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한눈팔지 않고 오직 엉덩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세상의 모든 힙hip을 딥deep하게 탐구한 국내 유일 ‘엉덩이’ 인문서
계단을 오르며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가? “아, 내 엉덩이 괜찮나?” 유난히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날, 뒤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본 적 없는 뒤태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마땅히 내 것임에도 어쩐지 당당할 수 없고, 오로지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대상. 인류가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엉덩이는 늘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근데, 엉덩이는 어쩌다 이런 곤란한 존재가 된 걸까?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책 《엉덩이즘Butts》은, 탈의실에서 낑낑대며 청바지에 엉덩이를 욱여넣던 한 여성의 뛰어난 탐구 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다. 큐레이터로 일하며 특유의 집요한 연구력을 장착한 작가 헤더 라드케Heather Radke는 편견과 오해, 목적과 의도라는 수많은 옷을 겹겹이 입고 뒤뚱거렸던 엉덩이의 이력을 낱낱이 파헤친다. 작가의 데뷔작인 이 책은 발칙하고 드라마틱한 저술로 이루어진 흥미진진한 르포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 당시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이목을 끌었고, 2022년 최고의 논픽션 자리를 휩쓸며 독자의 열렬한 간증을 받았다. 수치심에 갇힌 몸과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억압받던 자신감은 강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며 자꾸만 엉덩이를 감췄던 이들에게 해방구 그 자체가 되어줄 것이다. 마치 구호 같은 책 속 문장들을 되뇌며 우리는 당차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는 그저, 엉덩이일 뿐이라고.
누구나 백화점에서 옷을 구입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옷이 몸에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탈의실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에 자신이 모습을 비춰본다.
그때 대부분 옷이 몸에 잘 맞지 않으면 치수를 크거나 작은 것으로 바꾸어서 다시 입어보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입을 포기하고 다른 옷을 둘러본다. 모두들 그렇게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에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판단은 살지 말지 둘 중 하나로 귀결될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옷 속에서 예리한 촉감을 발휘하여 우리가 간과한 역사, 문화, 정치의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인종 문제에 둔감한 우리로서는 얼른 와 닿지 않지만, 저자는 인종과 젠더의 정치는 몸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다. 우선 제목이 그렇다. <엉덩이즘>이라니. 사실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은 바로 그 제목 때문이었다. 도대체 엉덩이 이야기로도 책을 쓸 수 있다니. 그것은 대단한 필력이거나 이야기꾼이 거나 둘 줄 하나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래저래 책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저자는 처음부터 사뭇 진지하게 엉덩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더니 마침내 엉덩이는 기껏해야 하나의 신체부위일 뿐인데 어째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하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다 저자는 탈의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엉덩이는 꽉 끼고, 다리는 우스꽝스럽게 벙벙하며, 허리는 한참 남는 바지, 거울에 비친 바지는 크고 헐렁해 보였지만, 몸을 돌려 뒷모습을 확인하자 익숙한 좌절감이 밀려왔다.”(354쪽) 고 고백한다.
매일의 일상 상황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이 느낌은 스스로의 이미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지만, 익숙하고 평범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된다. 저자는 백화점 탈의실에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고 책을 쓸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 호기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