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갱생이나 삶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겠다는 마음, 그것이 순종이라고 생각을 한다. 책에는 공감가는 구절이 많다. 우리들이 순종을 배워야 하는 것, 그것은 고난이 주어지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었다.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순종을 주제로 한 책이다. 저자는 성경에서 순종의 의미, 순종의 유익과 반대 경우에 발생할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순종을 복종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처음엔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다 읽을 때쯤에서야,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법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 앞에 순종하는 방법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경험과 주위 사건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초심자 입장에서 좀 더 생생하게 읽혔다. 다만 경험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성경보다 그의 경험이 더 은혜로울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항상 성경을 중심으로 삶을 관찰하고 이끌어야하기 때문이다.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빨리 나을 수 있는 환자는 병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병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의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고, 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낫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얕은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늦게 병이 낫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의사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며,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판단하고 의사의 지시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중심에 세우고 자신이 수긍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명령에만 순종하며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보잘것없고 어리석어 보일까? 그것은 마치 내일을 알지 못하는 하루살이 같지 않을까? 우리는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설명할 수 없다.
<이하생략>
소설 [길 위의 황제]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감상문
<순종의 재조명>
이 작품 intro에서 작가의 바뀌어진 시각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이를 대중화 하려고 노력했던 박영규 작가는 고종, 순종 시대의 인물들에 대해서 단순하고 표면적인 우리의 역사 평가와 달리 그들은 이런 고충을 느끼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점을 품었고 이러한 점이 이 ‘길 위의 황제’ 책의 시발점이었다. 사실 역사학적으로 볼 때 대원군을 등에 업은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조선 황실의 명성황후를 끔찍이 시해하고 고종을 억압한 채 속국으로 삼은 사건은 천인공노할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결국 주도권은 일본에게 넘어가고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역시 힘없이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황제일 것이다. 얼핏 들으면 무능력하고 자존심도 없이 일본의 세력에 무릎을 꿇은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 시대상에서 그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 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순종을 읽고
전에 나는 그래도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권위에 의해 따르게 되었던 수동적이고, 습관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부분적인 순종을 하고 있었나를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가식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님을 깨달았고, 다시 한 번 순종적이지 못한 순종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기분에 치우쳐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도 있었다. 기분 좋을 때는 힘든 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다가도, 내 몸이 지치거나, 기분이 언짢을 때는 쉬운 일도 미뤄버리거나, 행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을 때가 있었다.
존 비비어 목사님은 사울의 99% 순종도 1%를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것은 불순종한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의 순종은 70~80% 정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순종이 아닌가 생각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순종이 믿음을 키운다는 부분에 큰 공감이 갔다. 즉시 순종과 끝까지 순종함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믿음과 감동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그렇게 했을 때 나의 믿음이 한 계단 성숙되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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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지가 꽤 되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순종이란,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순도 100% 따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따르는 것은 그의 권위 아래 내 자신을 내려놓고 그의 보호받기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사실은 얼마나 그의 권위 밖에서 놓아져 있었는지를 똑바로 직면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나라는 왕국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대전제를 깔고 시작된다. 역사를 공부하는 나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왕국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현실세계의 나라와는 그 의미와 통치체계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한 나라의 국왕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 국민으로써의 의무인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많은 부분을 투자하면서 설명한 것이 죄의 정의가 바로 불법을 행하는 것, 즉 하나님의 통치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죄의 정의이며, 불순종함으로 아담이 지은 원죄의 저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살아가면서 나는 불순종이 죄라는 것을 많이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나 교수님, 또는 선배들, 교역자 분들 등등의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가진 분들에게 순종을 하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포장하여 정당화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들 때 우리는 그를 닮고 싶고 무작정 따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있었어도 나를 변화시키기에는 그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었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이제껏 읽어왔던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통해 감동과 교훈을 받아왔지만 이 영양분들이 내 삶에 적용되어지고, 예전의 나를 갱생시키지 못한 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바닥에 곤두박질만 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이러한 나를 향해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주님의 살아계신 말씀들은 바로 나를 향한 명령이셨던 것이다. 주께서 주신 율법이 있어야 할 곳도 바로 내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나의 차갑게 닫힌 마음은 늘 지식으로만 주님을 배워나가고 나를 뜨겁게 온전히 드리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일 첫 번째 소원도 그리고 마지막 소원도 오직 하나일 뿐이다. 순종...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수많은 이들이 죄를 사함 받고 의인이 되었다. 즉 우리가 빚지고 있는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순종은 우리에게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모든 의를 이루시려 하심이셨다. 또한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에게 나누어 줄 새로운 성품 즉 순종을 마련코자 하셨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권위에 복종하라’ 라는 말만 들으면, 내 마음에 감당치 못할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힘들어 했으며, 권위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곤 했었다. ‘순종하라, 복종하라‘ 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애써 그 말씀을 부인하려 하곤 하였다. 참된 보호의 근원인 하나님의 권위에서 도망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 책 제목 옆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누리는 보호와 자유‘라는 구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권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보호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순종은 영원의 길이며, 안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순종이라는 책을 읽으며 특별히 나 자신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참 나에게 하시려는 말씀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대로 만든 예수님을 섬긴 나 자신, 처음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상황이 불편하고 힘들어지면 불순종 한 나 자신, 100% 순종을 하지 못하고도 자신 있게 그래도 난 순종했다고 드러내었던 내 자신, 특히 즐겨 순종하지 못한 내 자신을 많이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가식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사울의 모습처럼 99%는 순종을 하였을 지라도 조금의 불순종은 순종이 아니라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나에게 필요하거나 쉬운 말씀만 순종하고 지키기 어려운 명령은 무시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진정한 순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