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느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천운영의 장편소설 『생강』. 쫓기는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딸의 내면을 그려내며 폭력과 욕망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소설은 아버지와 딸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이제 곧 맞이할 대학생활에 한껏 부풀어 있던 선...
경계의 시대와 선악의 경계
책 ‘생강’은 잔인한 고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안’과 그의 딸 ‘선’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장의사집 둘째 주인’, ‘악마’, ‘관절빼기의 명수’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일상적으로 행해왔었던 안은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도피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아내의 미용실에 딸린 딸아이의 작은 다락방에 숨어 살게 된다. ‘좋은 경찰’인 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고문기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딸 선은 엄청난 혼란을 겪고, 결국 아버지 때문에 대학도, 사랑도, 친구도 모두 포기하게 된다.
작가 천운영의 책 ‘생강’은 80년도 전두환 집권시기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다룬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근안은 실존하는 인물로 소설에서는 ‘안’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며 소설 생강은 ‘안’과 그의 딸 ‘선’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은 매번 번갈아가며 ‘안’과 ‘선’의 이야기로 그려지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에 쉽게 이입하게 되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아름다워야 한다. 승리는 언제나 아름다움의 차지다. 완벽한 기술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바로 고문과 고문의 기술은 아름다우며 승리라고 표현한다.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상대방과 자백을 받아내려는 ‘안’의 싸움에서 안은 늘 이긴다. 옷부터 벗겨 의지할 것이 없음을 알려주고 빛을 비추어 숨구멍이 벌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찬물로 온기를 빼앗아 반나절 앉혀둔다. 그 뒤 본격적인 고문을 시작한다.
벌써 꽤 시간이 지났지만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돌아가셨을 때, 새삼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 바로 이근안이었다. 고술기문자로 유명했던 그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근태 전 의원과도 관련이 있었고 김근태 전 의원은 고문 때문에 평생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았다. ‘생강’을 읽기 전에 막연히 이 이야기를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었다.
사실 작품이 실제 인물을 다루고 있고, 그 인물이 아주 악랄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라면 소설의 내용은 두 가지 패턴 중 하나일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말 악랄하게 그리거나, 아니면 그 내면의 심리 혹은 이유를 파헤치거나. 이 작품은 뒤의 것이다. 천운영 작가의 작품을 이전에 흥미롭게 읽어서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빤한 느낌이 들어서 내용적인 면에서는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구성에 대해서는 역시 이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기술자’인 ‘안’과 그의 딸인 ‘선’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