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왜 우리는 지금 ‘관용’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장 칼라스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1762년 5월 9일, 그의 장남이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했다.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판관들은 장 칼라스에게 사형을 선고를 내렸다.
이 책은 광신과 편협함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장 칼라스의 무죄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자 쓴 책이다. 볼테르는 사건의 본질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편협함과 맹신에 있다고 보았다. 생각의 자유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인류와 국가에 큰 이익이 된다는 볼테르의 주장은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으로부터 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냈다.
위그노 학살 연례행사가 예정된 날 가장 먼저 장 칼라스의 처형을 준비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무대’라 칭하며 기대된다는 목소리들을 거리낌없이 내곤 했다. 이를 재판하기 위해 13명의 판사들은 칼라스의 의견을 더 들어보자는 의견과, 사형을 집행하자는 의견으로 나뉘며 서로 분분하게 주장하였다. 만약 정말 칼라스가 살해했다고 가정해본다면, 68세라는 노인의 나이에 혼자 건장한 청년을 살해하기에는 힘들다. 그렇기에 저녁 식사를 같이 했던 아내, 아들 피에르, 라베스와 하녀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톨릭교인 하인이 설령 도와줬다 하더라도 같은 종교로 개종한다는 자의 살해에 도왔을 리가 없다. 그 외에 자식을 사랑하여 다정다감하던 아내, 개종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라베스 등 살해 의혹이 없다는 논리적인 증거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판사들은 이러한 의혹들을 무시한 채, 한 집안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의 판결이 아닌 8대 5의 판결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심지어 더 불합리했던 것은 판사들 중 칼라스를 변호하던 판사와 처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판사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이 둘은 기피판사가 되며 더는 관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실제 법정에서는 처형해야 한다는 측의 판사가 참여하면서 이 사건에서의 모순되고 불합리적인 부분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 모두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고, 칼라스 혼자 처형이 났다. 그 이유는 처형 측 판사들이 결국 이 노인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공범들이 죄를 자백할 것이라고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칼라스는 끝까지 신을 무죄의 증거로 내세웠고, 이러한 모습은 판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남은 가족들을 석방한다면 판사들을 설득했던 한 판사의 예측이 틀렸으며 그들이 무죄임이 결백해지기 때문에 이들 중 아들 피에르 칼라스를 추방하였다. 이 또한 불합리적이었다. 광신도들은 이성이 압도하면 압도할수록 불합리한 변명을 내세우며 더 미쳐가는 걸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