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5년 「현대문학」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등단한 염승숙이 <채플린, 채플린> 이후 3년 만에 두번째 단편집을 발표했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현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 승자와 패자, 지루하고 고단한 이분법 세계 속의 진실을 캐묻는다. 개인 파산나 청년 실업 같은 현실 세태 속 어디 한 곳 귀의할 곳 없는 사람들, 노웨어맨(nowhere man 혹은 now here man)을 통해 말이다.
모두가 가짜인데, 진짜를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인 2011년 오늘, 염승숙은 우리에게 '비루하지도, 해말끔하지도 않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생경한 누군가'(레인스틱)들을, '딱 보기에도 있는 듯 없는 듯 회사에 붙박인, 존재감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들을, '어느 외로운 이의 서러운 울음과 웃음이 뒤엉켜 스러지는 소리'(레인스틱)들을 소개한다.
수의 제유와 환상 기제 등을 통해 '비범한 평범함을 추구'하려 했다는 평론가 우찬제의 언급처럼, 염승숙의 소설은 궁극적으로 이런저런 좌절과 실패, 상실과 전락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값이 소진되었다고, 존재의 의미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무화된 정체성, 고갈된 정체성' 등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론에 관한 문제의식과 동시대의 계량적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작가의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원룸에서 차가운 바닥에서 한 대학생의 차가운 시체가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그의 손에는 로또가 쥐어져 있었는데, 인생역전을 위한 로또가 아닌 등록금을 위한 로또였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19만원이다. 여기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퍼센트를 곱하게 되면 88만원이 나온다. 정규직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20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88만원 세대이다. 88만원 세대 대학생의 임금으로는 높은 등록금을 내기 힘들고, 그는 결국 원룸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 작품에서와 같이 레인스틱이 되어가고 있고, 혹은 이미 레인스틱이 돼있어 좌절하다 같은 비극을 일으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