립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하대로 접어들면서 통치제제가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김양상이 혜공왕을 죽이고 선덕왕으로 즉위하여 하대가 시작된 이후 김경신과
김주원의 왕위 다툼은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흥덕왕이 죽
은 뒤에는 상대등 김균정과 시중 김명이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였
다. 이 싸움에서 패배한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은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힘을 빌
어 민애왕을 내쫓고 왕이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귀족이나 사원은 불법적으로 백성들의 토지를 탈점하였다. 권
력이나 문서위조, 고리대 등의 방법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았던 것이다. 그러
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유민화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
작했고, 결국에는 889년(신라 진성여왕 3) 조세독촉을 계기로 농민봉기가 전개되
었다.
또 하나의 전통, 고려사회의 이해를 위하여
21세기를 눈앞에 둔 요즘처럼 우리의 전통을 알려는 열망이 드높았던 때는 없
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한
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화두삼아 잊혀진 전통을 되살리
고자 노력해 왔다. 전통은 우리들의 현재적 삶을 풍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우리다운 삶의 방식을 찾는 데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통은 언제부터 전통이었으며 언제까지 전통일 수 있는가? 일례로 최
근 ‘동성동본혼금지법’의 존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보자. 한 편에서는
현대 산업사회에 맞지 않는 고루한 인습이라 하여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기자이래의 아름다운 전통이므로 존속시켜야 한다고 반
박하기도 한다. 동성동본 혼인금지가 인습이냐 전통이냐를 떠나서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이러한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라 이래 고려말까지 왕실에
서는 필요에 따라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킨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동성동본
사이의 혼인 금지는 조선 후기 이래 300년밖에 안 된 ‘새로운’전통이다.
이처럼 전통은 사회의 변화 발전에 따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
다. 그러므로 현대에 사는 우리는 동성동본혼 금지가 전통이라고 하여 무조건
고수하기보다는 전통에 생명력을 부어 넣어 현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옷입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현대생활에 편리하게 만든
옷을 개량 한복이 아니라 생활 한복으로 부르자는 주장은 매우 의미 있는 전통
의 현대화작업이라 평가할 만하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의 중세사회에 해당된다. 따라서
두 시대는 중세사회로서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려는 918년에
건국하여 1392년에 멸망할 때까지 475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지속하면서 독특한
문화유산과 전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