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수상작 `아내의 상자`의 줄거리 아내가 불임으로 인한 불행한 상황들을 무난히 견뎌가고 있다고 여기며,사회의정해진 규범을 충실하게 지키며, 규격품 인간으로서 지극히 평범하 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남편. 그러나 아내는 정반대로 매사에 정해진 사회적 구조와는 동떨어져 ||^비규격품 인생||^을 살고 있다....
아내의 진심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서사에 표출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나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기에 촘촘한 체로 걸러보려 들어도 잘 포착해내기 어렵다. 남편은 물론이고 독자인 나를 넘어, 그녀 자신도 아마 알지 못 할 것이다. 기저 의식 속에 숨어 있는 그녀의 진짜 속내는 발설되지 못 하도록 그녀 자신의 무의식에 의해 ‘상자’ 속에 담긴 채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 “아내라는 존재는 파괴되었다.(24쪽)”이라는 문장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는 많다. 일단 아내의 이름도, ‘그녀’라는 호칭도 아니고 ‘아내의 존재’라는 절제된 표현에는 차가움이 느껴진다. ‘파괴’되었다는 표현도 그렇다.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이 부서졌다는 식의 시선이다. 어쨌거나 ‘나’는 아내라는 존재의 끝을 알리며 그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1. 은희경의 작품세계
은희경은 인간의 본성을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신랄하고 가차 없으며 냉정하게까지 보인다. 그녀가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유머를 통해 섬세하게 심리묘사를 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이야기꾼으로서 재능과 서정적 감수성이 잘 섞여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은희경은 풍부한 상상력과 능숙한 구성력,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감각적 문체 구사에 뛰어난 작가라 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은희경의 1998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내의 상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존재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간결한 언어로 깊이 있게 다룬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 ‘아내의 상자’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며, 일상 속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재조명해본다. 더불어 현대적 삶이 안겨주는 불모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 일상성과 존재의 소멸
「아내의 상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의 일상적인 모습과 존재의 소멸을 중심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은 화자인 ‘나’의 시각에서 아내를 보고 쓴 관찰자 시점으로 되어있다. ‘나’의 눈에 비친 아내는 상자를 쌓아가고 외출하기를 싫어하며, 잠을 깊이 자는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표현과는 달리 아내는 신도시의 틀에 얽매인 평범한 삶에 외로워하며 지루해하는 면모를 지닌 여자이다. 이러한 면을 지닌 아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안락의자 옆에 차곡차곡 쌓아둔 상자에 모두 담아 놓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옆집에 이사 온 여자와 함께 바깥을 돌아다니게 되고, 어느 날 밤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를 찾아 나선 ‘나’는 모텔에서 알몸으로 누워있는 그녀를 보고 분노에 휩싸인다. 후에 ‘나’는 아내를 정신병원 혹은 요양원 같은 곳으로 격리시키게 되고, 그녀는 사회적으로 소멸되고 만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흐린 분위기로 전개되며 그 안에서 흥미롭게 소설 속 부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글의 곳곳에 부부, 아내의 이야기가 상징물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내의 상자>는 삭막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변화를 원했던 남편과 아내 사이의 깊은 갈등을 남편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소설이다. 언뜻 보기에는 남편이 이야기하는 그대로 아내는 엉뚱한 말만 하며 뭐든지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리고 기억하는, 심지어 자신이 주는 사랑에 대해 외도로 답한 이상한 여자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남편의 시점에서 쓰여 있어 아내의 감정은 전혀 묘사되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아내의 상처들을 보여주고 있다.
심각하고 진중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훌륭한 소설이었다. 무거운 것을 오히려 가볍게, 가벼운 것을 오히려 무겁게 끌고 가는 것이 문학의 힘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을 키워온 긴 세월동안,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을까. 고단했을 시간 속에서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아내의 상자’는 규격인의 삶을 살아가는 남편(화자)와, 그의 아내의 상처투성이인 삶이 교차되는 내용이었다. ‘나’는 자신이 아내에 대해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녀를 찾을 전화번호 하나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또한 그는 아내가 불임의 상처에서 벗어났으리라 짐작하지만 실상 그녀의 내면은 극도로 피폐한 상태이지 않았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글은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를 보고 쓴 관찰자 시점으로 되어있다. 남편의 눈에 비춰진 아내는 단 한 마디로 평범한 여자이다, 남편의 눈에는 상자를 쌓아가고 외출하는 걸 싫어하고 잠을 깊이 자는 것 따위는 일상화되어 버린다.
그러나 남편의 눈에 비친 평범한 아내는 사실 ‘평범’이라는 단어에 외로워하고 지루해 하는 내면을 지니고 있는 여성이다, 아내는 ‘평범’이란 단어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남편에게 자신에 관한 것들을 기억시키지 않기 위해 안락의자 옆에 차곡차곡 자신과 관련된 물건을 담아 둘 뿐이다, 이러한 행동이 성공적 이라는 걸 확인 할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남편은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자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다른 여자가 들어와 당장 살기 시작해도 이상한 점이 없을 만큼 표준적이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