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북동으로 이사하면서 말 많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황수건을 만난다. 그는 삼산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학무국 시학관을 잘못 대접한 문제로 쫒겨 나고 이후 신문 보조 배달원이 되지만 정식 배달원이 되고 싶은 그의 소망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도 밀려난다. ‘나’의 도움으로 참외 장사를 시작하지만 곧 장마로 망치고 금실 좋던 아내마저도 달아난다. 어느 날 황수건은 성북동 길에서 밝은 달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며 담배를 피우고 ‘나’는 황수건의 그런 모습을 나무 그늘에 숨어 지켜본다.
달밤을 읽을 때마다 ‘서정적이란 분위기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30년대 서울 외곽 성북동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수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술자의 따스한 시선, 마지막 장면에 달빛 아래에서 서툴게 노래를 부르는 수건의 모습까지 모두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달밤은 이렇게 서울 외곽의 시골에 이사 온 서술자가 동네의 ‘반편이’ 황수건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달밤의 황수건은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는 인물이다.
상허 이태준은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산명리에서, 모친 순흥 안씨와 부친 이창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9년 이창하는 소실 순흥 안씨와 그녀의 소생들을 데리고 러시아령인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지만 35세를 일기로 이국땅에서 죽고 만다. 가장을 잃은 일가는 이듬해 함북 배기미에 도착, 인근 소청 거리에 정착하게 된다.
1912년 순흥 안씨마저 죽게 되어 세 남매는 고향인 철원 용담의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1915년 이태준은 안협에 사는 당숙 이용하에게 입양 형식을 보내지지만, 다시 용담으로 되돌아와 다른 당숙 댁에 기거하면서 사립 봉명 학교에 입학한다.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인공이 ‘황수건’이란 인물을 만나서 그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주인공도 황수건도 모르는 제 3자의 시점으로 약간은 거리를 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한 사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빠진다.
처음에는 오래 전 지어진 소설이라 읽으면서 문장의 어투가 익숙지 않아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것도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어느새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냥 소설을 읽으며 황수건에 대한 애잔함과 연민이 물씬 내 가슴을 애려왔다.
이태준의 「달밤」(1933)과 「밤길」(1940)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소외되고 불우한 처지의 인물 유형에서부터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는 담담한 필치까지 작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소외된 인물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인간애를 중시하는 작가의식이 드러나 있으며, 나아가 그런 인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냉혹한 현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게 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갈수록 소외된 인물에 대한 연민, 그 너머로 한없이 무기력하고 의지박약한 그들의 모습에 답답함과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태준의 「달밤」과 「밤길」에 대한 짧은 소회는 그의 작품 속 두 가지 인물 유형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밤길」의 중심에 놓여있는 ‘황 서방’은 식민치하의 하층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