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디트리히 본회퍼 서거 70주년을 맞아 본회퍼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이들, 몇몇 저작을 제외하고는 난해하여 섣불리 접근하기 힘들었던 책들을 읽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 현실과 가치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이들, 모호함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지금 벌어지는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늘 높이 날려버릴 힘이 바로 여기에 있어.” 라는 문장이다. 당시 독일 히틀러와 나치가 점차 지지세력을 넓혀가고 1934년 히틀러는 총통의 자리에 올라 총리와 대통령의 권한을 차지했던 시기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나라가 되었고 국민들의 자유 또한 빼앗아 가고 있었다. 본회퍼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교회 일치 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본인 또한 해본 적이 있다.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인식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은밀하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서문
디트리히 본회퍼는 39세에 죽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 저술가가 되었다.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작전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고 결국 종전을 2주 남겨두고 처형되었다. 체포되기 불과 2개월 전에 약혼했다는 사실까지 알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살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으나 그는 자발적으로 그 모두를 포기했다. 그는 20세기의 순교자 10인에 뽑혔고 이를 기리는 차원에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서쪽 출입구에 그의 석상이 세워졌다. 「나를 따르라」에서 절정에 이르는 그의 전반기 신학은 평화주의 윤리의 여러 특성을 담고 있다.
‘화평케 하는자’p9-10참고
어떤 이들은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작전에 가담한 것은 과도한 열정에 사로잡혀 이전의 삶과 사상을 저버린 매우 유감스러운 행동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평화주의자 본회퍼와 암살자 본회퍼 사이의 긴장은 본회퍼를 이해한 상이한 방식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이 책의 목적은 본회퍼의 신학과 행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설명하고 그의 삶과 윤리학을 개관하는 데 있다. 평화주의자 혹은 폭력의 보증인이라는 극단적 시각은 둘 다 옳지 않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봄으로써 우린 그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도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비판적인 깨달음을 몸소 구현하려 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01. 본회퍼의 ‘평화주의자’윤리
본회퍼의 상황
루터의 신학은 방대하고 복잡하지만 3가지가 중요하다.
창조질서
루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 사회에 특정한 ‘질서’ 혹은 구조를 만드셨다. 교회, 국가, 가정, 노동이 이에 해당한다. 이 질서들은 인류가 평화롭게 살도록 돕는다. 각각의 질서는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고 보증하시기에 그중 무엇이 더 나은 층위에 있다거나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제든, 군주든, 아버지든, 노동자든 간에 한 사람의 책임과 소명은 자신의 신분에 요구되는 질서에 얼마나 충실한지에 달려 있다. 어떻게 사는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따르고 지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20세기 그리스도교에서 로마 가톨릭, 개신교, 동방 그리스도교를 가리지 않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을 뽑자면 누구일까?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명단에 디트리히 본회퍼가 빠질 수가 없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극적인 생애는 교단을 가리고 무수한 이들의 찬탄을 받아왔다. 앎과 삶의 일치, 신앙과 신학의 일치를 외치긴 하되 그만큼 삶과 성숙한 신앙을 보이지 못한 신학자들 및 신학생들에게 그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이자, 전범이기도 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회퍼는 동일한 방식으로 찬탄 받는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찬탄을 받는 인물이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과 행동의 전형을 본회퍼에게서 발견한다. 평화주의자와 암살자라는 말은 서로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본회퍼라는 인물에게서 이 모습은 모두 발견된다. 그는 시종일관 전쟁에 반대했지만, 전쟁이 발생하자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암살에 결연히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