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넘어선 소설적 성취!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은 작가 전성태가 『늑대』 이후 새롭게 펴낸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한국소설이 지닌 풍요로운 서사와 리얼리티를 계승하면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자기갱신을 거듭하며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새얼굴로 자리매김해온 저자의 이번 소설집에는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소녀들은 자라고 오빠들은 즐겁다》, 불법체류 중인 한 외국인노동자의 출국을 돕는 《배웅》, 실향민 노인들이 안고 있는 해묵은 갈등과 화해를 그린 《망향의 집》 등 질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내면을 애잔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정리: 북면사무소에 실향민 노인들이 모였다. 모두 북한이 고향이다 보니 서로 애틋해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하던 일 접고 어루만지며 살아왔다. 면장 이무경, 부면장 김 강숙, 지부장 박 선장, 오 선주, 이 강이, 기 로성 등 이들은 모두 낚시 명태잡이 하다가 만난 동료들이다. 옛날에는 어로 한계선이 오르락내리락해서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월선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고 고기를 잡았다. 어로 한계선이 눈에 띄지 않아서 북한 해역에 들어가게 되고 잡혀갔다. 북한은 어민을 잡아가서 평양, 흥남을 구경시켜주고 명승지 관람과 산업 시설 시찰을 시켜서 체제 선전했다.
정리: 경비원 나씨는 천씨와 함께 화요일을 맞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신문 정리하다가 낯선 종이를 발견하고 펼쳐보니 북한의 로동신문이다. 자기가 관리하는 동에 북한에서 온 새터민이 네 가구 있는데 그중에 간첩이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서울 목동에서 경비 일했던 천 씨는 순진한 나 씨를 보며 공연히 일 만들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나 씨는 로동신문을 챙겨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관리소장에게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내일 광복절이다. 새터민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모습이 친절하다. 낡고 오래된 임대 아파트의 새터민 중에 중학생도 있는데 태극기 돌려주다 우연히 만나 경비실로 불렀다.
정리: 군청 강당 탕비실에서 양 계장이 여직원회에서 선발해서 보낸 영접 요원을 살피고 있다. 하나는 박송이, 하나는 오 양숙이다. 박송이는 부끄럼 많고 소극적인데 오 양숙은 결혼한 지 오 년이나 지난 눈치 빠르고 손놀림이 잰 여자다. 양 계장은 첫눈에 박송이가 마음에 흡족하다. 삼 개월 후에 –대통령 초도 순시-가 있어서 군청이 바싹 긴장한 상황이다. 양 계장은 군청 축산계장으로 27호봉을 받는데 대통령 중차대한 초도순시에 손님 접대를 맞아 불만이다. 편한 걸로 생각하면 한없이 편해서 박송이, 오 양숙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스스로 마음 잡는다. 두 영접 요원에게 자기는 군대 시절 보직 당번병이었고 자신이 받은 보직 특혜는 엄청난 것이었다고 자랑한다. 박송이가 귀담아 들어주고 맞장구치고 웃는다.
정리: 진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동자승으로 절에 들어간 사람이다. 열아홉에 절을 뛰쳐나와 나까마로 살았는데 함께 트럭을 타고 가는 늙은이와 삼십 년을 함께 했다. 처음 보물을 훔치고 감옥 들어갔을 때 노스님이 보석금을 넣어서 풀어 주었다. 그래서 다시는 장물에 손대지 않겠다고 훔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온 터다. 조선 전기에 궁중에 납품하는 그릇이 있는데 백자로서 천, 지, 현, 황 네 개가 한 벌이 모이면 국보로 지정된다. 진 사장은 개장수로 골동품 수집하다가 어느 시골에 조선백자 현을 발견했다. 모 회장이 이 그릇 한 벌을 맞추기 위해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밥그릇을 입수하려고 삼십 년을 함께 한 늙은이와 동행한다.
여자는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매춘부다. 나이가 좀 많고 몸도 비대해서 이리저리 따돌림을 받는다. 억척같이 일해서 어린아이와 도란도란 시간 보내면서 좋은 엄마가 되고자 나름 노력한다. 어린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이 층 창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엠피쓰리를 달아 소리를 녹음한다. 녹음한 소리는 아이에게 친구가 되고 엄마가 일하러 간 밤에 자장가가 되어 준다. 녹음되어 있는 소리 속에서 듣는 엄마 목소리는 항상 곁에 있어 주는 믿음의 소리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지 않는 평안의 소리와 같다. 여자는 새벽,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해드셋을 대신 써보게 된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데 하필 모텔 이름 샹그릴라다. 추하고 볼썽사나운 삶 속에서 샹그릴라는 지워버리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여자는 술을 마시고 기절하고 피를 토한다. 여자는 아이를 위해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아이는 소리를 모았던 노래 나무, 오동나무와 그 나무에 깃든 엄마 새와 아기 새 세 마리에게 작별을 고한다. 엄마가 많이 아파 바다로 떠나니 자라서 날 수 있으면 그곳으로 날아오라며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려준다.
정리: 떠나가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가서 작별하여 보내는 일이 배웅이다. 쏘야는 십 년 동안 한국에 살았다. 주로 주방에서 일했는데 미숙을 만난 것도 식당이다. 미숙은 식당을 경영했지만, 백수가 되었다. 쏘야가 미숙의 식당에서 삼 년 일했을 때 미숙이 잘 해주긴 잘해 준 모양이다. 귀국할 때 미숙에게 전화한 것을 보면 말이다. 미숙도 같이 있을 때 가방을 사서 나누고 입고 있던 옷도 입으라고 주었으니 쏘야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다. 쏘야가 자기보다 열댓 살이나 어린데 배웅하려고 가보니 삼 년 만에 얼굴이 반쪽 된 것을 보고 어루만져주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사장님도 드물 것이다. 미숙은 배웅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심성의껏 해주었다.
-두 번의 자화상-의 의미는 전성태 작가가 처음 작가가 되고 <길>이라는 단편을 썼다. <글>을 쓰면서 스무 해 뒤에도 <길>이라는 제목으로 한편 더 써볼까 한 게 –두 번의 자화상-이다. 스물여섯에 작가의 길어 들었다가 마흔여섯이 된 것이다. 앞으로 스무 해를 더 살면 –세 번의 자화상-을 쓸지도 모른다. 문학은 결코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이 아니고 자신이 가장 가고자 하던 길이라고 했다. 문학도 나이를 먹을지 모르니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단 한편의 길은 없다. 실패로 점철된 문학 인생이라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갈 수 있다면 가는 것이다. 단편 –소풍-은 기억과 치매 전조 증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네 잎 클로버를 끌어들여서 그런지 내용이 조금 동화와 같았다. 그런데 작가가 쓴 후기 –이야기를 돌려 드리다-를 읽고 난 후 진심과 진정을 느꼈다. 소풍보다 더 재미있게 쓴 진성태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가 마음을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