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왕이 지녀야 할 통치의 모든 것을 담은 고전!한나라의 서자 출신의 공자로서 비주류의 처절한 아픔을 겪은 한비자가 집필한 《한비자》는 사방이... 《한비자》는 진시황에 의해 읽힌 뒤, 중국의 통치술에 관한 고전으로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고전으로 꼽혀 왔다.
이번...
한비자라는 인물은 공자, 맹자, 순자 이런 사람들보다는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나도 궁금해서 한 번 읽어봤다. 법가사상가였다고 한다. 법으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한비자는 고대 중국 인물인데도 오늘날도 통할 만한 내용을 많이 남긴 것 같았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1. 임금이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좋고 싫음을 나타내지 말라.
2. 신하가 맡은 직분을 지키게 한다면 당파를 만들어 서로 감싸는 일을 못하게 됨(직분에서 벗어난 일을 하면 좋은 일일지라도 벌을 줌(형명참동))
3. 임금이 몸을 망치고 나라를 잃게 되는 잘못
(1) 작은 충의는 큰 충의의 적이다.(곡양이 전쟁중 자반에게 권한 술이 자반을 죽임)
(2) 작은 이익에 사로잡히면 큰 이익을 해친다.(우나라가 말과 보석을 탐하다 나라를 잃음)
(3) 함부로 난폭한 짓을 하고 제후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몸을 망친다.(영왕이 굶어죽음)
(4) 정치를 팽개치고 음악에 빠지면 곤경에 빠진다.(평공이 병들고 진나라가 약해짐(망국의 음악))
(5)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지백이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의 땅을 탐하다 죽임을 당함, 조나라의 신하 장맹담이 한나라, 위나라를 설득함(입술이 없으면 이가 찬 법))
(6) 여자의 노래와 춤에만 열중하면 나라를 망친다.(목공이 융왕에게 여악을 보내 정치를 잊게함, 융나라 사신인 유여에게는 벼슬을 주어 융나라의 병력과 지형을 알아냄)
(7) 나라를 떠나 멀리 놀러가서까지 간하는 사람을 소홀히 하면 위태롭다.(안탁취는 진성자에게 목숨걸고 나라로 돌아가자고 말함)
(8) 자신이 잘못하고도 충신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고집을 부리면 명망을 잃고 웃음거리가 된다. (환공이 관중의 충고를 무시한 채 보좌역으로 습붕(청렴, 신의)을 택하지 않음)
(9) 자신의 힘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외국의 힘에 의지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양왕이 공중붕의 충고를 무시한 채 초나라 회왕의 거짓에 넘어가 진나라에 대항하다 함락당함)
(10) 작은 나라가 외국에 무례를 일삼고 간하는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대가 끊기게 된다. (조나라의 공공이 진나라 중이에게 무례하게 하고 숙첨과 희부기의 말을 듣지 않음)
4. 중신 = 임금의 명 없이 마음대로 행동, 법에 아랑곳 않고 사리를 꾀하며 사복을 채우기 위해 움직임
<한비자>는 오직 군주를 위한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특히 춘추전국 시대에 군주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4차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온 요즘 시대는 춘추전국 시대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하였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말이다.
한비는 <고분>편에서 지혜로운 선비의 전형을 언급했다고 한다. 짧게 언급하자면 지혜로운 선비란, 반드시 먼 장래를 정확하게 꿰뚫는다고 한다. 신하는 명령에 따라 일을 추진하고 법에 근거해 임무를 처리하면 중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고 한다. 중인이란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며 자기 집안만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비자는 통치자로서 가져야할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비자가 주장하는 리더의 기술은 ‘법’과 ‘술’로 요약된다.
법이란 법령을 말하는 것으로 정치의 유일한 방법은 법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법률 만능 정치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한비는 사람이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간의 본성은 선이란 존재하는 않는다 생각하며 그런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비자가 말하는 법이란 현재 국가의 민주주의의 법과는 다르게 통치자의 지배를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술이란 사람을 조종하는 술책으로 법이 있다한들 법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중 략>
광활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이다. 그렇다면 이 진나라는 어떻게 춘추시대 ~ 전국시대 까지 이어져오던 강력한 국가들을 차례로 격파하여 중원통일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셀수도 없이 많을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 중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3가지다. 첫째, 시황제 정의 과감한 결단, 둘째, 재상이었던 이사의 계획, 그리고 셋째,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수많은 무장들이 진나라에는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3가지는 그제 진나라에 주어졌던 것일까. 언제부터 위와 같이 강력한 같은 세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저 어쩌다가 운이 좋게 주어졌던 것일까? 결론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위 3가지가 충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시황제가 즐겨 읽었던 ‘책’덕분 이었다. 부국강병과 더불어 나라를 일치단결로 다스리기 위한 방법, 진시황제가 읽고서 무릎을 쳤다고 하는 책 '한비자'가 있었기에 진나라는 중원을 통일 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중 국 만들 수 있었다.
도대체 '한비자’는 어떤 책이었기에 한 나라 아니 중원의 운명을 바꾸어 버린 것일까? 이 책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책의 저자인 ‘한비자'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한바자는 한나라의 왕실태생 '한비’라는 사람이었다. 한비 그가 태어난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춘추전국시대’ (크고 작은 나라 100여개가 겉으로는 주나라를 섬기던 춘추 그리고 주왕실은 안중에도 없었고 약하면 먹히고 강하면 먹는 약육강식의 시대 전국)였다.
모든 제후들이 자 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최고’로 만들고 이어 '분열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대 에 한비는 그렇게 태어났다. 한비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한나라 왕실 태생(호남성 서부지대) 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라 왕실에서는 대우받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명문 귀족의 후예였다고도 합니다.) 한비가 태어난 한나라는 굉장히 고달픈 나라였다.
한비자. 고등학교 윤리과목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학과 가까이 한 시간이 거의 없다 싶었다. 공자, 맹자, 순자 그리고 한비자 등... 난해하기만 한 이들의 철학사상에 대해 알려고 할 기회도 없었고, 선뜻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읽기조차 쉽지 않은 이 책에서 그리고 과연 지금으로부터 2천년도 훨씬 전에 살았던 그들의 생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비자는 기존 제가백가의 주 사상이었던 유가사상과는 반대로, 강력한 법가 체제 방법을 중요시 했다.
한비자는 중국 고대의 법가 사상을 담은 대표적은 서적이다. 저자는 한비로서 총 55편의 글로 구성되어있다. 한비자의 법가 사상의 주요 핵심은 법, 술, 세 로 정리된다. 법이란 명문화하여 일반인에게 분명히 공시하여야 할 실정법에 해당한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권모술수로 일종의 정치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세는 군주가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힘, 즉 권력을 뜻한다. 한비의 이런 법가 사상은 그 자신이 시행하여 실효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진(秦)왕 정이 법가 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을 통일함에 따라 그의 사상적 실효성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감명 받은 문장과 개인적 해석
1. 대저 도리에 맞는 최상의 말이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현인이나 성인의 자질이 아니라면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부디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고 싶으면 군주 또한 현명해야함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본디 우리가 올바른 것이라 칭하는 행동들은 대부분 그 속성이 쓰다. 그래서 범인들은 단순히 쓴맛만을 생각하며 멀리한다.
한비와 『한비자』
한비의 생애
한나라의 공자로 태어난 한비는 진나라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비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권력을 잡았었던 적도 없고, 찬란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것도 없고, 오히려 굴욕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10여만 자에 달하는 국가통치의 이론과 사상, 통치를 위한 전략을 후세에 남겼다. 이 이론과 사상 그리고 통치술은 사람들에게 번쩍이는 섬광이었고, 땅을 울리는 굉음이었다. 또한 그의 사상과 전략이 응축돼 있는 『한비자』는 제왕들의 필독서로 받들어지고 있다.
『한비자』는 진나라 임금에 의해 읽혀지고,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였다. 진왕은 한비의 이론을 철저하게 적용하려 했다. 한비가 주장했던 ‘법술세(법술세)’의 사상은 진왕에게 스며들어 결국 통일된 진왕조의 수립을 가능케 하였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건설이라는 불후의 패업을 완성하도록 하였다.
한비는 저술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의 저서 『한비자』를 통하여 춘추시대 이래의 법가사상은 매우 정교하게 통합되고 창조적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한비자』는 한 시대의 사상 흐름에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업적물이다. 그의 저작 속에서 한비는 천재적인 사상의 날개를 펼쳤으며, 제왕의 책무에 대하여 경계하며, 제왕이 꼭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제왕의 모든 언행은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의 성공적인 통치와 변방의 공략 그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크게는 천자에서 작게는 제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목적은 스스로 군왕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고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혼란을 막고, 자신의 생명과 국가의 재난을 막음으로써 불후의 패업을 완성하는 것이다.”
한비의 법가사상과 이전의 법가 사상
한비 사상의 학술적 기원
-법가사상의 집대성
한비사상의 주체는 법술사상이다.
학창시절 경제, 법,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윤리, 사상, 그리고 사회문화에 대한 관심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철학, 사상, 그리고 인문학과 같은 학문을 배워본 적도 없고, 학습하려는 의지 또한 없었기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군대에 전역한 후 복학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와 일을 병행하던 중 사수, 매니저 또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제가 모르는 철학 또는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꿀 먹은 벙어리 마냥 한 마디의 말도 못하던 저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18년도 1학기에 동양의 철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된 것을 본 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한 쪽에만 치우치는 것보다는 넓고, 얕은 지식이 대화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비자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전국시대 저명한 철학가이며 법가학설을 집대성한 학자였습니다.
'한비자' 독후감
이 책은 한비라는 사람이 벼슬에 등용되지 못하자 그 울분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 작품이다. 제왕적 리더십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은 법가의 사상을 기초로 노자의 사상을 일부 융합시켰다. 두 사상의 융합을 통해 동시대 그 누구도 제시한적 없는 새로운 제왕적 군주론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비록 한비는 친구의 모함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책 '한비자'는 세월을 거슬러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 사뭇 인상적이다.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추구했던 사상이 바로 한비의 법가 사상이지만 한비를 죽인 사람 역시 진시황제라는 점이 참 흥미로웠다.
제왕적 통치를 위한 첫 번째 도구, 벌
제왕적 리더십이란 군주의 힘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되는 것을 말한다. 군주의 힘을 집중 시킬 수 있는 도구로써 엄격한 법의 집행을 주장했던 한비는 군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