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2년 월드컵의 가장 큰 수확으로 열정적 길거리 응원을 꼽는다. '붉은 악마'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적 상징이며, 열광적 분위기는 세계에 한국의 독특한 이미지를 제고하였고 해외동포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민족적 자긍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화두는 ‘민족주의’이다. 남북분단과 민족의 통일, 해외이주동포와의 관계 정립이라는 현실적·실천적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사회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과 냉철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사회에서 민족은 역사적·문화적 구성물이 아닌 단군 이래 내려오는 '원초적 혈연공동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에 거의 본능적인 애착심을 보이기도 한다. 식민통치와 분단의 경험이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에 대한 한국인의 본능적인 애착심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원초적인 실재로 보는가, 아니면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가로 나뉜다.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로 보는 앤더슨은 후자에 속한다. 앤더슨은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앤더슨의 관점에는 사회적 실재는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적인 명제를 깔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을'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꾸민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이다.
‘상상의 공동체’는 베네딕트 앤더슨이라는 학자가 쓴 책으로, 민족주의 이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근대 세계사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 일본, 한 국, 베트남, 몽골, 중앙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이 공유하는 공통점 을 탐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나 종교 혹은 관습이 있지만, 인류 전체에는 보편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다. 또한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이나 유산이 계승되고 있으며, 이것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 다.
민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민족의 개념을 찾아보면 지리적으로 인접되어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 오면서 언어 · 종교 · 생활 양식 등이 맞아 공통된 문화적인 특징을 지닌 집단이라고 서술한다. 민족은 또한 문화적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고도 기술하고 있다.
문화적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을 가진 하나의 집단, 그 집단을 민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에서 설명하는 민족은 이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상상의 공동체의 저자는 민족이란 상상의 산물이자 근대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금속활자가 개발되고 인쇄자본주의가 발생함에 따라 소설과 신문과 같은 매체 등에 따라 쉽게 민족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을 접할 수 있으며 이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으나 또한 대중은 쉽게 선동될 수 있다.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 혹은 비슷한 사상을 갖도록 선동된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이것이 곧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한다.
1. ‘민족주의’의 개념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상상의 경계
배네딕트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에서 민족(nation)을 ‘상상된 정치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상상된 정치공동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상’이라는 단어의 울림 탓에 여러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질문이 바로 ‘상상의 경계’일 것이다.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 내 머릿속에는 어느 누구든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않을까? 상상의 속성인 확산성과 유연성 때문에 상상의 공동체의 한계를 묻게 되는 것이다. 앤더슨은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고 언급하나, 민족은 제한된 것이지만, 왜 확산성과 유연성을 갖는 ‘상상’을 민족 형성의 필수요소로 삼아야 했는지, 왜 그 모순의 조합이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경계성을 갖는 상상의 범주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에 대한 본질적 의문점을 제기하게 한다. 이러한 ‘민족’에 대한 모호한 개념 때문에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 역시 모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고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제시한 ‘민족’에 대한 개념에 기반한 새로운 ‘민족’의 개념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지향해야 할 ‘민족주의’역시 내세우고자 한다.
2. 현실적 맥락에서의 상상의 경계와 민족
앤더슨은 민족을 규정짓는데 있어 ‘친교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사실 ‘상상’은 ‘이미지’와 결부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이유가 단지 ‘친교의 이미지’ 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면, 어쩌면 이는 다수에게 논리적 신뢰감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구체적인 상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이렇게 정의하면서 책을 시작하였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에는 민족이 고대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근대적 가치라는 것과, 자연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족은 단군의 자손으로 맺어진 특정한 핏줄이나 혈연 공동체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상 한민족 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그것으로 인한 한국인의 정통성을 말한다. 그런데 앤더슨은 민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관념에 대해 반박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나 역시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막연했던 생각들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좀 더 비판적인 성찰을 할 수 있었다.
베네틱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이미 절판된 책이어서 쉽게 구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친구를 통해 타대학교에서 대출하여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을 처음 받고 표지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표지에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응원하고 있는 붉은악마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고민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이 책의 부제는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이다. 책을 읽기 전 나름대로 민족의 정의에 대해 고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쉽게 한가지로 정의되지 않았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하기에도, ‘한 영토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도 다 부족함이 있어 보였다. 참 의아스럽게도 우리는 매일 민족, 국민, 국가, 나라라는 말을 접하며 살고 있는데도 그것을 정의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민족, 국민, 국가를 더욱 강조하는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말이다.
○ ‘민족’이 발생하고, 지위를 얻는 과정
『상상의 공동체2)』의 저자는 ‘민족’이라는 것을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본다고 합니다. 흔히 유럽역사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아보면 절대주의 시대(16세기 중엽)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의 특징을 살펴보면 크게 3개의 분류로 나누어진 어족(語族, 앵글로섹슨, 슬라브, 라틴)과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인구(종족)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 략>
○정치로 인해 빛나는 ‘민족’
일본의 사례에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대한 의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황’입니다. 일본은 과거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주변을 침략하면서 자신들의 ...................섬나라 특성상 자체적인 독특한 문화가 생겨나는데, 초기부터 인류가 발생하여 그렇게 이어온 것이 아닌 주변 도래인(到來人)들이 모여살며 일본인이 .............. 몇년 전 일본사람들이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중 략>
그들은 늘 외세(미국)의 침략에 대응하여 싸워야 할 것을 지루하도록 외치고 있는데, 그들은 왜 별로 가진 것도(석유같은 자원도 없이) 없는 나라이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상상된) 집단들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그들은 대대손손 한반도의 북쪽 지방에 자리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북한민족’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되었을 것인데, 만약 앞서 말한 논리대로 그들을 평가해보면 결국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줄 사람들을 쉽게 조종하기 위해 ‘상상’을 주입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상교육을 심하게 하는 걸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그들은 ‘민족’이라는 것을 하나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답을 구하려 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다. 필요성에 의해서만 그것의 본질, 역사와 가치를 따져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은 ‘민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경험이나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일반 사람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민족’에 대한 의미나 역사에 대해서 체계적인 개념을 정립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민족’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앤더슨의 주장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했던 ‘민족’에 대한 관념을 구체화시킨다. 앤더슨의 ‘민족’에 대한 독특한 접근방식은 개념 정립에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는 ‘민족’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여기서 오래된 역사와 실례를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앤더슨은 민족주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문화적인 측면들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민족성(nationality), 혹은 같은 어원을 가진 민족됨(nation-ness)과 민족주의(nationalism)는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조형물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시작된다. 이 조형물은 일단 창조되자 여러 종류의 정치적ㆍ이념적 유형들을 통합하고 이 유형들에 흡수될 수 있었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또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imagining)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Gellner)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 낸다"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 이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화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잘못된 구실 아래 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민족과 병치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들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사실 면대면(面對面)의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 (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별되어야 한다. 자바(Java)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전혀 본적이 없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한때 무한히 늘릴 수 있는 친족과 단골의 그물처럼 특별한 형태로 상상되었다. 아주 최근까지 자바에는 `사회`라는 추상체를 뜻하는 단어가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 구체제(舊體制, ancien regime)의 프랑스 귀족을 하나의 계급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아주 뒤늦게야 이렇게 상상된 것이다. “누가 X백작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정상적인 대답은 ‘귀족 계급의 성원’이 아니라 ‘X의 군주’, ‘Y남작의 삼촌’, 혹은 ‘Z공작의 고객’이었을 것이다.
앤더슨의 책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서구 민족주의 사상은 19세기 말 서구식 근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앨리트 계층에 의해 소개되었고,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싹튼 식민지 민족주의는 민족 개념의 내용이나 형성 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신성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냉철한 비판과 성찰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처음 접하는 표지에서부터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이 책은 내용 또한 풍부했다. 각주를 상세히 달아, 부가적인 설명과 사용한 사료에 대해서도 잘 적어 놓았기 때문에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지루하지 않게 ‘민족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상상의 공동체’는 바로 민족이며, 그 민족은 굳이 단일 혈통, 단일 언어일 필요는 없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이 점에 대해 나는 고민하게 되었고, 민족주의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상상체라면 인간의식의 성장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는 이제 민족을 넘어 인류공동체라는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더슨은 2005년 봄, 한국을 찾았을 때, 그 당시 동북아에서 거세게 일고 있던 민족주의의 파고(波高)와 관련해 앞으로 민족주의의 전개방향에 대한 의견을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민족주의는 19세기 민족주의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1세기 민족주의는 기존의 민족주의와 전혀 다른 ‘돌연변이 민족주의(mutant nationalism)’가 될 것입니다. …… 민족주의는 21세기에도 번성할 겁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피부 같은 존재가 됐어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를 유지해주니까요. 문제는 국내외 갈등상황만 발생하면 이 피부가 벌겋고 크게 부풀어 오른다는 데 있습니다. …… 민족국가의 확립이 국경선의 성역화로 나타나면서 1960, 70년대 이후 영토를 넓힌 민족국가는 없지만 구소련이나 유고연방처럼 오히려 영토가 나눠지는 경우는 늘고 있어요. 중국 인도와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원초적인 실재로 보는가, 아니면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 가로 나뉜다.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로 보는 앤더슨은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 부른다. 사회적 실재는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꾸민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인 것이다.
이러한 민족 또는 민족주의의 기원을 파헤치는 작업은 오랫동안 해온 것이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유독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거의 맹목적인 친근함을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흔히 단군의 자손으로 하나의 피로 뭉쳐진 단일민족이라고 부르짖고 있는 토양에서 민족과 민족주의의 기원을 얘기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