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란츠 리스트 「순례의 해」의 간명하고 명상적인 음률을 배경으로 인파가 밀려드는 도쿄의 역에서 과거가 살아 숨 쉬는 나고야, 핀란드의 호반 도시 헤멘린나를 거쳐 다시 도쿄에 이르기까지, 망각된 시간과 장소를 찾아 다자키 쓰쿠루는 운명적인 여행을 떠난다. ‘색채’와 ‘순례’라는 소재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환상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 많다. 주인공은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기괴한 사건을 겪고, 그로 인해 자신의 세계를 떠나 어딘가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무슨 일인가를 겪은 후 변화된 (혹은 성장한) 주인공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거나, 이곳을 포기하고 그곳에 머문다. 같은 주제의 변주인 듯한 작품들임에도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이야기가 다르다.
하루키의 팬들은 이런 환상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스타일리쉬한 문체로 써 내려간 그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나도 하루키스트들 중 하나이고, 나는 현실이 내 뜻과 달리 어긋나기 시작하면 하루키의 작품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 집어든 책은 특이한 제목의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다. 역시 주인공이 자신의 세계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1. 해변의 카프카의 뒤를 잇는 하루키의 또 하나의 성장소설
다자키 쓰쿠루.
서른 여섯(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는)의 철도 회사에서 역을 설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와 맥을 같이 하면서, 전혀 맥을 달리하는 소설입니다.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은 이른바 성장소설입니다. 물론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다무라 카프카라는 소년의 내적 성장을, “색채가 없는”에서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서른 중반의 성인 남성의 내적 성장을 그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전혀 맥을 달리 한다는 말은 “해변의 카프카”는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꿈속인지 무의식인지 모를 관념적인 공간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또 카프카의 성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만, “색채가 없는”에서는 꿈이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 다자키 쓰쿠루가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은 그가 발품을 팔아 직접 맞이한 현실세계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만큼 삶과 인간관계의 상실을 섬세하고 그려내는 작가는 드물다.하루키답게 본 작품도 상실을 말하고 있다. 누구나 어릴 적에는 단짝 친구를 사귄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단한 결속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 역시 마찬가지로 네 명의 단짝친구들을 사귀었다. 마치 "이상적인 화학작용" 같은 긴밀한 유대였지만, 그 유대는 시로의 모함과 다자키의 오해로 인하여 영영 끝나고 만다. 몸의 일부와도 같았던 관계를 상실한 다자키는 심신에 크나큰 변화를 겪었다. 체형부터 감정까지 다자키 쓰쿠루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후 다자키는 대학생활 동안 하이다와 관계가 끊기면서 다시금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애인과의 관계도 존망의 기로에 놓인 채 이야기의 결말을 맞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당연히 ‘다자키 쓰쿠루’이며, 이 책은 철저히 다자키 쓰쿠루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쓰쿠루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은 매우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복잡한 쓰쿠루의 감정과 생각들은 흥미로웠고, 책을 읽으며 내가 다자키 쓰쿠루가 되어 느끼고 생각해볼 만큼 몰입할 수 있었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4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다섯 명은 마치 완전한 정오각형을 이루듯 각자의 특성과 역할이 분명했고 쓰쿠루는 그 그룹에서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쓰쿠르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자기 자신을 ‘색채가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바로 이 그룹의 4명의 친구들 때문이었다. 쓰쿠루를 포함하여 남자 3명, 여자 2명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쓰쿠루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이름에 ‘색채’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친구들은 각각 아카(赤, 붉을 적), 아오(靑, 푸를 청), 시로(白, 흰 백), 구로(黑, 검을 흑)의 애칭으로 불리었다. 오직 쓰쿠루만이 애칭이 아닌 자신의 이름대로 불리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최근에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21세기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접한 계기는 다들 그렇듯이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한국소설과는 다른 유려한 문체와 이미지즘, 감각적인 분위기 환기, 청춘기때 상실의 아픔과 생과 사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 명작이었다. 다른 작가들과 대비해 볼 때 하루키의 소설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는 않다. 섣불리 판단 내리고 정의 내리는 것을 유보한 채 작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달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는 것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그래서일까?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어떤 책보다도 짙은 여운이 맴돈다.
이번에 읽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역시 한층 더 깊어진 하루키의 문체와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소설은 정말 소설 그 자체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다. 감동적이고 탐미적이며 철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정점으로 하루키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완성해낸 느낌이 든다. 그 만큼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 이야기는 독자의 심금을 제대로 울리는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친척집으로 내려가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이야기 꽃이 피면서 아버지들은 아버지들의, 어머니들은 어머니들의,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의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각자의 성격과 생각들이 이야기에 묻어 나오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착하다’, ‘공부 잘한다’, ‘얌전하다’ 등등 다소 ‘모범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어른들에게 비추어지던 나였고, 나 또한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생각을 갖는 것에 나 자신을 맞춰가는 것이 익숙했던 과거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현재는 ‘취업’이라는 삶의 분기점 앞에서 적어도 인터넷 회원가입 직업란에 더 이상 ‘학생’이라는 칸은 사라진다. ‘나답다’가 아닌 맹목적으로 현실적인 미래를 생각할 시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소설 속 인물들의 ‘성격’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돌아와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본국인 일본에서 50만 부라는 경이적인 초판 부수로서 기대를 모았고, 출간 된 이후에는 불과 7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여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새로이 쓴 화제작이다.
또한 한국에서의 출간이 결정되자마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극도로 집중되었으며 초판 부수 20만 부, 출간 전 선주문 18만 부, 예판 기간 중 각 서점 베스트셀러 1위 기록 등의 강력한 이슈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 파워’를 여실히 증명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내용이나 배경 등의 작품에 관련한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출간 당일 자정에는 도쿄 시내 유명 서점에 이 책을 사려는 독자의 행렬이 늘어서면서 팬들의 기대를 증명하기도 했다.
‘색채’와 ‘순례’라는 핵심소재를 통해서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솔직하고 성찰적인 이야기이며, ‘노르웨이의 숲’ 이래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보인 최초의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 중 략 >>
현실적으로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서 존재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타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로서 실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평가가 필수적으로 동반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비록 본인은 모르고 있었으나, 또렷한 각각의 색채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쓰쿠루는 하얀 바탕의 역할을 했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조화롭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쓰쿠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쿠루는 옛 친구들의 말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의 참된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이 음악에 빗대진 것은 새삼 놀라울 것이 없다. “노르웨이의 숲” 이나 “남쪽 경계, 태양의 서쪽” 과 같은 경우가 있다. 만약 꼭 제목이 그런 연상과 관련있다 하지 않더라도, 책 내용 중에 특정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뭐, 그의 저번 작품인 1Q84의 레오 잔나첵의 싱포니에따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가 2013년 4월 12일에 출간한 최근 저서인 색채가 없는 쓰쿠루 타자키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단이 있다.
<중 략>
책의 명성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고, 이제 내용을 보면, 시작부분에서는 우리의 주인공인 스쿠루 타자키를 소개하는데, 그가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의 7월부터 1월까지는 거의 하루 종일 자살만 생각했다는 말로 소개한다.
“이 날들 동안, 그는 그의 삶을 끝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가 왜 마지막 한 발자국을 떼지 못했는지는 모호했다. 특히나 그 즈음의 그의 삶은, 날계란을 삼키는 것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버리는 것이 더 쉬웠을 테도 말이다.”
Ⅰ. 도서감상문
1. 들어가며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 ‘1Q84’와 ‘상실의 시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신작도 기대를 많이 했기에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서점으로 달려가 줄 서서 기다리다 구입했다. 참... 줄 서서 책 사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것 같다. 하여간 집에 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만큼 흥미로웠고 또한 소설 전체에 하루키 만의 특유의 감성도 여전했다. 아마도 5시간도 안 되는 동안 계속해서 음미하며 읽어내려간 것 같았는데 읽으면서는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처럼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이 안고 있는 문제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주 현실적이고 익숙한 것이어서 아마도 우리 모두가 어떤 측면에서는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중 략>
1949년 일본 교토부 교토시에서 태어나 효고현 아시야시에서 자랐다. 국어교사이자 다독가였던 양친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읽고 일본 고전문학에 대해 들으며 자랐으나, 일본적인 것보다는 서구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에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손에 사전을 들고 커트 보너거트나 리차드 브라우티건과 같은 미국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1968년 와세다대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해 격렬한 60년대 전공투 세대로서 학원분쟁을 체험한다. 1971년 학생 신분으로 같은 학부의 요코(陽子)와 결혼,1974년 째즈 다방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으며 이 작품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