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민족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한계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일 협력의 ‘수렁’에 빠져 들었던 경위를 고백하면서 자기 변명의 태도로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카가 등장하는데, 그 조카를 꾸짖는 ‘나’의 심경이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채만식의...
1946년 5월(현재)
‘나’는 P사에서 윤에게 대일협력에 대한 비판을 받고 마음의 병을 앓는다. 자신의 과오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1946년 4월(P사), 1945년 4월(고향), 1938년 (개성경찰서)
P사에서 있었던 일, 대일협력의 도피행으로 소개를 간 일, 친일을 한 계기인 개성 독서회사건에 대해 회상함
1943년 2월(황해도 강연), 1944년 5월(알미늄공장
대일협력을 하던 것을 회상하고 대일협력을 하던 중에 청년들이 자신에게 찾아와서 저항하라고 말해줌.
1945년 4월(고향)
‘나’는 대일협력의 도피행으로 고향으로 소개. 식량증산운동에 이바지한다는 기사로 징용을 면하고 존경 받음
1946년 4월(P사)
윤군으로부터 ‘나'는 대일협력에 대한 비판을 받는다. 김군이 반박을 해주지만 ‘나’는 더 괴로워한다.
1946년 4월(P사에 다녀온 이후)
P사를 다녀온 이후 마음의 병을 앓음. 동맹휴학을 빠지고 나온 조카에게 저항하라고 한다.
등장인물
나(소설가, 친일 행위), 김군(P잡지사 주간), 나의 妻(현모양처, 침착하고 현실적)
윤군(일본 사립대학 정경과 졸업, 전 신문기자, 친일 하지 않음), 일인 형사(사나움)
조선인 형사 김(金)가(나를 회유함), 노(盧)군, 이(李)군, 나의 조카
줄거리
소설가인 나는 청년들과 문학 공부를 했는데, 독서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가 수감된다. 그곳에서 돼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일본인 형사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수감자들의 모습을 목격하며 힘들어할 때 문인협회에서 받은 엽서로 인해 풀려난다. 내선일체, 징병, 학병 등 문인협회에서 진행하는 대일협력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징용을 면하지만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본인이 속한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특히 지식인들은 일반 대중이 미처 깨닫지 못한 몫까지 합쳐 더욱 무거운 의무를 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구하려는 목표 내지 이상일 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끔 정의에 합치되지 않더라도 본인의 안위가 보장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주인공인 ‘나’를 통해 대변되는 작가 채만식 또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본인의 삶을 고백하고 반성하고자 하였다.
나는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본인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을 하기보단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제일 큰 이유는 ‘윤’이라는 인물의 배경 설정 때문이다. 윤은 일제가 대일협력을 계속 요구하자 신문사를 박차고 나왔을 정도로 신념이 확실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내가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사는 것,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불과 백여 년 전 우리는 일본의 통치하에 아무 힘이 없었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라고 한다. 국가의 권리, 국민의 권리는 물론 정치, 행정, 법 등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이다. 무엇이든 강제로 이루어졌고, 힘없는 국민은 자신들의 의무나 권리를 잃은 채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살아갔다. 세상 살며 빛을 봐도 항상 어두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내 것을 빼앗긴,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 매일 수난과 분노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절망감에만 빠져 현실에 굴복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를 되찾는 일, 빼앗긴 나라 또한 내 나라임을 주지하기, 그러한 애국정신을 계몽하기 위하여 정치, 문학 등 독립 운동가와 정치가, 문학가 등 현실에 저항하되,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들의 업적은 늘 감탄하고 감동하게 만든다. 작은 일에도 무기력하고 금방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을 다시금 각성하게 만드는 ‘위인’인 것이다. 무자비한 곳, 무질서의 비인간적인 사람과 사회에서 철옹성과 같은 일제의 벽을 허무는 것에 생각만으로 망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을까. 소극적 독립운동이라도 했을까. 아니면 줏대 없는 선택으로 속이 빈 강정으로 떵떵거리며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본능과 자아, 이상과 현실에서 끊임없이 고민했을 국민과 애국에 망설임이 없던, 악질적인 고문에 느꼈을 굴욕감마저 애국이라 생각했을 또 다른 국민인 독립 운동가는 매번 존경스럽다. 그들의 빛바랜 사진에서는 단호한 눈빛에서부터 총기가 서려 있다. 부당함에 당당함으로 맞서 싸운 자들의 업적은 더 널리 밝혀져야 한다.
1. 들어가며
<민족의 죄인>은 작가 채만식이 쓴 중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여러 모로 특이한 면이 많다. 일단 내용 자체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데, 이 작품에서 채만식은 자신의 반민족행위를 고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 강점기에 반민족행위를 한 작가나 예술가는 많지만 이렇게 스스로 작품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반민족행위를 만천하에 밝힌 작가는 결코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반민족행위에 가담해 놓고 광복이 찾아오자 입을 싹 닫고 과거는 침묵과 세월에 묻어둔 채 문화 권력을 누리며 살아간 예술가들이 훨씬 많은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예술의 수준과 별개로 또 다른 비극이다. 작가 채만식은 그러한 현실에서 스스로 양심선언을 했다. 그러한 성향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어떻게 반민족행위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또 광복 이후 자신이 그런 행동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묘사한다. 이 작품보다 더 그런 심정을 절절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Ⅱ. 작가의 가치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부여된다. 이러한 책임은 시대마다 그 성격을 달리하지만 작가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채만식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은 일제에 대한 대항과 독립을 위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채만식은 보통의 지식인들과 같이 굳건한 애국심과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보다는 힘의 논리라는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친일 행위에 동참하지만 광복 이후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후회 속에 살아간다. 물론 그는 친일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변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동맹휴학에 참여하지 않는 자신의 조카를 꾸짖는 모습을 통해 과거 스스로 지식인으로서 역할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후회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조카 역시 후회 속에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