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온 에드워드 윌슨. 이 책은 그 거대한 기획을 총결산한 역저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이, 인간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협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서구 학문의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가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지들 속에 숨어 있는, 그렇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지식 통합의 가능성을 찾아내 명확하게 보여 준다....
통섭만큼 딱 봤을 때 뜻이 안 보이는 단어도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이것저것 이어 붙이고 왔다갔다 생각하는 것이었다. 과학 지식론에서 융합이 화두로 떠오른 건 20세기 때이다. 이제와서 이게 화제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파인만이 했던 유명한 말 중에 ‘인간만 학문을 분류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연구의 영역에서 더 이상 장벽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환원주의는 어떻게 보면 물리 쪽에 통달한 사람들이 인문 쪽에 갖다 붙인 용어 같기도 했다. 물리학이 추궁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TOE 세상의 모든 원리를 하나로 통섭 가능한 수식이기 때문이다.
옛날 수렵 채집 시대에는 어떤 인간의 능력이 중요했을까? 먹이를 사냥하고, 인간을 해치는 다른 동물이나 자연의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경사회에로 접어들게 되면서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식물과 계절을 위한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농사를 다룰 수 있는 건강한 신체 능력을 필요했을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전문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었다. 어느덧 전문성 하나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로 시대가 바뀐다. 일본 도요타가 처음으로 시대를 반영한 T자형 인재를 원했다. 글자 T의 가로 방향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일반인을 의미한다. 한 분야, 물론 수직방향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의미하며,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다.
‘통섭’은 ‘학문간 장벽을 뛰어 넘은 지식의 대통합’을 주장하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책의 주제를 “본유의 통일성”이라고 밝히며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룬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인과 설명들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 지식이 본래 통일성을 가진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든 지식인이 서로 협력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해 21세기 지식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이 책은 통섭 세계관에 따른 학문의 기초를 세우는 데 무게를 싣는다. 우선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과 철학 종교 사회학 계몽주의 사상사 등 인문·사회과학의 각 분과학문을 관통하는 핵심부터 잡고, 이후 학문간 통합을 막는 자연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의 대립, 몸과 마음의 이분법, 윤리 규준에 대한 경험론자와 초월론자의 논쟁, 유물론자와 유신론자들의 적대 등을 짚고 양자의 종합을 모색하고 있다.
‘통섭’은 ‘학문간 장벽을 뛰어 넘은 지식의 대통합’을 주장하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책의 주제를 “본유의 통일성”이라고 밝히며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룬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인과 설명들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 지식이 본래 통일성을 가진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든 지식인이 서로 협력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해 21세기 지식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통섭은 국내에서 융합이라는 뜻을 지닌 보편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윌슨의 본래 문제의식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을 대통합하겠다는 의도였다.
지금은 통섭이란 말이 낯설지가 않은 단어이다. 어느 학문을 막론하고서라도 통섭이란 마치 구호처럼 쓰이고, 심지어 통섭적 인재란 말까지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Consilience란 말을 끄집어내기까지 수많은 연구와 고민이 있었고, 이 단어를 번역한 최재천 교수까지도 사전에 없는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매우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그 만큼 통섭(consilience)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통섭이란 말을 설명하기 위해 이 두툼한 책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Consilience'이라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전을 뒤졌지만 그 의미가 쉽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여러 학문들을 통합하는 그러한 의미일 것 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나 3장 계몽사상을 읽을 때까지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작가의 생각을 다 읽어내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옮긴이의 서문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윌슨은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 학문의 큰 줄기를 잡고자” 이 책을 폈다고 하니 [중대사전]과 [한화대사전]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있는 것처럼 통섭이란 의미는 ‘큰 줄기’ 또는 ’실마리‘ 라는 ‘통’과 ‘잡다’또는 ‘쥐다’라는 뜻의 ‘섭’을 합쳐 만든 말로 ‘큰 줄기를 잡다’ 또는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는 의미가 가까울 것 같다.
작가는 첫 장 이오니아의 마법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지식의 통일성,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원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즉, 세계는 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며 “나는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오니아의 마법이란 통합 과학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말로서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에 살았던 탈레스의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물리학의 통합을 시도했던 아인슈타인도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통섭이란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원래는 과학 안에서 분야 간의 통합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과학을 넘어서 학문 사이의 통섭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한 통합으로 우리는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있고 지식의 다양성과 깊이도 심화될 수 있다. 계몽사상 시대에 그러한 통합의 꿈이 꽃피웠었으나 정신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까지 과학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강력한 반발에 마주하여 좌절하고 말았다. 또한 비록 과학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나 실제 세계는 한 학문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갈 때 경우의 수가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무한한 미로와 같다는 문제가 있다.
<통섭 1장>-이오니아의 마법
스웨덴의 자연가학자 '린네'는 종.속.과.목.강.계라는 분류체계를 사용하였다. 이게 저자의 지적세계틀의 원천이다.
이러한 이름짓기를 통해 진화를 발견하였다. 이미 대학 세내기 2학년인 열 여덟에 린네와 로저 토리 피터슨 수준의 개념적 세상을 가졌다.
스승이었던 랠프 처막은 <계통분류학과 종의="종의" 기원="기원">이라는 진화관련 책을 저자에게 주었고, 그로인해 진화에서 더 나아가 다른 모든 것의 관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다.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럴드 홀턴이 처음으로 쓴 '이오니아의 마법'은 통합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이다. 세계는 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드로 설명 되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 기원전 8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모두 이오니아인이었다. 그밖의 과학자들도 통합을 시도했지만 수없이 도전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었다.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진리를 향한 추구는 계속 이어져 왔다. 하지만 진리는, 사람들이 미리 나눠놓은 학문의 갈래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 형체를 이루어왔다. 실제로, 예전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학문의 갈래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분야에 걸쳐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거의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6세기를 지나면서 환원주의에 의해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들과 사람들이 나누어졌고, 이후 엄청난 양의 지식을 발굴하는 데 엄청난 공을 쌓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하나로 묶어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21세기, 현재 우리는 모든 학문을 어우르고 통합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 현재 입시체제만 보더라도,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가지며, 학교생활을 성실히 한 학생들을 대학들은 찾고 있으며, 현재 취업시장에서도 문이과적 성향을 두루 가진 사람들을 회사들이 더 선호한다고 한다.
<통섭>이란 책이름을 처음 접하였을 때 대략적은 뜻은 유추되지만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서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제목이라고 생각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설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데카르트의 말은 변형한 것 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괴롭다.”
<통섭>책을 펼치면 서문에 저자의 consilience(통섭)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n Whewell)이 1840년에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사용한 단어로 라틴어인 'consilere' 에서 온 것으로, 'con'은 영어로 'with', 'salire'는 'to leap' 을 의미한다. 즉, 한마디로 말하면 'jumping together' '더불어 넘나듦' 으로 정의된다. 풀어서 설명하면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 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