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숨 쉬기 힘든 시대, 숨구멍을 찾아서
인디언의 말에 기대 희망을 노래하다
앤 섹스턴, 어맨다 고먼, 루이즈 글릭 등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를 공들인 번역으로 소개해온 한국외대 영미문학ㆍ문화학과 정은귀 교수의 산문집 『딸기 따러 가자』가 출간되었다. 그는 코로나19를 통과하던 시기, 묵상하듯 인디언의 노래를 찾아 읽으며 고립과 불안을 달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1년 열두 달, 우리 삶의 주기와 맞춤한 인디언의 말과 그에 의지해 지금 여기의 삶을 돌아본 글이 함께 수록된 이 책은 “우리가 다다른 문명의 막다른 길에 새로운 빛”을 전한다. 인디언들의 사유는 생태적 관계성, 장소성, 공공성을 뿌리로 하기에 그들의 말은 현재를 상대화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한다. 제목으로 삼은, 한 모호크 인디언 할머니의 말 ‘딸기 따러 가자’에도 그런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호크족) 할머니는 종종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는 양동이 하나 챙긴다고 해요.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반, 온 식구를 깨워서 말씀하신다고 해요. “딸기 따러 가자”고.
“딸기 따러 가자.”
그 마법의 말에 모두 새로운 하루를 열고 새로운 길을 찾는 거지요. 제게 있어 그런 마법의 말이 뭘까 곰곰 생각해봅니다.
_62~63쪽
절망의 순간에도 넋 놓고 있지 말고 자연 속에서 무언가를 해나가자고 이끄는 생기, 그리고 ‘함께 하자’며 곁을 돌보는 마음……. 상대를 베는 언어가 난무하는 오염된 말의 시대에 『딸기 따러 가자』는 지혜의 말들로 우리를 위로하고 일으킨다.
우는 걸 두려워 마라.
울음은 당신 마음을 슬픈 생각에서
해방시킬 것이니,
소리 내어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자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호피Hopi족의 속담에서)
_30쪽
소박한 이 책의 구성은 인디언의 열두달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사계절의 추이에 따른 자연현상으로 나타난 매달의 감각을 살려서 인디언들이 명칭한 달의 이름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인디언들의 지혜에 관해 들려준다. ‘생의 길이 가로막혔다고 느껴질 때면 고개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너 자신의 노래를 불러라’, 이는 누트카족의 말이다. 저자는 캄캄한 밤길을 걸을 때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인디언들의 금언들을 호롱에 담아 들고 앞장서며 가만히 살아갈 지혜를 속삭인다.
<중 략>
책을 읽는 도중 들려오는 홀로 또 함께 가는 공생의 가치를 중시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말은 빛의 언어였다. 패배의 운명을 알면서도 이 세상 낮은 자리에 있는 약한 존재들, 침묵하는 이들의 가치를 지키는 나무와 같은 인디언들의 세계를 접한 것은 신선하고 특별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