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 간디를 만나다!
신격화된 간디를 벗어나 인간의 얼굴을 한 간디를 만나는, 『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새로운 관점에서 풍부한 해설과 정확한 번역으로 다시 읽는 저자의 자서전이다. 다른 번역서가 오역한 부분, 생략한 부분 등을 수정하거나 보충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자서전을 저술한 후부터 세상을 떠날 때가지 28년간의 이야기도 담아냈다.
저자는 인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성인으로 우러러보며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그러한 성인으로서의 '간디'가 아니라 끝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간디'와 만날 수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대로 들어있어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지금은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비폭력, 무소유가 아닌, 폭력과 소유가 인정받는 21세기다. 하지만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안락함과 평안함만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자의 비폭력과 무소유의 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따라 세상은 희망으로 채워지게 될 것임을, 저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양장본.
간디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깊은 사색을 이어가는 인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책 제목에 명시된 자서전을 접해보면, 정말로 그가 모든 순간에 흔들림 없이 위대한 사람으로만 살았던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언뜻 보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록들을 살펴보면 사람의 한계와 고민이 함께 드러난다. 특별히 이 자서전은 저자가 직접 남긴 이야기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번역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고 하는데, 추가로 보충된 부분이 제법 많다고 한다. 그런 덕분에 본서에서 그의 삶을 훨씬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비폭력과 무소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과정과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가 왜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는지 하나씩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가 말한 내용이 지금 시대와 얼마나 다른지, 혹은 그가 말한 가치가 얼마나 엄중한 울림을 주는지 곱씹게 된다.
책에 담긴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디가 젊을 때부터 늘 성인처럼 의연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내게, 그 시절의 에피소드는 꽤 많은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학생 시절에 보였던 어리숙함과 가족에게 느꼈던 갈등이 그의 입을 통해 솔직하게 전해진다. 친구들과의 사소한 다툼, 부모님과의 충돌, 그리고 무언가를 몰래 시도해보고 싶어 했던 마음까지. 흔히 떠올리는 숭고한 이미지는 그저 결과물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젊은 날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간적인 공감을 이끈다. 그리하여 평화와 진리를 주창했던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흔들림이 있었는지 직접 확인하게 된다.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다. 인도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간디는 1869 년 10월 2일 영국령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 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신념 때문에 부모님과 자 주 다퉜다. 특히 어머니와는 심한 갈등을 겪었다. 열다섯 살 때 런던 유학길에 오른 간디는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상사 밑에서 일하면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
간디라는 사람의 말은 많이 들었고 간디 하면 평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정작 정확히는 알고 있는 게 없어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고 또한 간디 자서전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디. 그가 칭송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그가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뛰어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위대한 투쟁은 남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인들도 흑인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간디는 그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고 인종차별 폐지운동을 벌였다. 그 와중에 백인들의 미움을 산 그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는 항상 그들을 용서했고 투쟁 또한 비폭력적으로 실행했다. 그가 이렇게 투쟁하는데 있어서 그를 뒷받침했던 사상은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과 그의 종교였던 힌두교였다. 그는 시민의 권리로서 항의하고 힌두교의 교리대로 불살생, 비폭력을 실천했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운 비폭력 저항 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이다.
1893년 어느 추운 결울 밤,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행 열차가 막 마리츠버그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일등 객차에 들어선 백인 한 사람이 그곳에 앉아 있었던 젊은 인도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객차 밖으로 나가 버린다. 얼마 뒤 그 백인은 역무원을 데리고 다시 나타난다. 역무원은 젊은 인도 사람에게 “자네는 일등 객차에서 나가야 하네. 여행하려면 화물차를 이용하던지.”라고 쏘아붙인다. 영문도 모른 채 인도 사람은 조용히 “나는 일등 객차 표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무원은 “차표를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니야. 자네는 화물차로 가야 한다는 거야.”라고 대꾸한다. 젊은 인도 사람인 계속 버티자 역무원은 경관을 불렀고, 경관은 인도 사람을 객차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린다. 차가운 겨울 밤 낯선 이국땅의 플랫폼에 혼자 남아 치욕의 눈물을 흘리던 젊은이가 바로 인도 건국의 아버지, 모한다스 간디였다.
이 책은 두꺼워서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도서관 대출담당 직원이 알아서 대출기간을 일주일 늘려줄 만큼 다 읽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사실 아이들 방학 막바지와 개학 기간이 겹쳐서 질금질금 읽은 탓도 있다.
‘간디 자서전’은 독서 목록을 정해두고 읽지 않았다면, 접할 수 없었을 만큼 내 사전에는 그리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아니었다. 내가 ‘인도’와 그 나라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없던 까닭이다. 세계적인 고전을 읽으면서 작가와 작가가 몸담은 나라와 시대에 한참 빠져 있다 보면 간접적 세계여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몸의 근육과 오감으로 느끼는 것에 비하면 실감의 정도가 못 미치지만, 상상의 축지법을 이용하다 보면 밀도 높게 일정에 쫒기지 않으며 여유롭게 그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단편적으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인도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알려진 ‘간디’를 따라 내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인도’를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더구나 ‘간디’하면 떠오르는 ‘깡마른 몸에 얇은 흰 거죽 한 장 걸치고 앉아있는 노인’이라는 단편적 고정 관념을 깨고 의외의 다른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앞서기도 했다. 앞서 간디가 어려서부터 마음에 새긴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교훈시 한 수를 천천히 읊고 시작해 보자.
“물 한 잔을 훌륭한 식사로 갚고
정다운 인사를 열렬한 절로 갚고
동전 한 닢을 황금으로 갚고
목숨을 건져주면 목숨을 아끼지 마라.
모든 말과 행동을 그렇게 존중하고
아무리 작은 봉사도 열 배로 갚으라.
그러나 참된 성자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알아
악을 선으로 즐겁게 갚는다.”
[작가 생애 정리]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Gandhi, Mohandas Karamchand](1869~1948)는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이다. 간디 집안은 상인 계급에 속했지만, 간디의 증조부부터는 지역의 유지로서 지방 왕국의 수상으로 활동했다.
인도는 경제적으로는 발전이 더딘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문화적 종교적 사상적 철학적으로 풍부한 영혼이 있는 국가다.
인도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세계에 보여준 자존심이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다.
간디는 성인의 반열에 있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간디자서전을 읽으면서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인도라는 나라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 많았다. 과연 간디를 성인의 반열로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도인들은 B.C 2000년부터 600년의 베다시대부터 아리아인이 중앙아시아를 떠나 서북인도지역에 이주하면서 원주민의 인더스문명을 대신하여 탄생하면서 선주민의 사상과 풍습이 융화되면서 다양한 종교와 신화 그리고 철학을 배태했다.
베다 중심의 브라흐마니즘을 세속적인 형태의 힌두이즘으로 발전시키면서 우주창조주로서 브라흐만과 우주를 유지 관장하는 비슈누신 그리고 우주의 파괴자인 쉬바신의 삼신일체신앙이 정립되어 오늘날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다.
간디는 자서전에서 힌두교인으로 힌두교의 신앙과 규율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베다 시대 이래 힌두교에서는 인생을 100년으로 간주하여 인생의 시기를 4단계로 나누었다. 첮 25년까지는 스승밑에서 베다와 삶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기로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필수적인 기간이다. 브라마차리아라고 하는 이 기간은 재물을 의미하는 아르타, 성적욕구를 포함한 욕망을 뜻하는 카마를 극복하는 기간이다. 간디도 브라마차리아를 선언하고 금욕적인 삶을 위해 채식주의를 고수한다.
다음 25년 단계는 가정생활기로 사회인으로서 삶을 직접 실천해 옮기는 시기다. 사회인으로서 의무를 완수하고 나면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목적인 자유를 위하여 모든 사회적 문화적 짐을 벗어 던지고 모크샤를 향하여 깨달음이라는 최종의 목표를 향하여 은둔하는 시기이다.
불살생을 뜻하는 아힘사. 간디가 추구한 주요 사상은 아힘사(ahimsa)이다.
평생 비폭력과 불살생을 추구하였다. 왜냐하면 아힘사엔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디가 아힘사(비폭력)를 주장하고 실천하기 까지 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미국의 시민운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예스 그리스도 등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 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유럽에서 받은 교육과 진리의 실험을 통해서 생각의 변화가 실천으로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이에 자신의 경험이 더해져 더욱 구체화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이 도둑질한 잘못을 아버지는 꾸지람보다 비폭력과 용서로 대해준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정신은 단순히 인도 영토 내의 지정학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차별로 시작된 간디의 정신은 역으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비폭력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간디가 했던 대영제국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흡사했다.
이 책은 진리의 실험을 기록한 글이다. 진리의 길은 고행이다.
간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행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간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완벽한 존재가 아닌 인간은 일상을 겪으며 수정하고 보완하며 앞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간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동그란 안경, 누더기 옷, 박박 밀은 머리, 작은 키의 온화한 미소. 작고 고요하지만 강한 인상이다. 그런 간디는 더욱 민중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부패 역시 인도인들을 고통 받게 하는 요인이었다. 관리들이 얼마나 강압적이고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으면, 관리들에 대한 공포를 씻겨주고 싶어 했을까.
자신의 직업이었던 변호사를 대표해서 지식인의 허세와 가식을 혐오했다. “변호사란 지성이 범죄를 가려 줄 정도로 타락함”에 분노했다.
수많은 인도인들이 가난과 기근에 고통 받고 있을 때, 자선가들이 일자리 대신 동냥만 주는 것을 비난하였다. 동냥은 일시적인 굶주림만 면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간디가 추구하는 가난구제 방식은 자활이었다.
간디의 삶을 나열하면,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있던 시절, 숫기 없던 변호사 초년생 시절부터 제국주의에 맞서 인도 독립을 이끈 지도자, 민족과 종교 화합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 등 여러 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관통하는 간디의 사상은 하나이다.
비폭력, 무저항 정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수행을 거듭한다. 내면의 평화가 외적인 평화를 이끈다고 본 것일까.
양심에서 시작된 수행은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까지 뻗게 되었다.
간디의 정신인 비폭력, 무저항 정신을 지탱했던 것은 정의와 양심이었다. 심지어 “비겁과 폭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폭력을 선택 하겠다”라고 까지 했다.
비폭력 정신의 대명사였던 간디가 폭력이란 극단적인 비유를 든 것은 비겁함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차별을 묵인하는 비겁함은 차별대우를 정당하게 하는 출발이었다. 나 하나쯤 하며 회피하는 자세가 부당한 대우, 신분 제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이 책 <간디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는 ‘성인 간디’에서 바라보고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로만 되어 있는 여타 책들과 달랐다.
‘인간 간디’의 모습에서 고뇌와 성찰, 실수를 통해 성인으로 가는 길을 묘사했다. 간디의 인간적인 특성을 잡아내 일대기에 녹여냄으로써 공감을 이끌었다.
자신의 철학을 지속시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인간적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겐 매우 엄격했다. 진리 탐구를 삶의 방향으로 삼았다. 한번 시작한 것은 스스로 그 참된 가치를 찾으며, 도덕적이지 않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절대 버리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찾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신념. 도덕적 가치가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해로운 것이 아니다.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외부 영향에 의한 것일 뿐, 스스로 내동댕이치지 않는 한 내 안에서 실험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타인의 손에 맡겨선 안 된다고 했다. 그건 “진리를 흐리게 하는 일”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