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박노식 교수의 신작이다. 그간 사학계에서 금기시해온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형성 과정과 그 기원을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은 '경쟁과 생존은 한국인의 전투적인...
이 책의 저자인 박노자는 “전통사회에서 유교적인 규범이 사회와 개인의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한 것처럼 근대 사회가 후기적 위기의 시기에 접어든 1990년대부터 경쟁과 생존은 한국인의 전투적 생활양식의 키워드가 됐다.” 라고 말한다. 내가 이 대학에 들어온 2000년도에 이런 전투적 생활양식은 성균관대학의 학풍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00년도의 대학본부 점거와 이 사태를 계기로 한 운동권의 몰락.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한 힘을 지닌 재단의 밑에서 학교는 점차 그들의 논리에 따라 잠식되어 갔다. 삼품제라는 제도를 도입,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간을 잘 포장해서 졸업시키고 때맞춰 나타난 반운동권 학생회는 정치와의 단절을 모토로 학내복지에 주력하여 오직 우승할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조성해 주었다. 앞에서 예로든 것들은 비단 우리학교만의 일은 아닐 것 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인류의 역사에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도입된 이후 경쟁이라는 말은 아주 당연시 사용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쟁자가 된 개인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고자 경쟁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경쟁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인 서구와 달리 비서구지역에서 경쟁이라는 현상은 결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서구와 분리되어 그들과는 이질적인 문명권을 구축하고 있던 아시아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확장과정을 통해 아시아세계는 서구사회의 사회적 시간에 편입되었으며 그것은 경쟁이라는 현상을 강제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이라는 현상과 대치한 상태에서 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은 유지되었으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여러 겹으로 무장한 각종 담론들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그러한 담론들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들을 던져주었다.
현재 사회진화론과 실력 양성파들의 역사적인 평가는 좋지 않다. 왜냐하면 결국 그것이 제국주의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고 일본 식민정책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도의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의 유입과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당시 상황이 그들에게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시대적 절박성이 작용했다. 사회 진화론이 유입된 시기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들이 서세 동점을 한 시기이다. 열강들의 아시아 침략은 아시아인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풍전등화 같은 국가의 운명 속에 침략을 피해갈 방책마련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국제정치는 사실상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이 그대로 작용한 사회였다. 현실에서 사회진화론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는데 칸트적 평화주의자가 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도미 유학생, 개화파 지식인등을 중심으로 사회진화론이 유입되고 난세에서의 해결방법도 사회 진화론적 현실주의였다.
2002년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박노자를 처음 접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검은 눈의 우리가 볼 수 없는 현실이 푸른 눈의 이방인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노자는 그 이후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나를 배반한 역사 등의 저서를 통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서구중심주의 등 한국사회의 여러 병폐들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의 작업에는 폭로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특히 박노자가 나를 배반한 역사에서 보여준 작업은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에 함몰되어 간과하기 쉬운 역사적 상황들을 파헤쳐 그 이후의 상황과 일정한 연관성을 찾는 작업은 어쩌면 이미 우승열패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노자는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현재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경쟁의 기원을 탐구하며 그의 고고학적 작업을 이어간다.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는 크게 1부 우리는 모두 노예다와 2부 생존을 위한 파괴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경쟁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력 양성은 이상적인 수사 내지는 현실 사회의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멀리 갈 것 없이 상위 대학 진학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교육열이나, ‘자유경쟁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한·미 FTA의 목적만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감안한다면 이는 다소 의외의 현상이라 보인다. 이런 종류의 경쟁 관념들은 공통적으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한 다른 것들의 도태와 함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힘에 대한 강한 동경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들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가까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박노자는 이러한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힘겨루기’ 하는 삶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쟁에서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