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허수경 시인이 남긴 시로 갈 시와 글로 갈 글, 그 태생과 성장과 말년을 엿볼 수 있는 시작 메모들!
2018년 10월, 우리의 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1주기를 맞아 펴낸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끝끝내 죽음에 당황하지 않고, 끝끝내 죽음에서 삶의 명징함을 찾으려한 시인 허수경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긴, 특히나 시와 관련한 글들을 그 기본 뼈대로 한 유고집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저자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글들’이라는 폴더 안에, 제각각 폴더 이름은 ‘2011 작은 글’, ‘2012 NOTE’, ‘2013 글들’, ‘2014 희망들’, ‘2015 Schriften’, ‘2016 SH’, ‘2017 병상일기’, ‘2018 가기 전에 쓰는 시들’로, 근 7년간 써내려간 시작 메모를 시기별로 담아냈다.
2부는 저자가 2016년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출간한 이후 타계하기 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시의 모음, 3부는 저자가 자신의 시에 부친 작품론과 시론, 이 두 편을 담았다. 저자가 직접 그 제목을 써서 정리해나간 생의 마지막 노트이자 속내인 이 책에 담긴 삶 안팎을 성찰하고 뱉어낸 사유들이 깊고도 뜨거우면서도 넓고도 서늘하다.
1. 허수경의 생애와 작품 배경
허수경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87년,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을 때 실천문학에 네 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88년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1992년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출간하며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시에는 쓸쓸함, 청승맞음, 농염함 같은 정서가 강하게 배어 있으며, 여성 화자의 내밀한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는 힘이 있었다.
허수경은 시뿐만 아니라 고고학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뒤 고대 동방 고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장 발굴에도 참여하며 학자로서도 성실히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를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학문과 문학을 병행한 흔치 않은 이력으로,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오가며 자기 정체성을 다져나갔다.
독일에서 오래 거주하며 한국과 독일, 두 곳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을 자주 토로했다. 타국에서의 생활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켰고, 그녀의 시에는 이런 감정이 진하게 스며들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담소를 나누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일상적인 관계들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여전했다. 이방인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고립감은 그녀가 시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