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똘스또이의 중단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삶에 대한 똘스또이의 생각과 문제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판사로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이반 일리치가 성공의 정점에서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서서히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는...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 특별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이반 일리치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읽으면 묘하게 깊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한 법관이 막 성공의 열매를 맛보기 시작한 시점에 예기치 않은 몸의 이상을 겪게 된다. 그는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었을 만한 작은 상처를 계기로 하여, 점차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이른다. 개인의 원대한 계획이나 목표가 허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사소해 보이는 일이 계기가 되어 거대한 운명의 문턱에 발을 디디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반 일리치가 청춘 시절을 보내고 학업을 마치고 관직에 나가는 과정은 꽤 기품 있어 보인다. 의욕이 넘치고 진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성취를 차근차근 쌓아간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법한 직위에 오르고,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 가족 내에서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그는 대체로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그럭저럭 타협점을 찾아간다. 그가 바라보던 세상은 자신의 노력에 맞추어 성장한다는 착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보게 된다. 돈과 지위가 많아질수록 만족감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가구를 배치하거나 인테리어를 손보던 중 무심코 부상을 입고 말았다. 별것 아니라고 여긴 그 작은 사고가 점차 커다란 고통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온몸이 아파지면서도 병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점 때문에 그의 불안은 증폭된다. 가족과 친구들은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혹시 곧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던져보지만, 병세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간다.
대화를 할 때 내가 항상 언제 공격적이게 되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모욕적인 언행을 당했을 때가 가장 많았다. 당연히 내가 화나는 부분은 철저히 나의 주관, 개인적인 생각에 의한 것들이었다. 저자는 먼저 언어적인 측면에서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했을 때 바로 ‘반감’을 표현해 적대시하지 말라고 했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말로 충분히 주의를 주는 것도 사회생활에서는 필요하다. 특히 아랫사람이 겪는 온갖 언어 폭력은 바로 깔끔하게 대처하는 게 내 마음의 병을 안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저자는 언어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조차도 그가 왜 그랬을까 이런 점을 생각하고 헤아리자고 했다.
실천이 매우 어려운 조언이었다. 내가 분명히 옳은 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죽음에 대한 고찰, 성찰을 이렇게 소설로서 잘 풀어낸 것은 처음 접했다. 과연 평가가 높은 소설은 다르구나 하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일리치의 입장이 되면 사실 누구나 고독하고 죽음 앞에서 발버둥치고 싶고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온갖 생각이 다 들 것 같다는 생각도 있다. 일리치는 엘리트였다.
그가 자기가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 특히 타인에 대해서 잘 대했다고 한 면은 그가 의사를 찾아가면서 겪은 것으로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가장 안습이었던 것은 일리치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동요는커녕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고 평온해보이던 아내였다. 장례식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죽은 사람도 성불 못 할 거 같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는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이다. 톨.스.토이. 이름은 참 많이 들어봤는데 읽어 본 책은 이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처음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출간 된 책이었는데 톨스토이를 똘스또이라고 옮겨놓았다. 그 톨스토이가 맞는 지 잠시 의문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러시아어 발음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살면서 혹 러시아인을 만난다면 당신네 나라 사람, 례프 딸스또이의 책을 재미있게 읽어봤는데 이름 만큼은 확실히 발음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보게 된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웅인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리슝씽’ 등으로 떼놈 스타일로 발음하면 뭔가 서운하지 않을까?
손 꼽히는 문학 작품은 ‘그래, 훌륭하니까 많이들 추천하고 읽히겠지. 그런데 재미는 있을까?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까, 부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널려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뭐랄까, 이럴 수가! 이런 내용이었나? 하며 몰입하며 읽었다. 죽음 또한 내 이야기의 일부로써 언젠가는 찾아올 내 역사의 끝이 될 것임을 지금은 인지하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인물의 시간과 절차의 흐름에 따른 심리적인 묘사와 상황 전개 흡입력이 상당했던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대문호라 일컬어지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내 느낌대로 한 마디 말씀을 그에게 전하고 싶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글은 진정 짱이십니다 라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의 시간은 온다. 많은 돈과 권력을 갖고 있어도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가장 중요한 이들에게 소홀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인생의 뒤안길에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하고 거기서 승리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이 작품은 성공만을 위해 달려왔던 ‘이반 일리치’라는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육체적 고통, 홀로 죽어가는 외로움과 공포,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위선적 태도 등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그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죽음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며, 구체적이고 특수하다. 따라서 나는 죽는다는 것은 사람의 죽음의 일반적인 의미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은 신과의 대비로 '죽어야 마땅한 것' 이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그것은 물이나 금속, 땅, 대기가 "소멸하지 않는다" 라는 것의 무기질적 공허함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그것을 단지 뒤집은 것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의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를 다방면의 관점에서 사색하면서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수없이 작아져, 어딘가 핵심이 허물어진 것 같은 자극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목처럼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관한, 정확히 말하면 한 항소법원 판사가 죽어가는 과정, 죽음을 맞이하는 그래서 마흔다섯의 나이로 끝내 죽는 이야기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베도모스찌(참고로 러시아 최초 신문사라함.)신문 부고란에 통보하고, 지인들이 그의 빈소를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때 철부지 어린애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아주 가깝게 지냈던, 또 성인이 되어서는 같은 일을 하던 동료였던 친구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저녁에 카드게임을 하네마네 하며 조문을 가지만, 죽음이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일뿐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처럼 여긴다.
아내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는 남편친구한테 남편이 사망한 경우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와 연금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조문을 마친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집으로 카드게임을 하려 가고, 카드게임 첫판이 끝나가던 중이어서 다섯이 새 게임을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책은 처음엔 제목만 보고 고지식하고 종교나 문화적인 내용이 바탕이 된 책 같았지만 이름 그대로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이 책을 쓴 톨스토이의 책은 어릴 때 집에 테마 동화 전집으로 접해 인생이나 삶에 관한 교훈이 많이 담겨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찬가지로 인간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에 관해 경험을 적지는 못하지만 깊은 고찰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서는 담고 있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역행하여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을 배경으로 시작해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인생을 적은 전기문 형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책의 초반에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 말고도 법원에서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 및 친한 친구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감정들도 묘사되며 주변인의 생각에 대해서도 나오며 주인공의 평소 행실에 대해 지레짐작 할 수 있었다.
커다란 법원 건물 안에서 잠시 휴정 시간을 갖고 검사와 재판관들은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의 집무실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모두들 잡담을 나누는 동안 그 중 한 사람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배달된 신문을 보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이었고 그들 모두 이반 일리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가져다주는 승진, 월급에 대해 관심을 가질 뿐 그의 죽음에 대한 관심과 슬퍼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모두들 ‘죽은 건 내가 아니라 이반일리치’라고 생각하며 안도감을 느꼈다.
그 중에서 특히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가까운 사이로 법률학교 동기이자 직장 동기이기까지 했다.
1. 작가 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9.9.~1910.11.20.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 출생
러시아의 작가 겸 사상가, 카잔주립대학교 법학 중퇴
1858년 영지이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농노제 폐지를 시도했으나 실패(1861년 러시아 농노제 폐지)
자전소설인 <유년시절>(1852)로 문단의 주목을 받음
대표작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
2. 톨스토이 글의 특징
소설은 대체로 사실주의적 묘사, 비판적인 시선, 비극적 결말로 점철되어 있으며 기사화된 이야기나 지인들에게 들은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평소 존경하던 법관 이반 일리치 메치니고프를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으며, 마차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후 병상에서 2개월을 보낸 뒤 간행된 작품이기도 하다. 민중 계몽을 위해 쓴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순례자>, <바보 이반> 같은 우화는 짧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