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저자는 은근하게 계속되어 끝내 내면화된 차별과 구별짓기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들을 남기는지 파고 든다.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네 피해의식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유나이티드
25-26쪽.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항상 고투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필경사로서 남들보다 다섯 배로 열심히 일해도 손과 팔이 차례로 녹아 없어지는 꼴을 목격했다. 밤이면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나 새벽의 여명이 눈을 찌를 때까지 스스로를 질책하기 일쑤였다. 평생 조건부 사랑과 나를 하찮은 보푸라기처럼 교체 가능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에 시달린 덕분에 내 자신감은 피폐해졌다.
26쪽. 대중의 머릿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호한 연옥 상태에 놓인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흑인에게는 불신당하고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 일에 이용당한다. 우리는 서비스 분야의 일개미이며 기업계의 기관원이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에 적절한 “얼굴”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숫자를 처리하며 기업의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기름이나 치는 중간 관리자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콘텐츠를 문제 삼는다. 저들은 우리가 내적 자원이 없다고 여긴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역부족이라는 기분에 함몰된 내 상태를 감추기 위해 물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저으며 언제나 과잉 보상을 한다.
<중 략>
85쪽. 내가 쓰는 "소수적 감정"이라는 표현은 문화이론가 시앤 나이에게 깊이 빚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긱 경제'의 증상인 못난 감정(ugly feelings)ㅡ부러움, 짜증, 지루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ㅡ이라는 정서적 속성에 관해 폭넓게 저술했다. 못난 감정과 마찬가지로 소수적 감정 역시 "놀라운 지속력"을 지닌 카타르시스가 없는 감정 상태"이다.
나의 경우엔 인종화된 현실을 부정하는 미국식 긍정성을 강요당해 인지 부조화를 겪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나는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실패자로 느껴지는데 “아시아계 미국인은 성취가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낙관은 텅 빈 허상일 뿐인 기대치를 높여 외려 불만을 부풀린다. 201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공정한 실력주의 사회라는 관념은 저소득층 흑인 및 갈색인 6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 회의와 행동 장애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어느 교사가 말한 대로 “아이들이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때문이었다.
1. 들어가며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 캐시 박 홍의 책이다. 작가의 부모님은 미국 이민금지법이 해제된 직후에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작가는 1976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미국 태생이긴 하지만 8살이 될 때까지 집에서는 한국어만 썼다고 하니 이중언어문화 속에서 자랐다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미국사회의 인종적 다양성, 모순, 차별의 문제를 다룬다. 동시에 아시아인이면서 여성, 영어에 이방인인 창작자로서 작가는 인종적, 젠더적, 민족적 차이가 중첩된 내부자이면서 타자의 정체성으로 주류 미국사회가 포착하지 못한 미세한 인종주의적 문화를 꼬집는다.
2. 소수인종의 사소한 감정과 거대한 억압의 역사
이 책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소외된 삶이라는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감정’이라는 마이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