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제23권『홍염』. 척박한 고향 땅을 버리고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 가족의 비참한 처지를 그린 작품《홍염》과 민중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탈출기》, 극도의 궁핍한 처지에 몰려 가족과...
‘그의 빈궁은 빈궁을 있는 그대로 체험한 자의 그것이다.’ 이 문장을 보고 최서해의 빈궁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또한 체험에 기반을 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주인공에게 더욱 눈이 갔다.
소작의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서간도로 이주했지만, 서간도에서조차 소작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출구 없는 회전문을 빙빙 도는 사람 같았다. 인가에게 소중했던 딸을 빼앗겼던 순간에도 그의 슬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가정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건 그에게 큰 상처였을 것이다. “엑 더러운 놈! 되놈에게 딸 팔아먹는 놈!”하고 생각하는 것도 그의 죄책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주인공이 살기 위해서 인가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돈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굶어죽는 가난으로의 그의 빈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최서해의 『홍염』은 1927년 01월 조선문단을 통해 발표되었다. 1920년대 한국 문학은 본격적으로 근대 문학의 형태를 구축하고 내용적으로 개인과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심도있게 다루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최서해의 『홍념』도 그러한 20년대 문학관에 따라 당시 간도 유민들의 궁핍상을 다루었다. 또한 1920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것은 ‘신경향파’ 문학이다. 1971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된 계급주의 사상이 일본을 통해 국내에 유입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문학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를 ‘신경향파 문학’이라 칭한다.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으로 첫째, 소재를 궁핍함에서 발견한 것.
등장인물
문서방(간도 이주 소작인), 용례(문서방 딸, 인가 처, 빚 때문에 인가에게 끌려감)
문서방 아내(용례를 빼앗기고 화병으로 죽음), 인(殷)가(중국사람, 문서방 사위, 지주)
한관청
줄거리
문서방은 경기도에서 소작인 십년에 겨죽만 먹다가 그것도 자유롭지 못하여 남부여대로 딸 하나 앞세우고 서간도로 들어오지만 이곳에서도 지팡살이를 하게 된다. 중국인 지주 인가는 작년에 이어 흉년으로 소작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문서방에게 유독 빚 갚기를 독촉한다. 하루는 문서방의 집에 찾아와 빚 대신 문서방의 아내를 데리고 가려 한다. 딸 용례는 인가의 손을 물어뜯고, 인가는 문서방의 아내 대신 용례를 데리고 간다. 용례를 데려간 인가는 문서방에게 땅을 주고 이사시켰고, 그 뒤로 용례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문서방으로 대표할 수 있는 그 시대의 하층민의 절절하고도 안타까운 심정과 상태를 작가 최서해 <홍염>을 통해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그런 하층민들의 속마음까지도 그려내며, 방화와 살인 같은 일종의 분노 표출을 통해 작품에서나마 울분을 덜어주었다. 나라가 강제로 점령당하면서 떠밀리듯 올라온 곳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며 노동을 착취당해야 했던 나약한 하층민은 그 고달픔과 울컥함을 꾹 누르고 누르다 한계치에 도달하는 순간 방화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중국인 지주 인가는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문서방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괴롭히며 협박한다. 그러다가 문서방의 딸 용례를 아내로 삼으려는 괘씸한 생각을 일삼았고, 이내 그의 아내를 끌고 가려다 그걸 저지하는 용례를 데려가 아내 삼고야 만다. 연이은 흉년에 남은 것이 맨 몸뚱이와 가족 밖에 없던 문서방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그렇게 금지옥엽 같은 딸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