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참이던 시기 알제리로 건너간 저자가 그 시기에 수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식민주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리우며 아프리카의 문학, 철학, 심리학 등 학문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전이다. 흑인과 언어, 유색인 여성과 백인남성, 유색인 남성과...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프란츠 파농이 20대에 쓴 저서로,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히 학술적인 논문이나 이론적인 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글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파농이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어떻게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본질을 파헤쳤는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었다. 그는 단순한 논문적인 서술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과 사례를 통해 그의 주장을 증명한다. 특히,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 출신인 파농은 자신의 혼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인종 문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그가 관찰한 혼종적 정체성의 문제는 이 책의 주요한 축을 이루며, 이론적인 논의 이상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점은, 파농이 다양한 심리학적 이론을 활용해 인종 문제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1. 한국인과 파농-경계에 선 식민지인
한국인에게 프란츠 파농은 어떤 의미일까. 혁명가 파농의 탈식민주의 사상은 일찍이 한국사회에서 수입되어 소개된 바 있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역자가 ‘해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엄혹한 독재군부의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파농의 책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고 현실을 비관하는 많은 독자들이 그 책을 암암리에 읽었다. 그 시절 한국인들은 왜 먼 이방의 저항 지식인 파농에 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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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그늘에서-앙틸레스의 프랑스인
프랑스 식민지 앙틸레스의 흑인 프란츠 파농. 그는 태생부터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뿌리 깊은 문화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식민화에 대한 그의 의식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그저 피지배자의 입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를 둘러싼 것은 식민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이 착종된 이중적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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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흑인의 분열된 언어
식민지의 흑인으로서의 정체를 각성한 파농은 식민지인들이 본국의 문화와 대면하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흑인은 자기분열증을 경험한다. 이를 파농은 식민지 흑인의 언어의 문제에 주목함으로써 탐구한다. 앞서 앙틸레스의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이며, 흑인들은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프랑스인으로 정체화하며 성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차츰 백인의 지배문화와 맞닥뜨렸을 때 식민지 흑인은 자신이 더 이상 프랑스인이 아님을 자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흑인은,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열렬히 백인화되고자 한다. 프랑스어를 쓰는 것, 특히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은 백인의 사회에 편입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흑인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본국을 알고 있는 흑인은 거의 신이다. 이 이야기라면 나의 동향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있어 알려주겠다. 많은 앙티유인들이 본국에서 한참 체재하고 나면 돌아와서 높이 떠받들어 진다.
“모든 의미 있는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마르틴 부버는 말했다(마르틴 부버, 2014). 진정한 만남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신의 은총이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지만, 참 드문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다. 하지만, 이 또한 드문 일이다. 그렇기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큰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작가에게서 나온다. 물론 나쁜 작가라도 교언영색으로 잠시 인기작가가 될 수는 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 한다. 정말 좋은 책을 쓰고 싶다면, 먼저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어떤 책보다 깊은 영향을 남긴다. 삶에서 나오지 않은 책은 삶을 움직이지 못한다. 결국 좋은 책은 작가의 삶의 반영이다. 한 권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 책을 쓴 작가의 삶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판시장이 불황이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PC로도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파편화된 정보가 넘쳐난다. 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지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과 올해는 잇따라 나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이 터졌을 때 내가 봤던 sns와 뉴스 댓글에 달린 사람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건 명백한 아시아인 인종차별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오버부킹이 됐으니 내려야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게 잘못이다.” 라고 말한다. 아예 “한국인이라면 분노했겠지만 중국인이니까 상관없다.” 라는 반응도 있었다. 해외의 반응도 인종차별이다, 그냥 항공사건이다 로 나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미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권 배우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다 라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에 동양계 배우들은 이 사건은 인종차별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더 이상했던 건, 아시아계 배우들이 ‘이 사건은 인종차별이다.’ 라는 내용이 담긴 글에는 온갖 부정적인 반응들이 올라왔지만, 정작 몇몇 서구권 배우들이 같은 내용을 올렸을 때는 그러한 반응들이 아시아계 배우들에 비해 드물었다. 같은 말을 했는데, 물어뜯기는 사람은 정해져있다니. 대단히 모순적이다.
3월에 벌어진 BBC 방송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동영상의 방에서 아이를 황급히 빼오는 여성은 순식간에 nanny, 즉 유모로 불리고 있었다. 저 유모는 이제 큰일 났네. 해고당할 거야. 영어로 적힌 댓글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 많았다.
아마도 서구권에서 아시아인 여성이 유모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저자는 흑인이 백인에게 가지는 열등감과 피해의식등을 언급한다. 백인들이 오랫동안 흑인을 노예로 삼는 등 사회적으로 차별해왔음을 감안해보면 그 피해의식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그리고 파농이 언급했듯이 그렇게 탄압을 받아온 흑인들은 어느새 백인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었고, 제목과 같이 백인광의 결혼이라든가, 부축적을 통해 백인 사회에 몸을 담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책에 드러난 사회문제는 인종차별문제이고, 이는 사회적 차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나는 사회적 차별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을 이 책의 내용에 비추어 해보고자 한다.
이책에선 단지 인종차별문제를 다루지만 이는 사회의 많은 문제를 보여준다. 흑인들이 무시를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인종들이 그들을 낮은 인간으로 취급하기 떄문이다. 이처럼 인간들은 사회구성원에게 계층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사람을 대한다. 중산층이란 계층은 한국사회내에서 어느새 기준을 갖게 되었고, 그런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가정은 중산층이 되고자 노력한다.
지난 근대 제국주의 시기 프랑스로부터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앙티유 지역은 식민 지배국의 언어인 프랑스어가 제국주의의 하나의 표상으로서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란츠 파농은 앙티유 흑인들이 백인이 되고 싶은 욕망,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자 하는 노력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다.
“흑인은 백인이기를 원한다. 백인은 인간조건의 구현에 열중한다....백인에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스스로를 흑인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말이다. 흑인에게도 하나의 사실이 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들 사상사의 풍요로움과 그들 지성사의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를 백인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쓴다는 사실 말이다.... 백인의 문명과 유럽의 문화는 흑인들에게 실존적 일탈을 강제해 왔다.”(서문)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서문에서 파농은 백인은 진화된 종족이며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간주되었고, 흑인은 미개한 상태여서 백인화해야만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암묵적인 인종 차별적 행위들을 고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