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14가지 인문학 주제ㅡ해석학, 문헌학, 역사학, 철학, 자연과학, 역학, 생태학, 페미니즘, 예술, 죽음, 경제학, 종교적 테러리즘, 음식문화... '불통하는 기독교'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기독교'를 모색한다. ▶ 이 책은 2008년에 출간된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한들출판사)의 개정판입니다.
이 책에서는 경제와 관련하여 효율, 평등, 생명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효율은 속도의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인류는 현재 네 번째 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한다. 첫 번째 혁명인 농업혁명으로 시작하여 산업혁명, 정보혁명 그리고 네 번째 혁명으로 ‘속도 혁명’이다. 거리의 정복을 넘어서 시간의 정복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법률의 규제를 넘어 매우 빠르게 발전한다. 하지만 기업에게 윤리적 잣대를 심판하는 법은 항상 뒤처진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체제와 유사하다. 우리는 무한경쟁적 신자유주의인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대신 탈취에 의한 축적을 통하여 세계의 부를 불평등하게 재분배함으로써 이전의 상위 계층의 경제적 특권을 회복해주거나 신흥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서양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더해진 것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 기독교로 대표된다. 헬레니즘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외 알렉산더대왕이 있다. 서양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논리는 대부분 헬레니즘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윤리와 실천, 행동 등은 보통 헤브라이즘에서 기인한다. 보통 사람들은 서양인이 성에 대해 개방적인 인식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엔 ‘기독교’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서양인들은 기독교가 아닌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인해 오랫동안 육체적인 성을 터부시하고 경시했다고 한다
교양필수라는 이유로 억지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게 된 나는 교수님의 수업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가, 외가 쪽 전부다가 절실한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출신인 우리 가족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매주 교회에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강제가 되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로 교회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듣게 되면서 교수님의 수업내용이 너무나도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어서 집중하면서 듣게 되었다.
종교, 젠더, 그리고 성이라는 단원을 선택한 이유는 호기심이 큰 이유가 되었다. 과거 고대인들의 성에 대한 역사 및 교수님의 질문이 창피하지만 호기심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거의 기독교에선 성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종교, 젠더, 그리고 성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책을 읽어보았다. 서양 문화는 철학, 사상, 논리를 중요시 하는 헬레니즘(그리스)과 윤리, 실천, 행동을 중요시하는 헤브라이즘(히브리)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양인은 성에 대해 이중적 자세를 지녔다. 특히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의 영향으로 육체적인 성을 경멸시 했다. 또한 이원론에 의해 여자와 남자를 구분했는데 남자는 인간이며, 이성을 갖고 있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여겼으며, 그 반면에 여자는 자연을 상징하고 감정과 육체를 나타내며, 물질적인 존재라고 여겨 경멸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속도혁명’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부분이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데 네 가지 혁명을 겪고 있다. 첫 번째는 쟁기로 이루어진 1만 년 전의 ‘농업혁명’이다. 두 번째 혁명은 기차와 조립라인으로 이루어진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한 1600년대 말부터의 ‘산업혁명’이다. 세 번째는 컴퓨터로 이루어진 현대 지식산업의 ‘정보혁명’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혁명이 바로 ‘속도혁명’이다. 속도혁명은 거리의 정복을 넘어선 시간의 정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혁명이다. 종교의 속도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지옥 또는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천국을 원하는 이유는 지금이 괴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도 비슷하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아서 종교를 원하는 것이고 만약 지금 행복하다면 모든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기독교는 현 세상을 행복하지 않은 세상으로 본다는 것을 수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이 세상을 고해 즉 고통의 바다라고 부른다. 우리가 대학을 가는 이유도 결론적으론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선택적인 노동을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구원’이란 나쁜 것,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해왔는데 이러한 강제적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갖게 된 것이다. 이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신이였다. 즉 기독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저자 손호현은 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 총 14가지 인문학 주제를 빌리고 있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책의 흐름을 따라 각 주제별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내가 느낀 점 또는 창조적 대안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1장. 예수를 찾아 떠나는 해석학 여행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예수는 항상 해석된 존재이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뿐만 아니라 세계를 탄생시킨다. 우리는 흔히 예수 생각하는 예수의 모습은 긴 금발에 깊은 눈을 가진 온화하면서도 신비한 서양남자의 얼굴이다. 하지만 실제 예수는 인종적으로 백인이 아니다. 오히려 중동 또는 혹은 팔레스타인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앙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를 찾아 떠나는 해석학의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기독교 문화에 다다르게 된다. 기독교와 문화는 마치 오래된 연인들의 사랑싸움과도 같았다.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다음의 다섯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는 기독교와 문화가 항상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견해이다. 둘째, 문화의 그리스도는 기독교와 문화를 연속성 혹은 완성의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셋째,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는 앞의 두 견해를 중재하면서 연속성과 불연속성 둘 다를 동시에 강조하려고 한다. 넷째, 역설적인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와 문화는 기독교와 문화 둘 다를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권위로서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는 문화를 타락한 인간 본성의 결과라고 부정적으로 본다.
예수를 찾아 떠나는 해석학의 여행을 통해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해석학에 관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호들뿐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인간의 해석에 의해 탄성되어진 것들이다. 마치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기독교도 하늘에서 세계 속으로 뚝 떨어진 어떤 하나의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