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중국의 현대사를 읽을 수 있었던 이 책은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지은이는 공산당 집권 이후 쓰촨성의 첫 외국 유학생이 되어 영국으로 건너가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영국 박사가 되어 현재 런던 대학교에서 동양언어를 가르치고 있는 성공한 여성이지만, 증조할머니의 얘기로 시작하는 첫부분에서는 전혀 그런 상황을 생각할 수 없게 비참하다.
그러나 세여인 모두 항상 용기 있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재미를 위해 지어낸 얘기처럼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여성 3대의 삶 속에는 중국 현대사의 거대한 격랑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군벌 장군의 첩으로 살아간 증조할머니, 골수 공산당원 이었지만 끝내 동지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된 어머니, 그리고 소녀 홍위병이었던 지은이까지, 어떤 역사속 얘기들 보다 역사적이다.
누구보다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중국의 여성들 얘기지만 책 전반적으로 흐르는 중국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과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륙의 딸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 인가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책을 찾다 보니 동일한 저자의 대륙의 딸들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아! 훌륭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도입부를 조금 읽고 나니 곧 이 책은 위대한 여성을 치하하기 위한 위인전도 아니요, 소설책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이건 간에 현재의 삶 속에 치열하게 겪어낸 시련의 역사와 국민들이 없는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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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군벌정부 시대에 태어난 저자의 외할머니인 ‘위팡’은 260년 넘게 중국을 통치해 온청제국이 비틀거리고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영토를 빼앗고,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주도권을 잡은 시절에 태어나 아버지의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군벌정부 장군의 첩으로 보내졌다. 결혼이 개인간의 감정의 문제가 아닌 거래가 되는 순간이었다. 미모의 딸을 권력가에게 시집 보내 한 밑천을 마련하여 집안을 살리고자 했던 모습과 권력이 있는 자가 수많은 첩을 두는 것을 당연시 했다는 부분에서 과거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 왕이나 세도가의 사돈이 되고자 했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의식이나 문화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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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진 운동과 더불어 중국을 오랜 기간 동안 어둠으로 몰아 넣은 ‘문화혁명’이 1966년시작 된다. 이 운동은 마오쩌둥을 거의 신격화 시키는 구호를 내걸고 중국 전체를 혼란으로 빠트린 운동으로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이 아닐까 한다. 이 운동은 마오쩌둥에게 잘보이기 위한 권력투쟁에 빠지게 한 재앙이었다. 문화혁명과 국민들의 마녀사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당의 이념을 충실하게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지고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으며 공산당에 대한 신념을 위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저자는 저자의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저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중국의 근 현대사와 접목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 안에는 흑백사진이나마 저자의 가족사진을 비롯해 당시 중국내 정치상황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보았던 사진 속 저자의 외할머니는 정말 저자가 언급한 대로 현대 기준으로 보더라도 참 미인이었다. 중국전통의 막바지이지 왕조 몰락의 시기,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기 위해 고통스러운 전족을 당하며 성장한 그녀는 수지행 장군의 첩이 되었다. 첩이 되는 과정만 보더라도 그녀의 아버지 (저자의 외증조부)가 얼마나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자기 딸을 장군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했는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딸을 이용하는 그 치밀함이 기가 막히다 못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이 전족으로 인해 평생에 걸쳐 얼마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책 전반에 걸쳐 군데군데 언급되어 있다. 책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전족을 한 여자들은 발을 묶은 천을 풀면 기형적인 발형태가 되면서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