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칼날 위의 역사』는 역사학자인 저자 이덕일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인사 등 사회 각 분야별 현안에 대해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노비와 비정규직, 광해군과 불통, 왕의 시간과 대통령의 시간, 군적수포제와 담뱃값...
처음 책을 집어 들고 이 책의 제목‘칼날 위의 역사’을 봤을 때는 이순신장군의 칼이 눈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나에게 소름이 돋도록 만드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칼날 위에 올라선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그 형상이 얼마나 위태롭고 아슬아슬할지 바로 짐작이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든 기록 하나하나가, 다음세대인 후세대에게는 또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정말 아슬아슬한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500년, 고려와 조선이 망국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다. 두 국가가 결국 내·외부적 원인으로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무려 500년이라는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체계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보유한 고도화된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사라졌다. 이처럼 망국을 위해서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분열의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고려와 조선은 외적인 원인으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원인으로 자멸했다는 점이다. 고려는 신하들의 혁명으로 사라졌으며, 조선은 신하들이 나라를 스스로 팔아먹었다. 고려와 조선은 본인과 같은 한반도에 살고, 같은 피가 섞여있으며, 같은 민족의 누군가가 원했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이 가진 망국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역사의 모습이 현재 한반도가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갈등과 분열로 인한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아직 대한민국은 500년의 역사를 맞이하지 않았다.
100여 년 전에 망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는 어떤 효용이 있을까? 사람들은 생각한다. 조선은 조선이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다. 서로 별개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서로 상관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를 두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조선에 살았던 사람과 대한민국이 사는 사람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수백 년 전 조선에서도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후손인 우리들은 망한 나라의 조선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스스로 조선과 동급으로 취급당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가 그리 잘난 것도 없으며,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조선의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좋은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고 나쁜 것은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