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경제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역사로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책. 봉건 사회에서 1930년대 중반의 파시즘 체제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달사를 담았다. 일반적으로 경제사 관련 서적은 각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드는 반면, 이 책은 구체적 사실들을 생생하게 서술하여 생동하는 역사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쉽고 명쾌하다는 데 있다.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독후감
역사적인 변화, 사건 등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는 게 책의 목적이라고 나와 있고 마냥 어렵지만은 않았다. 십자군 전쟁은 ‘상인들’에게 매우 좋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침체된 시기에 무역적인 부분에서 활로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단순히 경제사와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시각과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독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저작이다. 이는 경제사를 넘어서 인간사와 문명을 다루는 일종의 거대한 탐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경제적 흐름을 저자는 놀라운 명료함으로 풀어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밑바탕을 이해하도록 독려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코 ‘이해하기 쉬움’이라는 점에 있다. 경제사는 종종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시대의 사건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 독자들에게 부담을 줄 때가 많다. 그러나 휴버먼은 그러한 통념을 깨트린다. 그의 글은 마치 생생한 구술사처럼 흥미롭고, 유머를 곁들인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를 통해 그는 경제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를 조명하는 도구로 전환한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총망라 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시대에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회 전체 부의 90% 이상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즉, 산업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에서 잠을 잔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식, 옷, 집은 어디에서 왔는가? 스스로 양식을 일구고, 옷감을 짜고, 집을 짓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러한 복잡한 과정을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는 걸로 간편하게 대체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하였을까? 현대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존재가 과거에도 당연하였는가? 물론 아니다. 리오 휴버먼이 쓴 이 책은 당연하지 않았던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주장한다.
이 책은 크게 제 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와 제 2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로 나뉘어져 있다. 제 1부에서 저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생되고 발전하여 봉건제도를 뒤엎었는지 역사 속 흐름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책 & 저자 소개
-리보휴버먼(1903-1968) : 언론인이자 학자. 노동운동가로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다가. 잡지 편집자를 거쳐 1938년부터 1년간 컬럼비아 대학 뉴칼리지의 사회과학 부장으로 재직.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시기에는 ‘PM’이라는 노동자 신문의 편집장으로 노동운동을 이끎.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국선원노조의 교육부장을 지냄. 1949년에는 폴 M.스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잡지인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를 공동으로 창간해 죽을때까지 편집자로 일함. 저서로는 <역사와 민중>(1983),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1986) 등이 있음.
▲ 제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1장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주군과 봉신 간의 쌍무 계약)
@장원 안의 구성 : 중세 봉건시대의 사회계층은 성직자(기도하는 사람들), 귀족(싸우는 사람들), 농노(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됨. 당시 부의 척도는 보유한 토지의 양으로 결정됨. 장원은 영주의 지배로 이루어졌으며, 성(요새)과 경작지(영주 직영지+농노토)로 구분됨. 농노는 노예와는 분명 달랐으나 영주의 토지관리와 각종 부역, 본인의 토지 관리 등으로 과중한 부역을 안고 살아감(반대로 영주는 농노를 보호함). 농노는 ‘직영지 농노’, ‘변두리 사람들’, 오두막 사람들‘, ’예농(인격적, 경제적 자유를 좀 더 많이 누린 농노, 일반농노와 달리 영주에 대한 의무가 비교적 고정적)으로 나뉨(일부 자유인도 有).
@교회 : 교회는 봉건제의 일부로 최대의 토지를 소유. 교회는 빈민과 병자를 도왔지만, 그것은 그들이 소유한 부(십일조(토지세,소득세,상속세 등이 포함됨)로 부를 축적)에 비하면 세속 귀족들의 선행정도도 하지않은 것이 됨. 그럼에도 교회가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환상에 사로잡힌 왜곡된 사회체계때문.
들어가며
이 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Leo Huberman)은 미국의 언론인이자 노동운동가인 진보적 지 식인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시기는 1636년인데, 이때는 세계 대공황과 1차 세계대 전이라는 제국주의전쟁이 끝난 시기다. 동시에 파시즘이 등장하여 몇 년 후에는 2차 세계대 전이 일어나기도 하는 시기다. 저자의 경력과 당시 시대상황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당시의 문제점들을 맑스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문장 이 거칠지는 않다. 주류경제학에서 말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일면을 들춰내고 있지만 공격적이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중세시대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탄생할 때 까지를 다 루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자본주의 시대 이후를 다루고 있다. 책의 원제는 Man's Worldly Goods-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인간의 세속의 부-국부 이야기)인 데 역자는 책의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제목으로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사용했다.
글쓰기의 마지막 글인 기말보고서(서평)를 쓰기위해서 지정된 책 중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사실 워낙 글쓰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고 글을 못쓰다보니 이런 과제를 내주시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책을 고르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읽은 책 중에서 골라서 쓰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주어진 책 중에서 고르는 것이라서 좀 힘들기는 했지만 오히려 책을 고를 부담은 더 덜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을 고를 때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골랐다. 일단 서평을 써야하는데 서평 분량도 많고 책을 실질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험이 수요일에 끝나기 때문에 수요일 오후까지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어렵거나 두꺼운 책을 고르기 보다는 읽기 쉬운 책을 골라야만 했다. 그래서 정해주신 책 중에 가장 쪽 수가 적은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쉽게 읽어낼 수 있어야 했는데, 이 책은 쪽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서술이나 글투도 그리 어렵지 않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예전부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고,(물론 세계사를 배운 것은 중학교 사회시간이나, 고등학교 1학년 일반사회 시간일 뿐이고, 학교의 사정으로 사회탐구 심화과목인 세계사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역사책를 읽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이 책에 더 끌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세계사를 심화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배운 것은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었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일어나자 ‘새로운 자본주의로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근원을 하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이 발문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중세부터 이어져 온 자본주의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근원과 의미 그리고 모순들에 대해 짚은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자본주의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 축적과 끊임없는 노동 공급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체제의 역사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중세 봉건 시대로부터 거슬러올라간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서평
1. 순수, 보편, 현실
주어진 텍스트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논리를 따지고 판단에 있어서는 나 자신의 이해관계와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합격을 위해, 모두들 진지하다. 그리고 제법 진지했기에, 나의 사유의 결과물들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순수한 사유와 그 결과에 대한 확신.
물론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고, 자신이 내린 처방에 대해서는 이익형량을 해 보고 난 결과이므로 이것이 최선이며 필요한 약간의 조치를 통해 진정으로 모두가 행복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은 모두에게 좋아야 한다는 목적을 위해 모두에게 좋은 길을 찾은 결과였으므로. 나의 생각은 마치 허공에 뜬 십자가처럼 나의 이해관계에서 탈피한 보편적인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책상머리 몽상가의 공상은 행정기관에서조차 욕을 먹는 것. 상도 5동 철거민들 앞에서 지역 개발과 앞으로의 교육 여건의 향상을 얘기하는 것에서, 열사정국을 불러온 비정규직 법안 앞에서 기업가의 경기 전망에 따른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는 것에서, 최초 고용 법안에 대해서 일자리를 일단 얻은 사람은 안정을 원하고 실직자는 고용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원한다는 식의 도덕적 비난에서, 순수한 사유가 얼마나 쓸데 없는 것인지를, 그리고 불가능 한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작년 메이데이를 전후해서 읽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이러한 점에서 탁월하였다. 중세 봉건 사회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1부)을 설명하고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대한 추적을 통해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2부) 이 책은 역사의 줄기를 잡아나가면서 사유와 현실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설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깨닫는 즐거움과 신선한 사료, 유쾌한 글 투와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골고루 소개 받는 즐거움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2. 미네르바의 부엉이
리오 휴버먼은 이 책을 경제이론으로
1.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중세 봉건 시대에는 세 계층이 존재했다. 성직자(기도하는 사람들)와 기사(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농노(일하는 사람들)가 바로 그것이다. 농노들은 성직자나 기사를 부양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의 노동은 주로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농작물 재배나 양치기 등이었다.
서부와 중부 유럽의 농토는 대부분 ‘장원’이라는 지역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 장원은 촌락과 주변 경작지, 그리고 경작지 주변의 목초지•황무지•삼림•방목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시대 장원제도는 크게 세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경작지가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영주의 직영지는 전체 영지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했으나 실제로 중세 봉건시대의 쌍무적 계약관계에 따라 이 토지마저도 영주의 소유지가 아닌 보다 높은 주군으로부터 받은 보유지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토지가 밀집된 경구가 아닌 흩어진 지조로 경작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농노가 자신의 보유지만이 아니라 영주 직영지에서도 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농노는 무보수로 1주일에 2~4일 정도를 영주 직영지에서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확기•재난 상황•시장 등에서 영주의 곡물을 먼저 수확하고 보호하고 팔아야 하는 등 많은 추가 봉사를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농노는 노예와는 달랐다. 농노는 영주의 의지와 관계 없이 자기 가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고 토지와 별도로 팔릴 수 없었다. 즉, 영주가 장원의 보유권을 남에게 양도하더라도 농노 자신은 그가 경작하던 그 땅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농노에는 직영지 농노, 변두리 사람들, 오두막 사람들, 예농, 자유민 등 여러 층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예농은 인격적•경제적 자유를 좀더 많이 누린 농노로써 극히 제한되고 고정된 의무만을 부담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각 농노의 토지 보유 조건은 여러 단계를 지나면서 서로 별 차이가 없어져 현재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농민은 모두 예속된 존재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