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파스칼의 명저 팡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서적 중 하나로 인정받는 책으로 보들레르, 니체, 졸라에게 영감을 주고 실존주의자들의 선구가 되었다. 번역을 한 불문학자 이환 교수는 최근까지의 문헌학적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편찬한 책인 라퓌마 L. Lafuma 판을 원본으로...
파스칼이 남긴 글이라고 들었을 때, 머릿속엔 먼저 수학적 업적이 떠올랐다. 기능적인 재능과 논리적인 사고로 유명했던 인물이 남긴 사유의 기록이라 해서 나름의 궁금증이 일었다. 마음속을 파고드는 그의 문장이 어떨지 막연하게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펼쳐 보면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르다. 계산적이거나 차가운 분석의 말투만 가득할 거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인간 내부의 복합적이고 어지러운 면을 헤집어 보는 듯한 조각글이 많았다. 정신적 결핍에 대한 심각한 고찰 그리고 신앙에 관해 말하는 구절들이 교차한다. 파스칼이란 인물이 이렇게까지 깊은 고민을 품었나 싶다. 문장 하나하나가 완성된 논문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가볍게 흩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단편들이 읽는 사람을 잠시 멈칫하게 한다. 그 안에 감춰진 목소리가 호소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말하자면 수학자로서의 모습과 신앙고백자로서의 모습이 번갈아 나타난다. 사람이란 모순된 존재라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실제로 책 전체를 통틀어 인간이 지닌 위대함과 허무함 사이를 종종 오간다. 오늘날에는 낯설게 들릴 수 있는 표현도 나온다. 오래된 단어들이어서 처음엔 이질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한 문장, 또 한 문장에 파스칼만의 절실함이 배어 있다고 느낀다. 가끔은 호소하고 가끔은 의문을 던지고, 때론 절규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방식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아서 매력적이었다. 세련된 정리보다 진심어린 토로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느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그가 말하는 신앙의 개념이다. 신앙은 이성으로도 다 설명이 안 되고 의심이 늘 따라붙는 대상이라고 그 자신이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의미가 있다는 듯한 표현을 놓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묘한 아이러니에 빠진다.
파스칼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정도로 종교에 대해서 고찰을 했다니 신기하다. 그 외에도 철학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사상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모든 사람의 관점, 어느 방향으로 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을 해도 잘못 보았다는 식으로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팡세’는 블레즈 파스칼의 미완성 작품으로, 천재 수학자, 과학자, 교양인, 영성가인 파스칼의 다양한 내공과 비평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적인 믿음과 인간의 유머러스하고도 비극적인 존재에 대한 파스칼의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이렉트한 철학적 논의보다는 명상적인 시선에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팡세’의 주요 내용과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람의 애증: 파스칼은 인간이 모순적이고 어둡게 혼란스러운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동시에 높은 지성과 비극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애증과 열망을 반영하며, 이로 인해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 존재의 공허함: 파스칼은 사람들이 종종 철학적인 의문에 빠져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존재의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공허함은 신과의 관계를 통해만 해소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팡세’는 파스칼 블레즈(1623~1662)가 쓴 철학서이자 수필집이다. 프랑스 파리 출신인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자연과학뿐 만 아니라 종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신학과 신학자들의 주장 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 그가 평생 동안 고민하여 얻은 결론은 바로 “인간 은 죄인이며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부터 그 는 신의 존재 여부나 천국이나 지옥이라는 개념보다는 인간의 본질 자체에 집 중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사색과 명상을 거듭했고, 마침내 『팡세』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작품 해설/이환
- 인간 실존의 위대한 증언
영원한 비참이라는 위험, 파스칼이 얘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의 마지막에 불행이 있는데 이를 막을 준비는 안하고 있는 시간을 자기 필요한 일들 다 하다가 죽을 때에 불행이 있나 없나 시험하는 이런 상태에 스스로 만족하고 당연하고 공인할 만하고 자랑하는 것이 인간이고, 잠시 평안을 누리지만 이는 무지 속에 누리는 평안이라고 이야기한다. 파스칼은 이런 유형의 인간을 가장 악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스칼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기준은 바로 ‘신’이다. 신을 알지 않고는 행복이 없고 신에 가까울수록 행복하고 멀어질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현재를 지나치게 확대시키는 것은 맞다. 영원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영원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것도 맞다. 영원을 허물로 만들고 허무를 영원으로 만든다. 신을 자신의 이성의 범위로만 인식하는 이신론도 결국 현재를 지나치게 확대시킨 것 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파스칼이 다시 얘기한다. 신을 알지 못하거나 자신의 비참함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고. 아직까진 납득하기가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세계는 존속하지 않았고 세계는 이미 파괴되었거나 아니면 지옥으로 변했을 것이다는 말도 참 납득하기 어렵다. 예수가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대교와 나머지 종교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오고 기독교가 탄생하므로 말미암아 친족 간에 통혼하던 무지한 종족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었고 피의 독수리로 살아 있는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던 바이킹들도 한 인간을 하나님이 빚은 소중한 피조물이요 예수께서 목숨 바쳐 사랑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은 바바리안에서 사피엔스가 되었다. 서로마, 비잔틴시대, 중세를 거치면서 기독교는 부흥했고 면죄부 파동이 보여주듯 타락했다.
이 책의 형식은 조금 독특하다. '팡세'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명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련 없는 짧은 문장 두세 개가 의식의 흐름처럼 쓰여진다. 나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파스칼의 신앙이었다. 그 믿음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두어야 한다. 종종 감성이 휘발되고 이성이 분별되기 때문에 가변적인 감성은 위험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파스칼은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판단은 새로운 증거에 의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지만 감성 자체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강도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읽지는 못하리라는 예감과 함께 21세기의 동 아시아에서 번성한 한국교회의 믿음의 고리들이 1650년대에 이런 신앙을 가진 지식인들의 탐색에 힘 입어 그다지 큰 변함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다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그의 굳건한 믿음을 편견이라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종교의 어둠의 신학들이 새롭게 터져 나오는 과학과 수학과 물리학의 기반으로 한 논리성에게 공격받던 1670년대에, 존경받는 수학자, 물리학자, 종교철학자, 작가로서 수 많은 업적을 남기면서도 삶은 신을 향한 순수한 낮춤으로 일관했던 대 학자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파스칼은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했고, 압력에 관한 원리(파스칼의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신의 존재는 이성이 아니라 심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적 독단론을 주장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매일 듣던 말은 ‘다이어리를 쓸 시간에 공부를 하겠다 얘’였다. 왜냐하면 누구나 잘 알다시피 고등학교 3년 동안은 대학 입시 준비를 하기에 바쁜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바쁜 와중에도 최대한 매일같이 다이어리를 썼었다. 심지어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날에도, 한 줄이라도 일기를 적고 잤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그때 내가 왜 그랬었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일기장에 그날 있었던 일과 내 기분을 적는 그 순간이 나에게 제일 편한 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가장 편한 순간인 이유는 사실, 좀 안 좋게 들릴지는 몰라도, 내가 다이어리를 사람을 대하듯이 신경 써서 배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날 것의 감정을 받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알기에 나는 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내 근심을 털어놓지 않는다.
팡세는 1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아주 많은 단장이 있다.
제1편은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이다.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의 정신´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기하학의 정신´에 있어서 그 원리는 명확하지만 보통은 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즉 추리능력을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 쪽에 얼굴을 돌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반면 ´섬세의 정신´은 그 원리가 모든 사람의 눈앞에 있다. 즉 직관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정신이 모두다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원리의 결론을 활발하게 깊이 간파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확의 정신」이라 하며, 또 하나는 다수의 원리를 혼동하지 않고 파악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하학적 정신」이다. 「정확의 정신」은 정신의 힘과 정확성을 나타내고, 「기하학적 정신」은 정신의 넓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Pensées란 그저 불문학과 학생으로서 ‘생각’이라는 뜻의 프랑스 어휘의 복수형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번 과제를 하게 되면서 팡세를 읽었지만 그전엔 딱히 읽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책이다. 지식의 고등수준인 대학교에 진학하여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중요한 역사인물 파스칼을 자세히 접해볼 겨를도 없었다. 파스칼을 떠올리면 그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는 명언만 알고 있을 뿐, 큰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번 과제를 통해 파스칼의 팡세를 읽게 되어 값진 경험을 하였다.파스칼은 사람의 마음인 심정을 강조한다. 심정은 이성이 모르는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더불어 인식능력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