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개인주의자 선언』은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이 진단한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내가 너무 별난 걸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현대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풍토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책입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솔직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보내는 이 책은 때로는 숨기고 싶은 본성의 단점을 잘 집어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변화를 위한 방향 등 세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저자는 학벌, 직장, 직위, 주거, 소득 등 한국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모든 가치관들이 개인의 행복을 앗아가는 굴레가 된다고 지적합니다.
처음 접했을 때 제목이 주는 느낌이 꽤 강렬해서 조금 당황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이 주로 이기적인 태도나 무관심한 태도로 오해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현직 판사로 일하며 겪은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이 용어를 풀어내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회에 만연한 집단주의적 시선 안에서 여러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작가의 진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특히 가족과 국가, 조직이라는 틀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묶어놓는지 구체적인 예시들이 담겨 있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책에서 나오는 사례들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가가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흔히 말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다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변을 존중하면서도 스스로의 영역을 제대로 지키자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이것을 무책임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며, 오히려 개인주의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길이라는 취지를 펼쳐놓는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집단의 규범이나 가치에 복종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조화인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뜻 같다. 예전에 나도 가족이나 학교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는데, 그때 느꼈던 답답함이 문득 떠올랐다.
작가는 법정에서 경험한 실제 사건들을 예로 들며, 집단의 분위기 속에서 억눌린 개인의 모습이 어떻게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가정 폭력이나 성범죄 사례 등에서 피해자가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상황을 애써 외면했던 부분이 얼마나 큰 비극으로 번지는지 설명한다. 그 광경은 생각보다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모두가 ‘가족이니까’ 혹은 ‘체면이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침묵하다 결국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를 흔히 들어봤다. 작가는 그것이 어쩌면 집단주의가 보여주는 어두운 단면이자, 결국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를 단순히 찬양하기만 하는 책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한국의 집단주의를 정말로 혐오한다. 남들이 따라하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민족이다. 사회 곳곳에서 불합리한 일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지만 ‘니만 당하냐, 나도 했다’ 이런 논리로 다 무마되고 있다. 지나친 개인주의도 좋지는 않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합리적 개인주의에 대하여 언급했다. 합리적 개인주의란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냥 나만 괜찮으면 돼라는 생각은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판사 출신인데 관료주의의 비판할 점도 언급을 했다.
조직에 순응하라, 까라면 까라는 논리를 싫어한 것인데 나도 경험을 해봐서 정말 싫어한다. 자신의 의지는 묵살 당하고 조직에 희생당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돈만 벌면 끝이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 개인주의를 외치기는 어렵다. 한국사회는 집단주의의 성격이 당하다. 눈치도 봐야되고, 체면도 세워야되고, 뒷담화도 해야되고, 관료주의와 조폭식 의리 등등 따져야 할게 많고, 적당히 센스있게 행동해야 하며 튀면 안된다. 이런 조직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몰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자신을 개인주의자라고 선언 및 주장하는 작가 문유석은 사회 전반에 깔린 집단주의, 조직문화, 이기주의 등의 굴레에서 탈피하여 탈공동체적 개인의 영역을 누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이 책은 총 3챕터로 분류되어 있는데, 먼저 1부에서는 군대 문화, 유교 사상 등이 뿌리 내린 사회의 말로를 본인의 의견과 함께 첨언 하고 있으며, 2부는 법조인인 그가 법정에서 겪은 솔직한 경험담과 함께 언어의 온도, 선진 시민의식의 가치 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본인의 행복을 위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 개인주의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신념과 더불어 작가의 사회 비판적 분석이 서술되어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 문유석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 의 문화 때문에 개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공동체 의식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되는 희생양으로서의 역할 수행 및 과도한 책임의식 탓에 많은 현대인들이 불행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다. 즉, 자기 행복의 기준 을 명확히 하고, 각자 원하는 만큼만 이기주의자가 되자는 것이다.
내가 프롤로그에서 무려 '인간 혐오'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고백한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과 억압이다. 이에 관한 선명한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반장인 내게 뭉둥이를 주며 자습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그걸로 때리라고 하셨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교사의 체벌권을 위임한 것이다. 난감했다. 나는 결국 급우들을 때리지 못했고 담임으로부터 무능한 놈이라는 질타를 받아야 했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이든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 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우리가 서구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개인들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다. 우리 사회 존립의 근거인 가장 근본적인 사회계약, 즉 우리 헌법 질서의 근간이 그렇다.
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작가는 개인주의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작가가 본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설명하는 문장들을 보면서 나와 공통된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처럼 인간 혐오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회조직에 속하여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단체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거나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나 역시도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기분과 상황은 미뤄두고 단체생활을 위하여 분위기를 맞추고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 속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의 피로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자야.” 이 책을 읽기 전,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주의란 본인만을 중요시하는 사회와는 조금 동떨어진 인간의 시대상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개인주의는 이기적이고 본인의 행복을 위해 다른 이의 행복은 배제하는 이기주의 혹은 고립주의의 유의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어만 보았을 땐 사회와 격리를 희망하고, 집단주의가 싫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개인주의자라고 사회에서 오로지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 분명하되 사회 속에서 합리적으로 본인의 역할을 맡기를 원한다. 작가는 이렇게 나의 그릇된 생각을 부정하며, 개인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개인주의자인 본인이 바라보는 사회와 세상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1. 개인주의자 선언 책소개
개인주의자 선언은 대한민국의 부장판사이자 이 책의 저자 문유석이 말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내용의 책이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인 사건, 입시, 제도, 법 등 주제등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개인주의란 내가 생각하는 바른 개인주의. 너는 너, 나는 나.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2. 개인주의자 선언 주요 줄거리 요약
- 링 위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고민의 출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성취하여 평화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릴 위험 없이 강남역, 홍대 앞에서 새벽까지 젊은이들이 술 먹고 심지어 길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지표로는 적어도 세계 상위 20퍼센트 또는 10퍼센트 내에 드는 장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싫어서 이민 가고 싶다고들 하지만 세계지도를 놓고 정말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열몇 곳을 빼고는 살기 좋다 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인류의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