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개하는 『찌질한 위인전』.
우리는 완결된 위인들의 생애를 보고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인들의 내면적 상처가 ‘찌질한’ 모습으로 노출되는 과정, 그 상처와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을...
제목이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여러 인물 얘기가 나오는데 재미있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난봉꾼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신랄한 사실인데 이런 건 위인전이라면 다루지 않을 내용이라 신선하고 재미가 있었다. 웃긴 건 당시 조선 시대 상황으로 인해 불교에 귀의했다고 파면을 당한 점이다.
#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 수많은 위인전을 읽으며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찌질하기만 한 내 모습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위대한 위인들의 삶은 나와는 달랐겠지?’ 비범했던 위인들의 삶. 위대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을 그들 하지만 때로는 비겁하고, 못나고 변변찮안던 그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자유를 노래한 시인. 모더니스트, 참여시인 수많은 수식어의 주인공 시인 김수영.
# 책의 구성과 내용
김수영,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리처드 파인만, 허균, 파울 괴벨스, 마하트마 간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스티브 잡스까지 책 속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부터 문학가, 예술가까지 위인이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이 소개된다. 책의 첫 장 김수영 시인부터 내용은 강력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처음 사준 책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첫 책은 아마도 위인전 일 것이다.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되어 다시 자녀에게 책을 사줄 때 많이 사주는 책 역시 위인전이다. 여느 집에 위인전 하나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위인전에는 위인들의 지나치게 찬란한 업적, 완벽한 평소 생활만을 담고 있다. 여기게 위인들의 지질함을 너무 많이 담아 오히려 위인들을 친근하게 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하나 있다. 찌질한 위인전이 바로 그것이다. 책은 존경 받아 마땅한 그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못나고 변변찮았던 모습들을 만나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왜 위인들을 깎아 내리는 책을 썼고,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말이다. 보통의 위인전과는 많이 다르기에 이 책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상당히 궁금했다. 작가는 무슨 의도로 위인들의 인간적인 나약함 혹은 약점 지질함을 담아낸 책을 펴냈을까 작가는 이러한 의도를 가졌다.
찌질한 위인전. 제목만 본다면 무슨 내용일까 싶기도 하지만 표지를 보면 책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책 표지에 내용을 다 알 것 같은 과감한 글귀가 있다.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찌질한 위인전이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 위인전들에는 그 위인의 이면이 나와있지는 않다. 위인전 밖 위인들의 진짜 인생을 과연 어땠을까? 위인전의 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품이 남달랐고, 비범했고, 남을 보면 늘 도울 줄 알았고, 학문의 조예가 깊었고 등등 다 이렇게 시작하거나 이런 재능? 능력? 품성을 지녔다. 책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많은 위인들 혹은 문학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책은 프롤로그부터 책 표지처럼 도발적이다. ‘우리가 사랑한 위인들의 민낯을 만나다’ 라고 말이다. 실로 포장되지 않은 위인 본성을 만날 수 있다.
찌질한 위인전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속의 위인은 말 그대로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그려진다.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완벽하고 반듯한 인물 그 자체였다. 그러나 위인도 인간이다. 하루 세 끼 밥 먹고 때 되면 화장실도 가야 하는 존재다. 그렇지만 독자에게는 이런 보통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이는 위인은 언제나 늘 반듯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이제는 그런 관념에서 벗어날 때도 된 것 같다. 위인도 힘들고 위인을 보는 우리들도 힘들다. 책 제목처럼 찌질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위인의 삶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어 위인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인의 반열에서 내려올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리면 될 것이다. 더 이상 상상 속의 위인을 붙잡고 있을 까닭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