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부제 ‘신영복의 언약’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과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라는 부제를 달고 2007년 초판이 출간되었던 이 책은 근 10년 만에 새롭게 개정신판으로 출간되었다. 바뀐 부제만큼이나 내용과 구성에서 많은 변화를 꾀하였는데...
인생이 개인이 스스로 잘 되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취지의 인생론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영향을 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자신들의 이득만 계속 취하려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처음처럼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처음만큼 순결하고 순수한 순간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심을 늘 붙잡으려고 한다. 내가 저자 신영복을 처음 알 게 된 계기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여년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낸 분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억울함으로 분노와 울분에 차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온통 차분함 그 자체였다. 마치 신부님을 대하는 느낌처럼 어디에도 원한과 분노에 사무친 격한 감정을 찾을 수 없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의 표정에서 느꼈던 그 인격적 온화함을 그에게서도 느꼈던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저자와의 첫 인연이었다.
2016년 1월, 행동하는 시대의 양심이자 시대의 별이 졌다. 그 소식을 접하고서 이제야 그분이 쓰신 책 중 하나를 펼쳐들었다. 에세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요즘 사람들이 흔히 읽는 감성에세이가 아니었다. 마치 격언처럼 또는 잠언처럼 , 때로는 한편의 우화처럼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깊고도 깊었다. 선생님의 친필이 그대로 인쇄 되어 있어 마치 그 분이 나에게 쓰신 편지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람과 인생에 대한 따뜻함에 눈가가 촉촉해졌고, 세상에 대한 명쾌하고도 날카로운 지적에 읽는 내내 심장이 쿵쾅 거렸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에는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2부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에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3부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는 우리 삶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4부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는 관계, 연대와 공동체, 현재 한국 사회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영복, 이름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선생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의 복역을 치렀다. 뜨거운 청춘의 시간을 차가운 감옥에 기대어 살아왔다. 창살 곁으로 비추는 햇볕의 따사로움과 고전과 철학에 위로 받으며 지내온 시간이리라.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의 글귀에는 항시 깊고 냉철한 성찰과 따뜻한 위로가 숨어 있다.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큰 별이 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난 그 분을 직접 뵌 적이 없다. 우연히 읽게 된 책 몇 권을 통해 그의 사상을 만났다. 평이하면서도 깊고 넓으면서도 쉬운 깨달음의 언어가 가슴에 새겨졌다. 다시 책을 들었다. ‘처음처럼’. 책을 통해 그를 만났던 처음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나보다. 짧은 글귀와 소박한 그림을 바라보며 그와의 처음 만남을 추억해본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