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르한 파묵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소설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였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1. 저자소개 및 시대상
중세 서양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강대국인 오스만 제국은 서구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신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수도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결합되는 동시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중세 세계정세에서 강대국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유럽이 산업 혁명을 거치고 현대적 산업 국가로 성장하면서 쇠퇴하게 되는데, 서구 열강에게 패권을 뺏긴 오스만 제국은 결국 몰락한다. 그리고 뒤이어 오스만 제국을 계승하여 케말 아타튀르크를 초대 대통령으로 한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다. 현대적인 정치 체계를 갖춘 터키 공화국은 서구 열강에 발맞추어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현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는데 1938년 케말 아타튀르크의 서거 후 정치적 혼란이 야기되면서 1960년부터 1980년대에는 세 번의 군사 정변으로 정치적 불안 상태가 지속된다. 계엄령과 통행금지령 등 터키 국민에 대한 제재가 가해지고 1970년대 이스탄불은 더 이상 현대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시대적 흐름에 뒤처진 역사의 유물로 격하된다.
『순수박물관(Masumiyet Müzesi)』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터키의 분위기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혼란’일 것이다. 군사 정변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바탕으로 시대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다급한 현대화는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을 양산하여 빈부격차 심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서구적 문화의 혜택을 입어 서구적 가치관과 생활관을 내면화시켰으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부자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가난한 사람 사이의 괴리감은 사회적인 혼란을 가중시키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무자비한 서구식 근대화 개혁 진행으로 인한 문화적 혼란 또한 1970년대를 대표하는 분위기이다. 서구적 문화의 풍요로움을 경험한 기득권층과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바라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입장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결국 터키인들의 근본적인 정신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뿌리가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