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근대 문학의 가장 우수한 시인으로 꼽히는 한용운!시, 종교, 현실을 꿰뚫어 보는 만해 한용운의 작품 세계「님의 침묵」「나룻배와 행인」「알 수 없어요」등 만해 한용운의 대표적 작품들을 한권으로 묶었다.우리 민족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살다간 한용운은 시, 종교, 현실을 꿰뚫어 자신의 의지와...
‘님의 침묵’은 일제 강점기 시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의 시집이 다. 1926년 출판된 이 시집에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님(부 처)이라는 대상을 향한 다양한 표현들이 담겨있다. 1부에서는 님을 조국이라고 해석하여 민족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고, 2부에서는 님을 연인이라 해석하여 불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다. 3부에서는 님을 부처라고 해석하여 종교적 색채 를 느낄 수 있고, 4부에서는 님을 자연물이나 무생물체라 해석하여 동양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5부에서는 님을 화자 자신 또는 독자라고도 해석하여 개인 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님의 침묵’은 승려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이기도 했던 한용운 시인의 서정시이다. 이 시를 안 읽어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시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으로 나눠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의 특징이다.
우선 만해 한용운 시인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시에서 철학적 사색이 드러나는 철학적 시들과 더불어 그가 스님이었기 때문에 종교적 시들을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독립운동에도 힘썼던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저항문학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역시 일제 강점기에 출판된 ‘님의 침묵’이다.
님의 침묵의 주요 내용은 사랑하는 님을 보내게 되어 슬프기는 하지만 떠나간 이는 돌아온다는 믿음으로 다시 희망을 품게 된다는 내용이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실린 ’이별은 미의 창조‘는 님과의 이별에서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에서는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의 대목에서 화자가 이별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이별’이 가지는 슬프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정하며 이별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의 대목에서는 부정 표현인 ‘없-’을 반복하여 리듬감을 주고 있다.
어떤 이는 한용운의 시에는 ‘님’에게 바친 헌시 아닌 것이 없어서, 한용운 시에 나타난 ‘님’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그의 시를 이해하는 전부가 될 수 있다고도 하였다. 나도 한용운의 시를 읽다보니 저절로 ‘님’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한용운이 불교개혁의 영역, 독립운동의 영역, 시의 영역 각각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에, 표현론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님’을 부처 및 불교적 깨달음, 조국의 광복, 연인 등에 초점을 맞춰 그의 시를 해석하는 것은 수험생활을 거치면서 객관식 선지에서 답을 골라내기 위해 정해진 절차였기에, 나에게 거의 고정 관념과도 같았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중 일부이다. 회자정리의 이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헤어짐은 이렇듯 아쉬움이 가득한 슬픔이자 절망이다. 그리하여 한용운 시인은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는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 역설했다. 만나면 반드시 떠나게 될 것인데, 우리는 만남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만남의 시간 속에서 지나치게 서로를 확인하느라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헤어짐의 순간에 억장이 무너지는 서러움에 사무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필자는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헤어지기가 아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할 비운의 만남도 있었다. 며칠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명함들을 발견했다.
이 시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대표작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시를 알고 있을 정도로, 적어도 제목만은 알고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대중적이다. 만해 한용운이라는 시인과 그 시대를 떼어놓아도, 다른 외부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이 시 자체만 보아도 이 작품은 명작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절제된 표현력이나 대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제의식 등이 이 작품을 명작으로 느껴지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서 그 접근성이 아주 쉽게 느껴진다. 가요에서 사랑과 이별 노래가 항상 유행하듯 시에서도 이렇게 누구나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소재와 주제가 있다.
가장 교과서적인 해석. 그러니까 흔히 중고등학교에서 이 시를 가르치면서 자주 알려주는 해석 중 하나가 이 시에서 ‘님’이 조국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한용운은 생전에 조국의 독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창작되었기 때문에 시대 상황과 시의 내용을 얼추 맞추어 보면 그런 해석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해 한용운의 생애
1879년 7월 12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했다. 민적에 기록된 이름은 정록이며, 승려가 되기 전에는 유천이라고 불렸다. 14세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는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성락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동학군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백담사에서 견성득도를 한 그는 이름을 고쳐 법명을 용운이라 하고 호를 만해라 하였으며 41세인 1919년, 일본에 있는 우리 유학생들이 2월 8일 독립 선언을 한데 이어 국내에서도 독립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명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주동자중 최고형인 3년 형을 선고 받고 3년의 형기를 마치는 중에 ‘독립의 서’를 써 독립 선언서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을 남겼다.
46세가 되던 해(1925)에 다시 설악산에 들어가 ‘님의 침묵’이라는 88편으로 된 시집을 탈고하였다.
이 시집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 되는 것이 있다. 이 사람이 뭐를 사랑하는가? 사실 그 사랑의 대상을 누구로 생각하게 되나? 에 따라 이 책은 지독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갖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원하는 지독한 짝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무엇인가?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가? 무엇을 그렇게 사랑하는가? 이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누구를 사랑하길래 이렇게 처절하게 사랑하지만 고백을 못하고 사랑한다고 글로만 적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조국인가? 아니면 한 사람인가? 여기에서 유심히 봐야될 것은 한용운은 스님이다. 보통 중이 어떤 한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이자 중이었던 한용운이란 사람은 그렇게 조국광복을 꿈꿨던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 써 그 시들을 조국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 참 가슴절절하게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작년 이맘때 절친한 지인이 모친상을 당했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 들이던 지인은 장례식 내내 울지 않다가 발인이 진행되자 꾹 참고 있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사랑하는 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사람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불교 집안이었던 친구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연(緣)이 있는 사찰에 봉안을 모셨는데 장례를 주관하던 주지스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비나이다.”
익히 들었던 단어였지만 어쩐지 그날에 난 죽은 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스님의 그 말의 참 뜻을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았다.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다시 만날 것을 축원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지금까지 이별의 한(恨)으로만 파악했던 그들의 슬픔이 실은 재회의 기쁨을 노래하는 서정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들어가며 –한용운의 생애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한학을 배웠다. 18세 때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나 동학군이 패배하게 되자 설악산 오세암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5년에는 인제의 백담사에 찾아가 불문(佛門)에 들어선다. 불교에 입문한 뒤로는 주로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주력하여,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1914년에는 불교의 개혁과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불교대전》 등을 저술한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면서 국권을 잃게 되자, 그는 우리 독립군의 훈련장을 다니며 그들에게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에 전력하였고, 1918년에는 불교의 홍포와 민족정신의 고취를 위해 《유심》을 간행한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공약3장을 보태어 서명하게 된다. 그로 인해 한용운은 3년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한다. 출옥 후에도 불교대중화와 조국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민족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 1925년에 다시 오세암으로 들어가 《십현담주해》를 탈고하고, 1926년에는 만해의 대표시집이라 할 수 있는 《님의 침묵》을 발간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불교의 대중화와 민족운동 전개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1944년 6월 29일 민족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기 전에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2. 님의 침묵(沈黙)
시인 외에도 독립운동가, 승려의 길을 걸은 만해의 시에는 독립사상, 불교정신이 하나로 혼융된 총체화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님’이다. 따라서 님은 단순한 시적 대상이 아닌 사상과 이상, 그리고 종교적 상징과 시적 상상력의 동원에 의해 구체화된 절대대상으로 제시될 수 있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군말〉에서 ‘긔룬(그리운)’대상은 모두 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님’에 대해 특정화시키고 있지 않음을 밝혔다. 따라서 만해 시에서의 님은 그가 그리워하는 대상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