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T.A 호프만 단편집. 호프만은 1814년 첫번째 작품집 [칼로풍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발표함으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해서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놀랄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오펜바하가 작곡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모래 사나이]를 비롯해 3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나는 사람의 감각 기관 중 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할 때 제일 처음 느끼는 감정도 눈에서 비롯될뿐더러 눈이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하는 순간 다른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반대로 너무 많은 눈에 둘러싸이면 잘못이 없어도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음사의 <모래 사나이>를 집었을 때 표지에 그려진 무수한 눈들 때문에 굉장히 불쾌해졌다. 제목 만 보았을 때는 ‘한 남성의 사막 여행기’ 정도로 추측했는데 표지를 보고 확실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기괴하다는 감정과 함께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얼굴들에 눈은 없고 - 그 대신 소름 끼치는. 깊고 검은 구멍이 나 있었어.’라는 구절은 눈에 대한 여름밤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던 옛 기억을 하나 떠올리게 했다. 초등학생 시절 태권도 캠프에서 사범님이 밤에 공포영화를 틀어주셨다.
글 속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별이 애매모호한 <<모래사나이>>는 기이한 안개 속 같은 이야기로, 나타니엘의 내면속에 두려움과 공포로 자리하고 있는 모래사나이와의 사건들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은 나타니엘 내면의 혼동에서 비롯되고, 클라라를 비롯한 외부와의 소통에서 단절을 낳게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모래사나이>>속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단절을 나타니엘이 클라라와 맺는 관계속에서 찾아보고, 현대사회에 비추어 재조명 해보려 한다.
나타니엘은 어릴 때 겪은 충격으로 인해 계속해서 외부세계와 단절 된 자신만의 생각속에서 고통을 겪으며 두려워 한다 또한 이러한 나타니엘 자신의 분리된 심리가 클라라와의 대립과 단절 구조를 낳게 된다.
나타나엘의 심경 변화는 정말 미친 사람의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게 된다. 모래 사나이에 대한 끝도 없는 공포가 나타나다가도 클라라의 말을 듣고 정신을 다잡으려 하지만 올림피아에게 빠지게 되며 다시 광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올림피아에게 느꼈던 기묘함을 나타나엘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도 이따금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와 같이 ‘정신이 맑은 순간’에는 의문이 일지만 이내 이를 지워버린다. 몽환적인 밤과 달리 아침을 이성적인 시간대로 묘사한 것이다.
나타나엘의 내적인 병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책에서는 모래사나이와 코펠리우스, 그리고 코폴라가 동인인물인지 아니면 생각의 주체인 나타나엘의 각인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착각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후자의 의견에 공감하며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나타나엘은 어린 시절 두려움을 느끼던 민담 속의 인물인 모래사나이라는 존재에 평소 흉측하다고 여기던 코펠리우스를 투영시켜 새로이 각인된 이미지로 인해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스팔란차니 교수가 만든 기계인형인 올림피아에 매료되어 자신의 약혼녀인 클라라를 잊고 허황된 존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 병적인 심리상태를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어릴 적부터 키워온 두려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감은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친구와 약혼녀에게까지도 공감을 얻지 못해 한없이 외로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그 존재에 대한 공포감은 더더욱 그를 옭아맸을 것이다.
주인공인 나타나엘은 어렸을 때 빨리 자러가지 않으면 모래사나이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모래사나이가 누구인지는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 않자 자신의 유모에게 모래사나이에 대해 묻게 된다. 유모는 모래사나이는 빨리 잠자리에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모래를 뿌려 눈을 뽑아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준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타나엘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는 집에 자주 찾아왔던 코펠리우스를 모래사나이라고 생각한다. 나타나엘은 코펠리우스의 겉모습을 보고 흉측하다고 말하면서 그를 모래사나이라고 여기며 그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에는 기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마치 인형 같은 여인 한 명이 등장한다. 망원경을 통해 마주한 그녀의 모습에 주인공 나타나엘은 한순간에 그녀를 자신의 가슴 속 가장 깊은 자리에 안착시킨다. 나타나엘이 바라본 그녀는 약혼녀 클라라의 존재마저도 잊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나타나엘이 칭송해 마지않는 그녀. 그녀에게는 차마 마주하기 버거운 섬뜩한 비밀이 있던 것이다.
나타나엘의 눈에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비친 그녀는 생명 없는, 단지 태엽과 나무로 만들어져 움직이는 ‘자동인형’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나타나엘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차츰 깨달으며 그녀의 생명력과 매력을 부정하고, 그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다고 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그녀가 가진 결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 결함마저 그에겐 완벽한 사랑의 이유이다. 나타나엘은 눈도 깜빡이지 않는 그녀의 부동마저도 가장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여기며 그녀를 자신만의 여인으로 삼으려 한다.
인조인간, 즉 모습과 행동이 인간을 닮은 로봇은 SF나 만화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과 책 「모래사나이」도 인조인간을 등장인물로서 활용하고 있다. 『바이센테니얼 맨』에는 인간을 동경하고 감정을 느끼며 끝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조인간 앤드류 마틴이, 「모래사나이」에는 인조인간임을 숨긴 채로 나타나엘의 사랑을 받고 종국에는 정체가 밝혀짐으로서 나타나엘에게 충격을 주는 올림피아가 등장한다. 각각의 작품이 인조인간이라는 같은 소재를 어떤 목적으로 등장시켰는지에 대해 비교하고자 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조인간을 등장시킨다. 이 작품에서는 인조인간이 갖지 못한 것을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야기하며,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인조인간인 앤드류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타나엘의 죽음에 있어서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작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의미로는 작가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이때의 이야기는 허구의 이야기로 그것이 사실에 기반해 있더라도 내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작가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허구’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주관이 들어간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단순 단어 배열이나 오늘 하루를 설명하는 일기와 차이점을 갖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작가에게는 단순히 자신의 공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을 관찰하는 능력도 요구된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작품을 창작해낼 경우 뛰어난 작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나타나엘이 사랑한 클라라와 올림피아의 대조적인 특징과 그 의미는?
‘모래사나이’에서는 주인공 나타나엘이 사랑한 여인 두 명이 나온다. 먼저 그의 약혼자였던 클라라는 사리 분별에 능하고 이성적인 사고가 확연한 사람으로 자칫하면 냉정해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명철하다. 그런데 올림피아는 클라라와 전혀 다르다. 그녀는 나타나엘의 모든 말에 전혀 부정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며, 모든 것을 나타나엘에게 맞추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나타나엘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추고, 그가 원하는 대로 결혼에 응한다. 하지만 나타나엘에 눈에는 인형이었던 올림피아가 더욱 사람 같은 존재였고, 클라라는 오히려 차갑고 고루하며 감정이 메마른 인형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책에서는 이 두 여자의 대조를 통하여 나타나엘이라는 인간의 분열된 의식을 더 강조하고자 한 것 같다.
✔ 작품에서 눈이 의미하는 것은?
눈은 외부세계를 직시하게 해주는 기관으로, 내부세계와의 연관 작용을 통해 뇌에 어떤 이미지를 남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