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작가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한국사회의 전환기인 1970년대를 배 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전태일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국사회 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전태일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난한 가정 에서 태어나,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는 어느 날 노동자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 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찾아가며, 그동안 느꼈던 분노와 고통 을 이겨내고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그의 삶은 쉽지 않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 속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죽어간 이가 있다. 그는 스물한 살의 짧은 생을 분신자살이라는 형태로 마감했다. 다소 억울하지 않았을까?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불우한 자신의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삶을 끝내기에는 너무도 어렸다. 배움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한번쯤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그는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름 없이 살아온 노동자이지만 그들은 아직도 살아있고, 또 그들 또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그러한 말을 표현하기에는 그는 너무 작았고 힘이 없었다. 그리하여 단순한 불꽃이 아닌 온 세상의 모든 권력과 탐욕들을 불질러버리고 간 것이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전태일 평전 본문 중에서 -
빈곤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니다 말았고, 나이가 들어 겨우 입학한 고등학교도 1년 밖에 다니지 않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을 앞두고 썼다는 고뇌의 흔적들입니다.
책을 통해서 그가 어느 날 느닷없이 분신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관공서에 ‘근로기준법’을 가지고 가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사회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불이 되었다. 사회에 그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그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시절, 전태일 평전은 지은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어느 청년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됐지만 판매 금지가 이루어졌다. 전태일의 분신자살로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허락받지 못했는데 그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졌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1991년 개정판에 이르러서야 전태일 평전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감추어졌던 지은이는 ‘조영래’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 있었다. 왜 그 당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했던 사람은 아무런 인정도 보상도 받지 못했던 걸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이후 두 번째이다. 어렸을 적이라 분신을 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말하며 거리를 고통스럽게 뛰는 장면 외에는 사실 잘 생각나지 않았고 깊이 느낄 만한 나이도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의 15살의 나와, 지금 25살의 나는 많은 차이가 있다. 노가다 현장, 물류센터 등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오랫동안 스스로 나가 노동이라는 것도 해보았고, 그것이 좋았던, 불쾌했던 많은 경험도 해보았으며 10년동안 많은 것은 보고 배운 뒤에 다시 영화를 보니 모든 것이 달랐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이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중 략>
우선적으로 영화는 두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 흑백으로 처리되는 전태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과 전태일 평전을 쓰는 가상의 인물 김영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김영수와 전태일의 모습이 겹쳐지며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스토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는 등 힘든 일에 종사하는 자였다. 자신의 상황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어리고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자들을 보고 노동운동을 실행하게 된다. 심지어 본인이 아닌 다른 자들을 위해 항의하다가 공장에서 쫒겨나기까지 한다. 그 후 근로기준법에 공부하면서 평화시장에서 노동조직인 바보회를 만들고 근로의 부당성에 대해 투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보였다.
• 줄거리 및 감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영화는 초반부부터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영화는 마치 조언이라도 하듯이 다른 상업영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첫 장면은 전태일의 삶을 복선으로 보여주는 듯. 비가 많이 오는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차가운 대우를 받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새로이 취업한 직장은 일 보단 공부가 더 잘 어울리는 아이들이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 하고, 화장실은 간다고 무시를 당하는 장면과 잠이 온다고 위생적이지 않은 주사기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는 모습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피를 토하고 있는데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노동자의 몸 상태보다는 남은 일들을 더 걱정하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아무런 조치도 취해 주지 않고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 당시에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와 좋지 않은 작업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묵묵히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1. 영화의 개략적 줄거리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김영수(문성근)의 시각으로 22살의 나이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 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을 다룬 영화다. 김영수는 4년전 죽은 전태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되는데, 그 결과 김영수는 전태일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신음하면서도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평화시장 삼일사에게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쳐 분신자살을 단행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김영수는 전태일의 그러한 행적을 떠올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애인 정순의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새로운 생명의 힘찬 숨소리에서 전태일의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게 된다.
2. 영화감상문
과거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정치와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유린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영화는 그러한 군사독재정치가 한창이던 1975년을 무대로 하고 있었는데, 한창 공부를 하고 연애를 할 나이에 경찰의 수배를 피해 숨어다니는 주인공 김영수의 모습에서 나는 전태일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며 인권을 강조한 그들은 진정 용기있는 사람들이였다고 생각해 보았다. 1970년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즉, 전태일은 우리나라 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주춧돌과도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였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사회혼란에 불씨를 당긴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석유파동과 북괴에 의한 테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말도 오고 갔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 한 청년이 온 몸에 휘발유를 붙고 불을 붙여 “내 죽음이 헛되이 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생활이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17세 때 의류제조 회사의 제단사로 들어갔다. 당시 한국은 산업의 발달로 인해 공장이 생기게 되고, 기업은 나이어린 노동자들을 값 싸게 채용하여 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많았고, ‘근로기준법’이 있었으나 이를 어기고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가 많았다. 급기야 직업병으로 심각한 폐병이 걸려 강제로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Ⅲ. 아름다운청년전태일 맺음말
인간이 다른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던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대가 막을 내린지는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즉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동안 노예가 존재했던 시기가 노예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춘 요즘도 노예제도는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족쇄를 채우지 않고, 채찍으로 때리지 않을 뿐이지, 자본가들의 횡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수많은 소시민들의 삶이 고대노예의 삶과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의 안타까운 상황도 국가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수 많은 노동력을 혹사시키던 1970-80년대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근로기준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던 그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화장실 갈 시간, 잠 잘시간, 밥 먹을 시간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할 시간마저 박탈하던 그 시대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모기와도 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힘겨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고 힘 없는 노동자들은 투쟁할 수 없었고, 단결할 수도 없었다....[아름다운청년전태일 본문 내용 중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