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연구를 시작하는 데에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마치 우리가 복음서들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작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네 권의 책을 복음서(복음)이라 부른다.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들에 붙여진 복음(Gospel)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네 권의 책에 붙여진 이러한 제목은 정확한가? 그것들은 충분히 동질적이므로 꼭 같이 분류할 것인가? 아니면 각 복음서를 특징짓는 어떤 특성들이 있는가? 이 책들에 관하여 다른 제목을 붙이는 것은 가능한가?
“복음서는 어떠한 종류의 책인가?”라는 장에서 에반스(Evans)는 우리의 질문에 대하여 재미있게 대답한다. 그는 우리에게 2세기의 알렉산드라 도서관에 마가복음서 한 권이 기증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분류될 것인지 상상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1) 도서관 직원은 표면상 예수의 생애를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을 아마도 “위인들의 생애”라는 표제 아래 포함 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기”라는 용어가 복음서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적합한가는 의문이다. 확실히, 만일 우리가 그 용어에 대하여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부적당한 것이 될 것이다. 첫째로,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조상, 문화, 환경 등에 관한 정보를 모으지 않았다. 둘째로, 복음서 기자들은 20세기 예스의 인격성 연구에서 중요하게 대두된바 그의 정신적, 심리적 발전을 탐구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 도서관 직원이 취할 수 있는 두 번째 가능성은 그 복음서를 “행적(Acts)이라는 표제 아래 위치시키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한 변방에 살았던 예수가 ”행적“에 기록되기에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인물로 생각될 것이다. 그 단어는 위대한 운동과 업적을 의미하지만, 예수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운동(movement)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