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히로시가 쓴 「양반」을 접하게 된 계기는 한국 전통사회의 계층 구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글이나 강연에서 양반이라고 부르는 계층이 매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고 듣곤 했다. 어떤 가문에서는 대대로 관직을 거치며 명망을 쌓았고, 또 다른 이들 가운데는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거나 지방에서 세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머릿속에서 막연하게만 인식했던 양반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그럴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무척 방대하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책 표지를 보았을 때, 간결한 제목이 주는 무게감이 있었다. 양반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역사적 함의가 가볍지 않음을 느꼈다.
책의 서문을 몇 장 넘기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주제의식을 조금씩 짐작하게 되었다. 그저 권력층이나 privileged 집단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시기와 조건에서 그 지위가 강화되었는지를 폭넓게 다루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덕분에 처음에는 오해를 품고 있던 점들을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양반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고정된 계층이라기보다는 다양하고 유동적인 양상을 띠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나 혼맥, 호적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양반임을 입증하거나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신분이 변동되는 모습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체적인 자료와 연구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일반 독자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해간다. 흥미롭게도, 호적과 과거시험 방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집안이 양반으로 인정받았는지, 그리고 지방사회에서 그 집안이 어떻게 성장하며 지위를 유지했는지를 풀어놓는다.
미야지마 히로시라고 하는 사람은 조선 시대 계급 양반에 대해서 깊게 연구를 하였다. 재지 양반이라는 개념은 처음 접했다. 그들은 과거를 통해서 출세를 노렸고 노비도 갖고 있으면서 성리학을 깊게 공부하는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가 성리학이 매우 융성했던 것은 유명하다.
이 책의 존재는 처음 번역된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알려졌다. 다만 조선 후기의 문학 작품을 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이 책을 급하게 읽을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조선시대의 문학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관련 논문에 이 책이 자주 언급되거나 인용되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사를 전공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양반의 경험적, 사회적 의미를 비교적 객관적이고 쉬운 문체로 잘 다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양반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문명이 좋은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역사·문학 분야에서는 양반을 서울에 사는 금융가정, 지방에 사는 금융가정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용어들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를 옮겨 2014년 재출간된 것으로 실제 책의 연구사적 가치는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평가해야 한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을 읽으면서 떠오른 말이 하나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강의를 듣기 전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읽어내었을 ‘주자학’이나 ‘향약’과 같은 단어들 하나하나가 강의 시간에 배운 것과 결부되어 내용이 더 잘 이해되었다. 어려운 한자어로 된 글자들은 아직 잘 모르는 것도 많았지만 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인지 직접 깨달았고, 앞으로도 역사와 관련된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최대한 우리 현대 사회와 비교 분석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현대에 살아 있는 유교적 전통’이라는 책의 한 파트를 읽으면서 우리 집안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친할아버지께서는 유교적 성향이 강하신 분이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라는 개념은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하다. 그래서 저자가 도입부에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하기에는 어렵다는 전제를 깔았을 때 상당히 의아했다. 양반은 조선시대의 신분 계급으로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양반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계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로 문무반 신분 사회의 형성은 조선이 아니라, 고려 후기 때부터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양반은 고려와 조선을 통칭하는 신분계념으로 이해하면 옳을 것이다. 양반은 조선시대의 한 특권층으로 존재하였지만, 사회적 관습으로 형성된 계층이며, 양반과 비양반의 한계기준이 매우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해서 나는 좀 놀랐다. 당시 지배체계 및 신분제도는 매우 엄격하게 작용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나 양반이 어떻게 세력을 키우고,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의 지배체계를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반이 자신의 신분을 지키고 세습되는 과정에 대해서 이 책은 밀도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조선 후기로 진입하면서 양반의 세력이 줄어들고, 심지어 몰락한 양반은 족보를 팔기도 하여 신분체계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오히려 권문세족들의 위세는 더욱 강력하게 자리하였다. 조선을 이해하는 것은 양반을 아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유교문화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관습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를 더 잘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양반, 평민, 노비의 신분계급은 완전히 사라졌다. 모두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라는 개념은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하다. 그래서 저자가 도입부에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하기에는 어렵다는 전제를 깔았을 때 나는 좀 의아했다. 양반은 조선시대의 신분 계급으로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통칭하는 개념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보편적으로 양반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계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문무반 신분 사회의 형성은 조선이 아니라, 고려 후기 때부터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양반은 고려와 조선을 통칭하는 신분계념으로 이해하면 옳을 것이다.
양반은 조선시대의 한 특권층으로 존재하였지만, 사회적 관습으로 형성된 계층이며, 양반과 비양반의 한계기준이 매우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해서 나는 좀 놀랐다. 당시 지배체계 및 신분제도는 매우 엄격하게 작용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나 양반이 어떻게 세력을 키우고,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의 지배체계를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반이 자신의 신분을 지키고 세습되는 과정에 대해서 이 책은 밀도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조선 후기로 진입하면서 양반의 세력이 줄어들고, 심지어 몰락한 양반은 족보를 팔기도 하여 신분체계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오히려 권문세족들의 위세는 더욱 강력하게 자리하였다. 조선을 이해하는 것은 양반을 아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유교문화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관습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를 더 잘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양반, 평민, 노비의 신분계급은 완전히 사라졌다. 모두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양반들이 사용했던 자신의 본관(파평 윤씨, 전주 이씨, 경주 김씨)을 알고 이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면서도 자신의 본관을 통해 뿌리를 기억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양반이란 단어는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어도 우리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양반은 인칭대명사로서 예의 바른 사람, 부인이 제 3자에 대하여 가리켜 하는 말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 의미로서는 문반과 무반을 합쳐 말하는 뜻이 가장 적절한 의미일 것이다.
이 책 <양반>에서는 양반을 두부류로 나누어 재경양반과 재지양반으로 크게 나누었는데 그 중에서 재경양반은 서울에 거주하는 고위관직의 일을 담당하였던 양반이고, 재지양반은 지방에 거주하면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였던 양반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과거에 합격하거나 당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를 조상으로 모시고, 동족집단을 형성하면서 양반의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히로시가 지은 “양반” 이라는 책은 일본인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도 잘 알지 못 하는 양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유교적인 생활습관일 것이다. 그런 유교문화는 우리가 생활하는 곳곳에 녹아있으며 몸에 익어있다. 이 유교문화를 이끌어 온 주인공이 바로 양반이다. 양반을 빼놓고 조선의 전통과 유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 사람 참 양반이네..”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듣는 사람은 뿌듯해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양반에 대해 개념적인 설명부터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설명해 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양반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를 양반 가문의 후예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진다. 동족 집단에서는 족보를 소중히 여기며, 가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가문이 노비도 평민도 아닌 양반이라고 믿는다. 조선시대에서만 양반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양반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양반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양반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양반의 단편적인 면만 알고 있었고, 그 단편적인 면에는 양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양반은 고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시각이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나타난 양반의 단점만이 부각되어 장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먼저,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1987년 10월 추석날 지인의 초청으로 안동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전통유교문화인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고 부계혈연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조사제사방식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데, 즉 제사는 단순히 조상을 섬기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현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며 이런 현실적인 의의가 숨어 있기 때문에 유교적 조상숭배 관념이 현재 한국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